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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낯설지 않은 설날 행동들

글: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 회장

2016.02.05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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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해마다 다가오는 명절이자 연례행사인 설. 그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설이다.

언제 들어도 설날만큼 설레는 명절도 없을 터이다. 설날에 즐길 수 있는 놀이나 음식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운명의 기로에 서서 새삼 한해의 운세가 궁금해지기 때문이리라.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은 입춘과 설을 맞이해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하는 설 한마당’ 행사를 소개했다.

이 행사에서는 서예가가 봄을 앞두고 입춘첩을 쓰는 시연을 비롯해 설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37개나 소개한다고 한다.

‘설빔 입기’ 같은 세시 풍속을 재현하는 것은 우리 어릴 적을 돌아보게 하는 추억의 사진첩이다. 투호,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같은 즐길거리가 아무리 좋다고 해서, 이런 놀이들이 스마트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설레는 설날’을 만들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설날을 설레는 설날로 느끼도록 하는 원천은 아무래도 설을 전후해서 자신의 나이를 세어보거나 한해의 운수를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떡국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두루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나이를 세는 기준이 세 가지나 되어 설 때만 되면 헷갈리기 일쑤다.

1977년 12월 31일생 가수 싸이는 3개의 나이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만이 갖는 나이세는 기준 때문이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977년 12월 31일생 가수 싸이는 3개의 나이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만이 갖는 나이세는 기준 때문이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금 포털 사이트에서 가수 싸이를 검색하면 1977년 12월 31일생으로 ‘나이 40세’라고 설명하고 그 옆에 괄호를 쳐서 ‘(만38세)’라고 되어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인은 세는 나이, 만 나이, 연 나이라는 세 가지 나이를 가지고 산다고 한다.

세는 나이는 해가 지나면 저절로 한 살 더 먹는 나이다. 2015년 12월 31일 태어난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고 하루 지난 2016년 1월 1일에는 두 살이 된다. 만 나이는 태어난 지 1년이 되었을 때 한 살을 먹는 나이다.

연 나이는 현재의 연도에서 태어난 해의 연도를 빼는 나이다. 연 나이는 ‘일정 연령에 이르는 해의 1월 1일이 되면 병역 대상이다’ 같은 조항과 함께 병역법이나 청소년보호법에서 적용되고 있다. 중국, 일본, 북한에서도 만 나이를 쓰는 것이 표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민법에서 ‘만 나이’를 쓰도록 되어 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1977년 12월 31일생인 싸이는 2015년 12월 30일 기준으로 세는 나이는 39세, 만 나이는 37세, 연 나이는 38세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방송에서 소개되어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우리들도 설날 아침에 자신이 느끼는 나이와 어른들이 묻는 나이 사이에서 어떤 나이를 말해야 할지 당혹스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가급적 만 나이를 보편적으로 사용했으면 싶다. 

한해 운수를 따져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설날의 추억이다. 2016년 병신년에는 호랑이띠, 말띠, 개띠에 태어난 사람들이 삼재에 들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삼재(三災)란 사람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세 가지 재난이다. 우리 선조들은 좋은 기운을 기원하고 삼재 같은 액운을 막기 위해 입춘첩을 써 붙이고 설을 기다렸다.

입춘첩(立春帖)은 입춘 무렵에 한 해의 복을 비는 글귀를 써서 대문이나 대들보에 붙이는 풍속이다. 입춘첩이 끝나고 설이 가까워지면 토정비결 보기, 윷점 보기, 오행점 보기를 하는데 새로운 1년을 시작하며 한 해의 신수(身數, 운수)를 미리 알아본다는 의미가 크다.

한 해의 신수를 알아보는 기준에 있어 ‘토정비결(土亭秘訣)’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70년대 무렵에는 도시의 거리나 시골 장터에는 토정비결을 봐주는 점복사들이 넘쳐났다.

2000년대 이후에는 그 인기가 점점 떨어졌지만 아직도 컴퓨터나 모바일을 이용해서 토정비결을 보는 사람들도 많다. ‘토정비결’은 조선 중기 학자인 토정 이지함(1517∼1578)의 저술로 알려져 있지만 근거는 없다.

