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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소방관…동료이기에 그 상처 잘 알아요”

소방관을 구하는 소방관 남양주소방서 박승균 소방위

2018.03.21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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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소방서 박승균(48) 소방위는 ‘소방관을 구하는 소방관’이다. 동료 소방관의 ‘마음의 상처’를 살피는 게 그의 또 다른 업무다. 지난해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관 전담 상담 조직 ‘소담’의 창설을 주도해 지금껏 2000명이 넘는 소방관을 만났다. 박 소방위는 지난 1월 1일부로 화재 현장으로 복귀해 다시 소방 호스를 잡았지만, 요즘도 쉬는 날이면 말 못할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동료와 마주 앉는다.

박승균 소방위는 “아무리 훈련이 잘된 소방관이라고 해도 계속 참혹한 광경을 보게 되면 충격이 쌓인다”며 “권투선수가 잽이나 잔 펀치로 무너지듯 트라우마가 쌓이면 소방관도 결국 무너진다”고 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죠. 나중에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출동도 못할 지경이 돼요. 한 달에 두서너 번 그런 장면을 목격한다고 치면 1년이면 20~30차례, 10년이면 200~300회 이상 목격하는데 견딜 재간이 없어요. 그런데도 많은 소방관이 이걸 ‘내가 모자라다’며 자기 탓으로 돌려요.”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와 올 1월 밀양세종병원 화재사고로 52명이 사망했다. 화재 참사는 불을 끈 사람에게도 트라우마(정신적 후유증)를 남긴다. 제천소방서 김영래 소방경은 참사 다음 날인 12월 22일 현장에서 지휘했다. 2층 여자 목욕탕에 진입해 랜턴을 비췄을 때 참혹한 광경이 떠올라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언론에 인터뷰했다.

사후 조사 과정에서 소방관들의 초기 대응에 대한 비난이 들끓자 그는 후배 소방관들에게 “절대 뉴스나 댓글을 보지 말라”고 했고, “우리끼린 ‘차라리 우리 중 누군가가 희생됐다면 괜찮았을까’라고 얘기하며 ‘우리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박승균 소방위가 근무지인 남양주소방서 와부 119 안전센터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C영상미디어
박승균 소방위가 근무지인 남양주소방서 와부 119 안전센터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사진=C영상미디어)

자살 소방공무원 숫자가 순직 보다 많아

소방청이 2014년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소방관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을 확률은 일반인에 비해 8배, 우울증을 앓는 비율은 일반인보다 4.5배나 높았다. 특히 알코올성 장애나 수면 장애는 소방관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년간 자살한 소방공무원 수(44명)는 순직한 소방공무원 수(21명)의 두 배를 웃돈다.

같은 공무원에 비해 평균수명도 훨씬 낮았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2012~2016년 숨진 퇴직 소방관의 평균 나이는 69세였다. 정무직 공무원(82세)과 비교해 13년이나 일찍 숨졌고, 경찰 공무원(73세)과 비교해도 크게 낮았다.

박승균 소방위는 2017년 1년 동안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관내 60여 개 119 안전센터를 돌며 상담을 했는데 “소방관들이 입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다”고 안타까워했다. 소방관은 화재·붕괴·자연재해 등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현장에 투입되는 게 일상이다. 육체적·정신적인 압박감이 심할 수밖에 없다.

박 소방위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지난해 4월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에 ‘소담’이라는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렸다. ‘소곤소곤 담소’와 ‘소방공무원 상담’이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했다. ‘소담’에 박승균·이숙진·최지선 등 상담심리사 자격증이 있는 소방관 세 명이 의기투합하면서 상담 업무가 본궤도에 올랐다.

