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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행복 위해 경제성장에 ‘올인’ 하지 않는 이유

[행복, 부탄에서 배운다] ④ 국민소득 1만달러로 행복한 나라 될 수 있을까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

2017.10.11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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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이제 많은 이들은 성장과 개발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정책브리핑>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쫓는 현실에서 히말라야 산자락 작은 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불과 3000 달러도 되지 않는 이른바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의 이야기를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의 펜을 빌려 싣습니다. 이 글을 통해 ‘국민총행복’을 위해 부탄 사람들이 가난을 극복하면서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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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은 가난한 나라이다. 유엔이 정한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국민의 생활수준은 매우 낮다. 따라서 생활수준 향상에 대한 부탄 사람들의 열망은 매우 강하다. 그만큼 더 많은 경제성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부탄의 국민총행복정책은 경제성장에 올인하지 않는다.

국민총행복을 위해서는 생활수준 뿐 아니라, 공동체, 문화, 건강, 환경, 여가 등 아홉 영역이 균형적으로 발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부탄에서 모든 주요 정책은 국민총행복의 관점에서 ‘정책 및 프로젝트 심사도구’(policy project screening tool)를 통과해야 한다. 심사결과에 따라 GNH의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나 프로그램은 선정이 되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 등은 거부된다.

정책심사도구는 물질적 웰빙, 형평성, 성평등, 반부패, 의사결정 기회, 공공 건강, 스트레스, 가족, 자연, 문화, 생물다양성, 여가 등 9개 영역의 22개의 지표를 사용한다.

모든 프로그램이나 정책의 초안은 각 지표에 대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4점 측도로 평가한다(88점 만점). 모든 지표의 평균점이 3점(총점 66점)은 넘어야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 비록 평균점이 3점을 넘었다고 하더라도 일부 지표가 아주 낮은 점수를 받았다면 해당 지표에 대한 ‘추가적 고려’를 요청한다. 심사는 해당 부처와 국민총행복위원회에서 각각 시행하는데, 여기에는 정부 관료 뿐 아니라 시민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최소 10~15명이 참여한다.

부탄 식당 음식.
부탄 식당 음식.

이와 관련해서 흥미 있는 사례가 부탄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논쟁이다. 부탄은 1999년 WTO 가입 신청을 해, 참관국가 자격을 획득했다. 부탄은 가입조건을 거의 충족했으나, 2008년에 들어선 부탄 민주정부는 WTO 가입 노력을 중단했다.

국민총행복위원회는 WTO 가입안을 놓고 찬반투표를 벌였다. 24명 가운데 19명이 가입에 찬성했다. 그런데 정책 및 심사도구 검증에서 가입이 GNH에 바람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와서 가입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부탄이 WTO에 가입하려고 한 것은 말할 나위 없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정책 및 심사도구에서 WTO 가입이 경제성장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형평성, 반부패, 건강, 스트레스, 자연, 문화, 여가 등 나머지 부분에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평균 3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1995년에 앞 다투어 WTO에 가입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WTO에 가입해야 수출이 늘고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WTO 가입이 양극화를 심화하고, 사람들의 건강과 스트레스, 문화 등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지역과 농촌의 쇠퇴를 가져오고, 국가 주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성장지상주의 앞에서는 무력했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 부탄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많다. 후진국이 경제성장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은 부탄도 예외가 아니다. 첫째로 부탄은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국제수지의 적자 그리고 대외채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지출의 약 30%를 해외 원조에 의존하고 있고, 경상수지 적자는 GDP의 27.3%에 달한다(2013/2014 회계연도 기준).

둘째, 부탄의 최대 사회문제는 급속한 이농과 도시화다. 도시인구의 비중은 1990년 16.3%에서 2013년 37.1%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수도 팀푸로 인구가 집중하고 있다. 팀푸는 해발고도가 평균 2500미터인 산악지대임에도 부탄 인구 약75만명 가운데 15%에 해당하는 11만 5천명을 품고 있다. 팀푸에 등록된 인구가 7천명에 지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거의 모두 타지에서 유입된 인구이다.

셋째로, 청년실업률이 매우 높다. 부탄의 전반적 실업률은 높은 편이 아니지만(2013년 2.9%), 젊은 층의 실업률은 9.6%로 전체 실업률 평균의 3배 이상인데, 그 중에서도 도시 청년의 실업률은 22.8%에 달한다.

타시강왕비의 욕실.
타시강왕비의 욕실.

이처럼 젊은 층의 실업률이 높은 이유는 젊은이들의 교육수준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그들의 기대와 실제 노동 현장에서 마주하는 직업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탄에는 약 7만 명 정도의 외국인 노동자(주로 인도인)가 건설부문에 일하고 있지만, 이 부문은 저임금과 중노동이라 부탄 사람들은 기피한다.

넷째로, 서구의 시장경제와 개인주의 문화가 유입됨에 따라 부탄의 전통문화와 가치관에도 큰 혼란이 생기고 있다. 부탄 사회의 행복을 뒷받침하는 공동체적 문화가 경제성장과 도시화의 물결에 서서히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부탄에도 아파트 거주자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처럼 대단지는 아니고 5층 이하 단독 건물이 대부분이지만 아파트 생활의 특성상 이웃과의 유대가 약화되고 있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자살률도 높아지고 있다.

