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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권력을 과시하지 않는 힘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2017.11.16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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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콜은 1990년 거의 무명에 가까운 동베를린 물리화학연구소 연구원 앙겔라 메르켈을 여성청년부 장관에 발탁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년 뒤다. 위대한 독일통일의 아버지는 약관 36세의 메르켈을 ‘나의 소녀’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2005년 소녀는 총리가 되었다. 독일 역사상 최초 여성 총리, 동독 출신 첫 총리, 전후 최연소 독일 총리가 됐다. 독일인은 그 이후 지금까지 총리관저에서 새로운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는 지난 9월 총선에서 승리해 네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자신이 당에서 축출한 정치적 대부이자 최장수 총리였던 콜과 같은 16년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63)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혔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는 지난 1일 ‘2017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을 선정하며 메르켈을 가장 먼저 호명했다. 그는 7년 연속 포함됐고 열두 번 1위를 차지했다. 두 해 전인 2015년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메르켈을 선정했다. 여성 단독으로는 30년 만이었다. 앙겔라 메르켈이 21세기 첫 4반세기, 세계사에서 가장 빛나는 여성 정치인이라는 사실에 이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메르켈의 정치적·외교적 리더십에 대한 분석과 일화는 차고 넘친다. 책도 많이 나왔다.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교육과 경험과 위기에서 단련되고 만들어지지만, 여성 정치인 메르켈의 경우에는 좀 특별하다. 그의 인간적 성품 자체가 리더십의 큰 부분을 차지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의 인간적 면모와 품성과 개인 생활은 정치외교에 비해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성품 자체가 소탈하고 드러내길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가 장관에 발탁되었을 때 독일 정치판은 압도적으로 남성 천하였다. 마흔도 안 된 이혼녀에 아이도 안 낳아본 여자에게 여성청년부를 맡기냐고 말이 많았다. 언론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얼핏 ‘콜걸’을 연상시키는 콜의 여자(Kohl's Girl)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세련된 구 서독 정치인의 이미지에 익숙했던 언론은 동독의 촌스런 시골 여자를 대놓고 놀렸다. 콜 총리도 외국 정상과의 회담에서는 메르켈이 자기 옷을 입고 나오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언론이 뭐라 떠들든 대꾸하지 않았다. 제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해 나갔고 점수를 따나갔다.

정치는 이미지라고도 하지만 메르켈은 자신을 도드라지게 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는 편이다. 여성임을 표 나게 앞세우지도 않는다. 카메라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대처처럼 대차지도 않고, 힐러리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패셔니스타로 통하는 이웃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처럼 차림새에 신경 쓰지도 않는다.

관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화장기 없고 바른 듯 만 듯한 립스틱, 이발소에서 싹둑 깎은 듯한 숏컷 헤어 스타일, 박스 모양 재킷에 벙벙한 검은 바지, 뭉툭한 단화…. 독일인들은 그 차림을 총리의 유니폼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의 머리 모양에 대한 지적에 대해 “머리를 매만질 시간이 없어서 한 번 만진 머리는 열두 시간 이상 버텨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스타일 사진이 두 번 국내외 언론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15년 국가부도를 선언한 그리스 정부의 구제금융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됐을 때, 맨 얼굴에 채 말리지 못한 젖은 머리로 급하게 공관에 출근하던 모습이 하나다. 그 사진은 지금도 ‘그날의 올림머리’와 비교돼 인터넷을 맴돈다. 

또 하나는 정반대다. 2008년 노르웨이의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공연에 초대받았을 때다. 메르켈은 가슴과 등이 파격적으로 깊게 파인 검은 이브닝 드레스에 푸른 숄을 걸치고 왔다. 언론에서 난리가 났다. 사진에는 ‘드디어 총리가 가슴선을 보여 줬다’는 설명이 붙었다. 한 신문은 ‘메르켈의 대량 살상 무기’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실었다. 다음날 총리 대변인은 총리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개관한 오페라하우스보다 드레스에 이목이 쏠린 상황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다. 행사의 주인공인 노르웨이 공주보다 관심이 더 집중돼 미안하게 생각한다. 세상에는 드레스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

지난 여름에는 영국의 한 언론이 메르켈 총리가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 북부 산악 휴양지의 한 호텔에서 매년 휴가를 보내고 있는데, 늘 같은 옷이었다며 보라색 체크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 차림의 5년간 사진을 증거로 보여줬다. 그는 공식석상에서도 같은 옷을 여러 차례 다시 입고 등장하는 것에도 개의치 않는다.   
 
