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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해설가’로 변신한 조연환 전 산림청장

“산이 준 큰 은혜, 숲 해설로 갚아야죠”

2015.01.26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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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동백꽃이 한창인데, 보고 오셨어요? 이쪽으로 가면 납매(음력 섣달에 꽃이 피는 매화)가 피어서 향기가 아주 좋아요."

산책로에 서서 어디로 가야 좋을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관람객들의 표정을 읽었나 보다. 사진 촬영을 하다 말고 그는 스스럼없이 말을 툭 건넨다. 그의 허물없는 태도에,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던 이들이 반색하며 질문을 쏟아낸다.

“어머, 못 봤는데… 어디로 가면 되죠?”

“그런데 납매가 뭔가요? 처음 듣는데….”

그러자 산책로 방향과 코스별 관람 포인트, 예상 소요시간 등이 익숙한 손짓까지 보태져 그의 입에서 일목요연하게 흘러나온다. 그렇다고 음절 하나하나에 참기름 같은 웃음기를 바른, 마치 스튜어디스 같은 반드르르한 친절은 아니다. 투박한 말투에 심상(尋常)한 태도가 곁들여진, 더도 덜할 것도 없는 동네 아저씨의 그것이다.

그런 대수롭지 않고 예사로움이 주는 편안함 때문일까. 관람객들도 이것저것 마음 내키는 대로 추가 질문을 이어간다. 그저 수목원 관리인이겠거니 생각하는 눈치다. 그른 생각은 아니다. 그는 공익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의 원장이자 한국산림아카데미 이사장을 맡고 있는 조연환(67) 씨다. 그에겐 세상이 알아줄 만한 이력도 있다. 19세에 9급 공무원으로 산림청에 들어와 주경야독 끝에 1980년 기술고시에 합격했고, 국유림관리국장 등을 거쳐 제25대 산림청장을 지냈다는 사실이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새로운 이력을 하나 더 추가하셨던데요.
“집사람과 함께 숲 해설을 할 수 있는 산림교육전문가 자격증을 땄지요.”

산림청장까지 하셨는데, 숲 해설가 자격증이 굳이 필요한가요.
“전문적인 지식도 지식이지만, 새로운 삶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서라도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천리포수목원장 직책도 작년 말로 3년 임기를 마쳤거든요. 후임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 일단 몸담고 있을 뿐이지, 제 직장생활은 그것으로 끝난 셈이지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 거기에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하게 됐어요.”

‘새로운 삶에 대한 동기부여’라는 말이 묘한 울림으로 귀를 잡아당긴다. 마른 듯하면서도 탄탄한 체구에다 희고 깨끗한 낯빛 덕에 젊어 보이는 외양이지만, 칠순을 코앞에 둔 나이. 손자들 재롱이나 보며 쉬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 만도 하건만, ‘숲 해설가’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남들처럼 공부할 거 다 하고 산림공무원이 된 게 아니거든요. 열아홉 살에 고등학교만 마치고 배우지도 못한 철부지가 말단 산림공무원으로 들어가 산림청장까지 했지요. 그 기간이 자그마치 38년 4개월인데, 그 세월 동안 산이 저를 키워준 거예요. 말 그대로 산이 월급 줘서 나를 먹이고, 산이 나를 학교 보내서 공부시켜주고,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가르쳐줬지요. 그래서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산이 준 은혜를 갚는 일이라 생각해요. 숲 해설가 활동도 그 연장선에 있고요.” 

부인과 함께한 조연환 씨.
부인과 함께한 조연환 씨.

어울려 사는 지혜 자연의 큰 가르침

조 씨의 호가 ‘은산(恩山)’이라는 사실이 설명 없이도 바로 이해가 됐다.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단련해온 생각인지도 조금은 짐작이 됐다. 덧붙여 그는 아내 정점순 씨와 함께 ‘부부 숲 해설가’로 활동하는 소박한 포부도 털어놓았다.

“저는 산림 행정가로 일했을 뿐이라 식물에 대해선 집사람보다 잘 몰라요. 집사람은 식물에 원체 관심이 많고 숲 해설에 대해서도 오래전부터 뜻이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그럼 잘됐다. 당신하고 나하고 둘이 하면 딱 맞겠다’고 제안했어요. 당신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난 수목원 소개라든지 산을 비롯한 자연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고. 뜻이 맞는 수목원과 협의해서, 가령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쯤 ‘조연환, 정점순과 함께하는 숲과의 데이트’ 이런 걸 하면 좋지 않겠어요?”

숲 해설 콘셉트를 설명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신바람이 묻어났다. 산림청장이니 수목원장이니, 무슨 무슨 이사장이니 하는 거창한 직함을 달아볼 만큼 달아본 사람이 이렇게 소박한 계획을 설명하며 신이 난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인간에게 일이 무엇인지, 왜 일이 필요한지 그리고 힘겹기만 한 노동을 가리켜 왜 종종 ‘신성하다’는 수식어를 달아주는지 그 의미가 새삼 되새겨졌다. 절로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개인적으로 노년을 슬기롭게 맞는 지혜는 뭔가요.
“누구나 다 아는 얘기겠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덧붙여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 부부에겐 숲 해설이 바로 그런 일 같아요. 두 사람이 할 수 있고, 둘 다 좋아하는 일이면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숲 해설이 있거든요. 우선은 평생 자신이 해온 일에서 제2의 인생을 찾는 게 가장 바람직한 것 같아요.”

그만이 할 수 있는 숲 해설은 무엇일까? 궁금한 이는 천리포수목원으로 때맞춰 나들이를 가볼 일이지만, 참고하시란 뜻에서 한 대목을 공개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지혜라는 게 대부분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나무와 숲, 산의 세계를 보면 그 속에 다 답이 있지요. 세상에서 겪는 경쟁이나 갈등 같은 문제들도 자연을 보면 해답을 발견하게 돼요. 나무는 절대 홀로 자라지 못하거든요. 한 그루의 나무가 잘 자라기까지는 경쟁목이 있어야 하고, 버팀목도 필요하며, 희생목도 있어야 하지요. 제가 하려는 숲 해설은 이게 소나무고 저게 잣나무다, 이런 걸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소나무와 잣나무가 어떻게 어우러져 살아가는지를 얘기해보고 싶은 거지요.”

그런데 말을 맺는 조 씨의 눈빛이 일순 번뜩였다. “여보, 저기 쓰레기 좀….” 기자 눈엔 들어오지도 않는데, 텔레파시라도 통하는지 아내는 남편의 턱짓만 보고도 바로 귤껍질을 골라낸다. 그래서 ‘부창부수’인가. 자연을 좋아하는 취향이 판박이인 그의 아내가 기자에게 웃으며 나뭇잎 하나를 건넸다. “생달나무 잎사귀인데 맡아보세요. 향기가 참 좋아요.” 엄동설한의 한복판에 맡는 싱그러운 잎 냄새가 꽃향기보다 나았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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