지방 도시의 아파트촌.
지방 도시의 아파트촌.

이러한 과제들에 대해 부탄 정부는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외채무를 갚기 위해서는 한 푼의 외화가 아쉬운 형편이지만 부탄 정부는 서두르지 않는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대외채무 문제 등에 관해 염려하자, 내가 만난 부탄 관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60년대 우리는 경제의 거의 100%를 외국 원조에 의존했으나, 그 뒤 의존도가 점차 낮아졌으며 이제는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 ..... 대외 채무액 대부분은 수력발전 건설에 사용하기 때문에 수력발전 건설이 끝나고 전기를 수출하게 되면 채무액을 모두 상환할 수 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탄이 과연 그들이 바라는 대로 2020년에는 외국 원조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적 자립을 달성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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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어린이.

부탄의 무역수지 적자의 주된 원인의 하나는 농산물과 식품 수입이다. 취업자의 약 50%가 농림업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농산물 무역수지가 전체 경상수지 적자의 약 25%를 차지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는 부탄이 산악지대로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농업생산성이 낮은 것도 주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부탄 정부는 농업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농약이나 비료 등 농화학 투입재의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2007년에 2020년까지 모든 농산물의 ‘100% 유기농화’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생태계 보존을 전제로 해서 농업생산성을 높이고 농가소득을 증대하겠다는 것이다.

관광은 부탄의 주요한 외화 수입원이다. 최초의 민주정부는 제10차 5개년 사회경제발전계획(2008-2013년)을 수립하면서 국제적 컨설팅 기관인 맥킨지의 자문을 받았다. 맥킨지는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관광세(하루 65달러)를 폐지하고 관광객으로부터 하루 200달러의 돈을 받는 관광정책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부탄 정부는 오히려 성수기의 관광비용을 250달러 인상했다. 그 이유는 무분별한 관광이 자신들의 환경이나 문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고 지속가능한 관광을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부탄 정부가 그동안 견지해오던 ‘높은 가치, 적은 수’(high value, low volume)의 관광정책을 ‘높은 가치, 낮은 영향’(high value, low impact)으로 바꾼 것은 맥킨지의 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관광객 수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 수를 늘려 외화 수입을 늘려 경제발전에 기여하게 하되, 그것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은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부탄 정부는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에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외국 자본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외국자본을 무분별하게 도입할 경우 인구의 수도집중과 양극화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부탄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지역균형발전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낙후된 동쪽 지방의 개발을 서두르고 있고, 수력발전 이외에 농가공업, 관광업, 건설업, 수공업, 제조업 및 광업 등 다섯 개 부문(‘다섯 개 보물’)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연구소앞 안내판에 전통복장을 요구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연구소 앞 안내판에 전통복장을 요구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특히 부탄 최대 산업인 농업분야의 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농산물 유통 및 가공을 발전시켜 농가소득 증대, 수입대체와 수출 증대, 상업적 영농을 촉진한다. 고등학교 이상 고학력자들이 농사일이 아니라 농산물 유통이나 가공부문에서 취업하도록 장려한다. 관광사업 부문에서는 현재 서부 지역에 집중된 관광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특히 관광객의 최소 20%를 동쪽 지역으로 유치하기 위해 노력한다. 수공업분야에서는 전통문화를 살린 직물, 예술품, 수공예품 등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농촌지역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한다.

부탄 정부는 ‘성장통’을 극복하고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국민총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위험 요소는 도사리고 있다. 부탄은 빠른 속도로 개방되면서 서구 소비문화와 물질문명의 공격을 받고 있다.

<오래된 미래>(1991년 출간)에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인도의 라다크가 1975년 외국인 관광객에게 개방되고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그들의 전통문화와 가치관이 파괴되는 과정을 마음 아파한다. 1975년 라다크를 방문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외진 마을을 구경했는데 모든 집이 넓고 예쁘기에 가난한 집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안내하는 청년이 “이곳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8년 뒤 그 청년이 다른 여행객에게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주셨으면 해요. 우리는 너무 가난해요”라고 하는 말을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다. 그들의 전통적 자부심은 서구에 대한 열등감으로 바뀌었다. 호지는 이것을 라다크가 ‘세계화에 진입’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은둔의 나라’ 부탄이 세계와 소통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이고, 2000년대에 본격적으로 세계에 개방됐다. 그러나 부탄은 라다크처럼 ‘세계화에 진입’한 것은 아니고, 규제되고 계획된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부탄이 ‘규제되고 계획된 개방’을 통해 일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의 성장을 실현하면서도 그들의 고유문화와 환경을 보전하여 국민총행복을 증진하는데 성공한다면, 이는 경제성장을 갈망하는 많은 개발도상국에 대해 세계화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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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도 (재)지역재단 이사장 충남대학교 경제학과에서 35년간 경제발전론, 농업경제학, 정치경제학 등을 가르치며 연구했고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4년에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들어갈 지역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지역재단(KRFD)을 세워 2014년부터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충남연구원장 재직시 부탄을 첫 방문한 후 2013년 부탄을 다녀오고 2015년에는 두 달간 체류했다. 2017년 2월 ‘부탄행복의 비밀’을 출판했고, 최근에도 부탄을 다녀오는 등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국민총행복’을 모든 정책의 기준으로 삼는 부탄 정부의 국민총행복정책을 한국의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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