메르켈은 총리관저에서 살지 않는다. 남편과 베를린 시내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한다. 문에는 남편 요아힘 자우어 훔볼트대 화학과 교수의 이름이 붙어있다. 남편 역시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 아내의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휴가를 떠날 때도 메르켈은 관용기로, 남편은 민간 여객기로 따로 간다.

메르켈은 두 번 결혼했지만 자녀는 없다. 물리학자와 결혼했다가 5년 만에 이혼했는데 첫 남편의 성인 메르켈을 고집하고 있다. 집에서는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며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며 쉬는 걸 좋아한다. 다섯 시간 이상 자지 않는다. 사저에서의 생활은 철저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남에게 드러내길 싫어하지만 소탈하고 특권을 내세우지 않는 그는 시장이나 약국·미용실·음식점 같은 의외의 곳에서 시민이나 언론과 마주쳐 사진이 찍힌다. 2015년 조선일보 베를린 주재 기자가 동네 수퍼마켓서 메르켈을 만난 기사와 사진을 보도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꼬깃꼬깃한 장바구니를 들고 전용차에서 내려 1유로 동전을 넣고 카트를 꺼냈다. 1993년부터 매주 이 곳에 들러 생필품을 구입한다고 한다. 이날은 종이에 적어온 걸 보면서 오렌지, 가지, 양배추, 로션, 주방용 타월, 레드와인, 초콜릿, 밀가루, 토마토소스 등을 사고 계산대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자기 카드로 결제했다. 동네의 평범한 아줌마처럼 보였다. 주인도 쇼핑객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를 다룬 평전을 보면 메르켈은 꽤 인문학적이며 학구적이다. 그런 취향이 지도자의 덕목인 혜안과 통찰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메르켈은 러시아어와 러시아 역사에 능통한 문학 애호가다.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체홉·푸시킨 책을 탐독한다. 2014년에 회갑을 맞았는데 집권 기독민주당(CDU)이 주최한 회갑 선물은 역사 강연회였다. 저명한 학자 위르겐 오스터함멜이 ‘역사의 시간적 지평’이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그가 직접 초대했다고 한다. 이 생일파티 때문에 브뤼셀에서 열기로 했던 유럽연합 정상회의 날짜가 연기됐다. 그게 유럽에서의 메르켈의 위상이다.

메르켈의 인간적 품성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소박한 차림, 검소한 생활, 소탈한 품행이다. 마초 같은 상남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뚝심에, 이웃집 아줌마 같은 편안함이 정치적 장수의 첫 번째 비결이라고 분석한 정치평론가가 많다. 그래서 독일인이 붙인 그녀의 별명은 ‘무티(Mutti, 엄마)’이고 그녀의 리더십은 ‘엄마 리더십’이라고 불린다.

그에 대한 독일 언론의 평가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메르켈은 권력을 가진 것을 특별하지 않은 일로 바꿔 놓았다. 그녀는 권력을 과시하지 않는 힘을 가졌다.”

메르켈은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서울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국내 몇몇 언론이 두 지도자가 여러 점에서 닮았다고 기사를 썼다. 여성-비슷한 나이-보수(정당)-전공(이과)-분단의 역사를 거론했다.

그로부터 7년 후, 한 여자는 4연임에 성공했고 한 여자는 임기 중에 창살에 갇혔다. 그런데 두 여인을 비교하면서 가장 중요한 걸 간과했다. 메르켈은 동독의 작은 교회 가난한 목사의 딸이었다. 그는 자수성가했다. 박 대통령보다 2년 4개월 늦게 태어났지만 그때에도 눈가와 입언저리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였다. 

한기봉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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