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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힙합 작법의 선구적 시도는?

[한국힙합의 결정적 노래들 ②] 현진영의 ‘미인’ ‘한동안 뜸했었지’

2018.10.17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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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서 밝혔듯이 최초의 한국어 랩은 홍서범의 ‘김삿갓’이다. 리듬을 근간으로 한 발화양식, 즉 노래보다 랩에 가까운 형태의 녹음물을 세상에 선보인 건 홍서범이 현진영보다 조금 빨랐다. 간발의 차로 현진영이 늦게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현진영은 랩이나 힙합에 관한 한 홍서범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정통성과 지속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홍서범에게 랩 음악은 일회성 시도였지만 현진영에게 랩 음악(혹은 흑인음악)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고 할까.

홍대 앞 한 클럽에서 공연 중인 현진영.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7년 홍대 앞 한 클럽의 쇼케이스에 등장한 현진영.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현진영의 데뷔곡 ‘슬픈 마네킹’에도 랩이 있었다. 홍서범의 ‘김삿갓’보다는 1년 늦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보다는 2년 빠른 시도였다.

“신호등 앞에서 조마조마해 하는 사람 / 연인과 손잡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 유리방에서 내가 본 세상은 알 수 없는 이야기로 가득 차 / 슬픈 마네킹 (하!) 메마른 웃음으로 온종일 도시를 지키네”

물론 완성도는 미비했다. 라임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분명 랩이었다. 데뷔 이래 현진영은 랩과 힙합을 향한 애정을 꾸준히 드러낸 인물이었다.

현진영의 두 번째 앨범 <New Dance 2>(1992)를 생각하면 일단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떠오른다. 현진영 최고의 히트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수록곡 ‘너는 왜 (현진영 Go 진영 Go)’는 당시 한국에선 쉽게 상상하기 힘든 힙합 비트와 랩으로만 가득한 노래였다.

이렇듯 힙합 관점으로 본다면 ‘미인’과 ‘한동안 뜸했었지’도 빼놓을 수 없다. 아니, 잘못 말했다. ‘미인’과 ‘한동안 뜸했었지’는 한국힙합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노래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자 그대로 시대를 앞서간 노래들이었다.

 ‘미인’의 원곡자인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미인’의 원곡자인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미인’과 ‘한동안 뜸했었지’는 힙합 장르의 고유한 작법을 한국에서 선구적으로 활용해 완성한 노래였다. 힙합은 예로부터 ‘샘플링’을 고유의 작법으로 삼아온 음악장르다.

샘플링이란 말 그대로 ‘기존 음악의 일부분을 빌려와 자기 음악의 재료로 삼는 행위’를 뜻한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자기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힙합 작법의 기본이다. 오죽하면 이런 말도 있다.

“힙합은 아무 것도 창조하지 않았다. 힙합은 모든 것을 재창조했다”

현진영의 두 노래, ‘미인’과 ‘한동안 뜸했었지’는 샘플링을 활용한 노래였다. ‘미인’은 신중현의 노래를, ‘한동안 뜸했었지’는 사랑과 평화의 노래를 샘플링했다. 즉 현진영은 샘플링이 힙합 장르의 고유한 작법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그것을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실현해놓았던 것이다.

현진영의 ‘미인’과 ‘한동안 뜸했었지’에는 익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한다. 원곡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부분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동시에 충분히 낯선 부분도 있다.

원곡에 빚진 부분이 있는가 하면 현진영만의 것도 있다. 7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훵크(FUNK) 두 곡은 현진영을 통해 이렇듯 새로운 옷을 입고 90년대의 랩곡으로 다시 태어났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옛 한국음악을 샘플링해 노래를 만드는 것은 이수만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맞다. 소녀시대나 엑소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그 이수만이다. 현진영이 ‘SM 엔터테인먼트’의 초창기 뮤지션이었음을 잊지 말자.

2017 BET Awards에서 노래하는 바비 브라운. (사진=저작권자(c) AP/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 BET Awards에서 노래하는 바비 브라운. (사진=저작권자(c) AP/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당시 이수만은 현진영을 ‘한국의 바비 브라운(Bobby Brown)’으로 키워내려고 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샘플링 아이디어를 제공해 현진영을 이 글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국힙합 역사를 논할 때 현진영을 듀스나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거대한 존재로 대우하기는 솔직히 힘들다. 하지만 현진영은 이들보다 앞서서 데뷔했고 선구적인 몇몇 결과물을 남겼다.

그 성취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봉현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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