지난 3월 ‘소담’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구성된 소방관 상담팀으로 발족하게 된 데는 김일수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장의 의지도 컸다. 박 소방위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에서 소방 업무를 책임지던 김 본부장은 이 일을 계기로 PTSD 치료를 지금까지 받아오고 있다”며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소방관들이 제때 치료받고 보다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의지 덕분에 소담팀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소방관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프로그램은 2010년 도입됐지만, 현직 소방관이 상담사로 나선 것은 최초였다. 실제로 소방청은 전문의·심리상담사 등이 직접 소방서를 방문해 심리장애 진단 등을 실시하는 ‘찾아가는 심리상담실’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전체 소방서 213곳 중 14%인 30곳에서만 실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료 상담’의 효과를 알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해당 팀을 구성,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13년 시카고소방서는 45명의 동료 상담사로 구성된 ‘게이트키퍼 프로그램(Gatekeepers Program)’이란 이름의 일리노이 소방관 동료 상담팀을 구성했다. 뉴욕도 9·11 테러 전 5명에 지나지 않았던 동료 상담팀을 100명으로 충원했다. 일본 도쿄소방청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1970년 강원 강릉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박승균 소방위는 자신을 수줍음 많고 소심했던 아이였다고 했다. 훗날 자신이 화마(火魔)와 맞서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대학에서도 법을 공부했던 그가 소방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현재 ‘동료’가 된 아내를 만나고부터다. 아내의 권유로 함께 준비해 2000년 소방관으로 임용됐다. 그렇게 10여 년 정도 일했을 무렵,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출동 벨이 울리는데 갑자기 멍해지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예요. 발도 안 떨어지고요. 눈을 감으면 화재 현장에서 머리 위로 떨어졌던 불붙은 기왓장이 보이고,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어요. 무섭고 막막했습니다.”

병원에 가도 “푹 쉬면 나을 것”이라는 대답만 돌아왔지만, 마음의 병은 휴식으로 치유되지 않았다. 결국 박승균 소방위는 2014년부터 심리학을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우리 같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먹게 됐다. 대학원까지 진학해 재작년에는 상담심리학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소담팀이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소속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특히, 소담팀은 소방공무원의 순직이나 자살사건등 소방관의 긴급상황 발생시 24시간 이내 현장으로 출동해 위기상황 스트레스해소 상담을 하고 있다.
소담팀이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소속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특히, 소담팀은 소방공무원의 순직이나 자살사건등 소방관의 긴급상황 발생시 24시간 이내 현장으로 출동해 위기상황 스트레스해소 상담을 하고 있다.

PTSD 치료법 ‘정·반·장’

박 소방위는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니 두려움과 싸울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소방관이라면 외상 후 스트레스는 피할 길이 없어요. 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약간의 훈련과 교육으로 막을 수 있어요. 소방관이라면 감내해야 할 ‘직업병’이 아니라는 얘기에요.”

박승균 소방위는 PTSD 치료법으로 ‘정·반·장’의 세 가지를 강조한다. ‘정’은 ‘현재 상태가 정상임을 깨닫게 하는 일’을 뜻한다.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놀라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용기를 주면서 마음을 다잡게 하는 단계다. ‘반’은 ‘상대의 아픔에 반응하는 것’이다. 상처를 털어놨을 때 누군가 “너는 바보가 아니야”라고 공감해주기만 해도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은 ‘장기적 위기관리’를 말한다. 감정을 누르는 데 익숙한 소방관들에게 심신을 이완시킬 취미 생활을 갖도록 돕는 일이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의 소담은 화마에 대항해 ‘참고 견디는 일’에 인이 박힌 소방관들이 그동안 눌러온 감정을 조금이나마 토해내는 곳이 됐다. 소담팀은 소방공무원의 순직이나 자살사건 등 소방관의 긴급 상황 발생시 24시간 이내 현장으로 출동해 위기상황 스트레스 해소 상담을 하고 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소방관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외판원’처럼 뛰어다녔어요. 하루에 10곳이 넘는 안전센터를 방문하고, 한 사람당 최소 세 번은 만났죠. 처음에는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괜찮다’고만 하던 분들도 나중에는 ‘사실은…’ 하면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한번은 자살을 시도했던 동료 소방관에게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 당신은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자존감을 살려주었더니 눈물을 흘렸습니다. 바로 이런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겁니다.”

박 소방위는 “소방관이란 직업의 특성상 평소 스트레스를 관리해 정신병적 단계까지 발전하지 않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외부 강사를 통한 일회적이고 피상적인 상담보다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소방관들을 심리상담 요원으로 양성해 소방관들이 수시로 상담 받고, 정신적 회복 탄력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게 보다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소방관은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신이 제 인생을 이곳으로 이끌어주셨다는 ‘소명감’이죠. 그래서 불구덩이나 무너져가는 건물 속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2016년 9월 21일 국민안전처와 화재보험협회는 박승균 소방위를 제43회 소방안전봉사상 시상식에서 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소방공무원으로는 처음으로 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해 PTSD 연구를 통해 소방공무원 심리치료에 이바지한 공로다.

박승균 소방위는 “국립소방복합치유센터가 하루빨리 설립돼 소방관들의 안식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며 “영화 ‘신과 함께’에서 여자아이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 소방관 김자홍을 저승에서 정의로운 망자이자 귀인(貴人)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처럼, 소방관이란 직업은 그만큼 남을 위해 희생하는 소중한 직업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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