한국인에게 새해 토정비결은 재미삼아 보거나 맹신하거나 결국은 웃게 만드는 매력이 숨겨져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국인에게 새해 토정비결은 재미삼아 보거나 맹신하거나 결국은 웃게 만드는 매력이 숨겨져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토정비결은 생년월일만으로 3괘(卦)를 만들며 ‘주역’의 64괘가 아닌 48괘만 사용한다. 작괘법(作卦法)에 따라 얻은, 백 단위인 상괘(上卦), 십 단위인 중괘(中卦), 일 단위인 하괘(下卦)를 합해 세 자릿수의 괘에 해당되는 숫자를 책에서 찾아보면 된다.

토정비결의 진정한 매력은 세 자릿수의 괘를 4언시구(四言詩句)로 풀이함으로써, 비유와 상징이 많아 이해하기 쉽다는 점이다.

“북쪽에서 목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 “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으니 귀한 아들을 낳으리라” 같은 희망의 메시지가 많다. 그리고 좋지 않은 내용이라도 “이 달은 실물수(失物數)가 있으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화재수가 있으니 불을 조심하라”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측하는 내용이 믿음이 가든 그렇지 않든 아무리 절망적인 내용이라 하더라도 토정비결의 메시지는 빙그레 웃게 만드는 매력적인 비결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토정비결은 열두 달의 운수를 자세히 엿볼 수 있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어, 광복 이후부터 윷점과 오행점이 급격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는데도 스마트 미디어 시대에까지 건재하고 있다.

토속적인 신앙에서 비롯되었던 비과학적이던 우리의 설 풍습을 우리 문화의 소중한 유전자로 보면 좋을 듯하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토속적인 신앙에서 비롯되었던 비과학적이던 우리의 설 풍습을 우리 문화의 소중한 유전자로 보면 좋을 듯하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광복 이전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식구들끼리 길흉화복을 점치는 윷점이 유행했다. 설날에 윷을 세 번 던져서 나온 괘(卦)로 한해의 운수를 보았는데, ‘사점(柶占)’이라고도 했다.

윷을 세 번 던져 괘를 얻으면 될 정도로 방법은 간단했다. 첫 번째 던져 나오는 말을 상괘로, 두 번째 던져 나오는 말을 중괘로, 세 번째 던져 나오는 말을 하괘로 삼아 괘를 확정했다.

모두 64괘로 되어 있는 괘를 찾아 점사(占辭)를 읽어 길흉을 판단했는데, 만약 세 번 모두 ‘도’가 나왔다면(도·도·도), 111이라는 점괘를 얻게 된다.

111괘에서 444괘까지의 64개의 점괘가 가능하다. 111은 “어린아이가 인자한 어머니를 만난다”(兒見慈母)이며, 444는 “형이 아우를 얻는다”(哥哥得弟)라는 뜻이다.

새해맞이 윷점은 새해 소망을 담은 윷을 던져 윷패(도개걸윷모) 3개의 짝을 맞춰 운수를 점쳤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얼마든지 인기를 다시 얻을 가능성이 있다.

오행점(五行占)은 금(金)·수(水)·목(木)·화(火)·토(土)의 오행을 가지고 점을 치는 방법이다. 오행점에서는 바둑돌 만하게 깎은 나무나 콩알을 이용했다. 다섯 개를 손에 쥐고 복을 기원한 다음, 땅에 던져 나타난 글자에 따라 상·중·하괘를 정했다.

오행점은 음양오행설의 이치를 바탕으로 금, 목, 수, 화, 토라는 다섯 글자로 점괘를 만들어 점을 쳤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만물의 생성, 변화, 소멸을 이루는 오행에 따라 사주팔자를 알아보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이상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설날 풍경을 살펴보았다. 새로 나이를 세고, 토정비결을 보고, 윷점을 보고, 오행점을 보며, 우리 조상들은 새해를 맞이했다.

우리는 서양처럼 만 나이 하나로 나이를 세지 않고 세 가지 방식으로 나이를 셀 정도로, 늘 합리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여기’까지 왔다.

생년월일 또는 윷이나 콩알이 정해주는 괘에 따라 한 해의 신수를 보는 것도 과학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바로 이러한 비합리적인 생각들이 우리의 집단주의 문화를 지탱하는 저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정말로 설레는 설을 맞이해, 비합리적인 생각들이 빚어낸 우리 문화의 소중한 유전자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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