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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리 찍고 나주로 간 ‘파리댁’

“긍정의 힘을 가지고 귀농 결심”…남편은 표고버섯 재배 준비로 구슬땀

2014.09.23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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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12년을 살다 농사를 짓기 위해 전남 나주로 내려온 손주희 씨와 남편 김경태 씨. 부부는 김 씨의 고향인 나주에서 버섯 재배와 나주시귀농귀촌지원센터의 지원 사업인 ‘희망 나누기’ 활동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프랑스에서 12년을 살다 농사를 짓기 위해 전남 나주로 내려온 손주희 씨와 남편 김경태 씨. 부부는 김 씨의 고향인 나주에서 버섯 재배와 나주시귀농귀촌지원센터의 지원 사업인 ‘희망 나누기’ 활동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렇게 생각했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프랑스 파리에서도 오래 살았으니 분명 새침데기일 것이라고. 그런 그가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왔단다. 궁금했다. 대체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기에 남도땅 나주에까지 내려왔을까.

전화를 걸어 몇 마디 묻고 약속을 했다. 손주희(40) 씨를 만난 것은 얼마 전 일요일 전남 나주시 봉황면 와우2구의 마을회관에서였다. 이 회관은 분동마을과 각동마을 어르신들의 보금자리 같은 곳이다. 그는 마을회관에서 귀농인과 마을주민의 만남인 ‘희망 나누기’ 행사를 거들고 있었다.

“이 마을로 들어온 귀농인이 주민들에게 점심을 대접하는 자리입니다. 회관에 필요한 물품도 하나 설치해 드렸어요. 조금 전에 막 설치가 끝난 싱크대가 바로 그것이죠. 지금은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 행사는 귀농인의 ‘신고식’인 셈이죠”라고 말하는 손 씨는 바로 다음 행사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희망 나누기 행사는 귀농인과 마을주민이 함께하는 점심식사와 레크리에이션으로 진행됐다. 나주시귀농귀촌지원센터가 지원했다. 그는 이 센터의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다.

“식사 더 하세요.” “반찬이 맛있네요.” “과일도 드세요.”

연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르신들과 인사도 나눴다. 영락없는 시골 아낙네였다.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다른 자리의 어르신들에게도 얘기를 건넸다. 마을 이장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스스럼 없이 한바탕 크게 웃기도 한다.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자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줄곧 사진을 찍었다.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손주희 씨의 남편 김경태 씨는 버섯 농사에 매진 중이다. 소일거리로 하던 고추농사도 손이 바쁘다.
손주희 씨의 남편 김경태 씨는 버섯 농사에 매진 중이다. 소일거리로 하던 고추농사도 손이 바쁘다.

파리생활 12년… 통역과 민원처리 대행 일

선입견에 불과했다. 파리에서 왔다기에 새침데기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르신들과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행동 하나하나까지 다 자연스러웠다.

“재밌어요. 적성에도 맞는 것 같고요. 제가 원래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여서일까요? 어떤 일이든지 적응을 잘하는 편이에요.”

그의 과거가 궁금했다. 어떤 계기로 프랑스에 갔고 거기선 무슨 일을 했는지, 또 나주로 들어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사회복지를 전공했죠. 서울에서 일본회사에 근무하던 지금의 남편(김경태·44)을 만났고요. 2000년에 남편이 프랑스 파리로 발령이 나면서 함께 갔죠.”

그녀는 파리에서 어학과 판화를 공부했다. 이후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의 행정업무를 도왔다. 국제행사에 참가해 통역을 하거나 기업체의 설립과 민원처리도 도왔다. 프랑스 유학생들의 학교등록 업무를 대신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파리에서 12년을 살았다.

손 씨는 행복나누기 행사 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기록을 남기는 것이 그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손 씨는 행복나누기 행사 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기록을 남기는 것이 그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2012년 귀국해 서울에서 잠시 머물다 열한살 된 딸, 다섯살 먹은 아들과 함께 네 식구가 나주로 내려왔다.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는 남편의 생각을 흔쾌히 따랐다. 그도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었다. 나주는 남편의 고향이다. 남편은 버섯 재배법을 익혔다. 부인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나주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2년 가까이 있으며 밭농사 직불금 업무 등을 봤다. 그 사이 버섯 재배를 위한 발효와 효소과정 교육도 받았다.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는 지난 7월 중순부터 일하고 있다.

“솔직히 들어올 땐 걱정이 됐죠. 프랑스로 나갈 때보다도 더 고민됐어요. 다만 공기 좋은 데서 살고 싶었고요, 남편의 기관지가 좋지 않은 편인데, 건강도 생각했죠. 막상 나주로 내려올 때는 큰 고민 안 했어요. 농가주택에 산다는 게 조금 부담됐을 뿐이죠.”

농사 지을 땅 3,300평방미터를 장만했다. 남편이 여기에다 버섯 재배사 2동을 직접 지었다. 최근에는 표고목을 입식하고 본격적인 표고버섯 재배를 시작했다. 나머지 1동에는 배지를 이용해 표고버섯을 재배할 계획이다. 주변 밭에는 고추와 깨 씨앗을 뿌렸다. 고구마도 심고 과일나무도 몇 그루 가져다 심었다.

“프랑스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주변 나라와 도시를 돌아다니며 여행도 많이 했고요. 그러면서 우리 부부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된 것 같아요. 나주에서의 생활도 기대가 커요. 지금까지 만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죠.”

그의 말에 남편 김 씨가 환하게 웃는다. 밭에서 놀고 있던 다섯살배기 아들의 얼굴도 천진난만하다. ‘생명의 땅’에서 새로운 희망을 일구고 있는 이들 가족의 밝은 내일이 싹트는 것 같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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