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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수습 총력

잠수사들 “빨리 찾아야지 하는 애타는 마음뿐”

바지선·해경 경비정서 비상대기…“부정확한 보도로 고생하며 욕먹을 때 스트레스”

2014.07.07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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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내부 수색을 마치고 바지선으로 올라온 잠수사가 가쁜 숨을 쉬고 있다.
세월호 내부 수색을 마치고 바지선으로 올라온 잠수사가 가쁜 숨을 쉬고 있다.

“그저 빨리 꺼내자, 아이들 안 다치게 해서 빨리 부모에게 돌려보내자, 오직 그 마음뿐이었어요.”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76일째이던 6월 30일 저녁 진도 팽목항에서 만난 조정현(35) 잠수사. 첫 세월호 희생자를 데리고 나온 민간 잠수사다. 그는 “실종자 한 명 한 명을 찾아내올 때마다 안 다치게, 그리고 빨리 부모에게 돌려보내자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와 마주 앉은 한국잠수사협회 천막 사이로 보이는 팽목항 앞바다는 연한 바다안개 사이로 희미한 석양빛이 조용히 슬픔을 머금고 있는 듯했다.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그는 기도하는 날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가 황대식 한국해양구조협회 해양구조본부장과 함께 팽목항에 도착한 것은 사고 당일인 지난 4월 16일 점심 무렵. 그로부터 지난 5월 17일 잠수병으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을 때까지 30여 명의 실종자를 찾아냈다.

6월 마지막 날도 자정 무렵까지 세월호 침몰사고 해역에서는 민·관·군 합동구조팀 약 120명이 5개 팀으로 나눠 조류가 약해지는 정조시간에 맞춰 세월호 내부 수색활동을 벌였다.

조 씨처럼 부상을 입거나 교대하는 인원이 아니라면 민·관·군 잠수사 모두 팽목항에서 1시간 20분 거리(해경 경비정 기준)에 있는 사고해역의 바지선 두 곳과 해경 경비함정에서 24시간 머문다.

황대식 본부장은 “지금까지 세월호 사고 수습에 투입된 민간잠수사는 약 970명이고, 주된 수색을 한 사람은 100명 안팎”이라고 전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해역은 여느 바다와 다릅니다. 위·아래 조류가 다르고, 남해와 서해 교차해역이다 보니 해류 방향이 일정하지 않아 어지간히 경험 많은 잠수사들도 당황할 정도입니다.”

황 본부장은 ‘잠수하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이 ▶조류는 1노트 이하 ▶파고는 1.2미터 이하 ▶시야는 3미터 이상 ▶수온은 섭씨 20도 이상이었으나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조류 속도는 10~11노트였으며, 시야는 30센티미터 이하였고, 수온도 섭씨 10~11도여서 외국 전문가들도 고개를 저을 상황이었다고 했다. 잠수사들이 작업을 위해 라이프가드를 연결할 당시에도 조류 속도는 4~6노트였다고 한다.

“잠수사들 값진 경험 정기 모임 만들어 공유했으면 좋겠다”

또한 맹골수도가 이전에는 국립해양조사원의 조류 예보해역이 아니다 보니 사고 초기에는 정조시간을 예측하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사고 초기에 열의만 가지고 온 민간 잠수사들이 적지 않았어요. 어느 날은 하루에 96명을 해경 경비정에 태우고 사고해역으로 나갔는데 정작 이들 중 1, 2명밖에 입수하지 못했죠. 이를 본 실종자 가족들의 요청으로 참여를 통제하게 됐습니다.”

두 달가량 바지선에서 잠수사들을 지원하고 있는 해경의 손성민 경사(포항해양경찰서)는 전화로 바지선 상황을 전했다.

“민·관·군 잠수사들은 조별로 3개 팀으로 나눠 입수하는데, 정조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경우 다음 팀을 좀 더 빨리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 대기조라도 마음놓고 쉬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잠은 두어 시간 쪽잠을 자거나 길어야 서너 시간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요즘은 바지선에 잠수사들의 식사를 돕는 자원봉사자가 배치돼 컵라면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어디 구석이라도 박스 깔고 잠을 자던 상황도 침낭이나 간이침대로 개선됐다. 하지만 그간 잠수사들을 가장 힘들게 한 건 몸고생이 아니라 마음고생이었다. 황 본부장은 “그냥 돌아간 일부 민간 잠수사들의 불만에다 현장 상황에 대한 이해 부족, 잠수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 만들어진 부정확한 보도 등으로 인해 고생을 하면서도 욕을 먹는 상황이어서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전했다.

구명조끼를 서로 연결한 아이들, 마지막까지 탈출하려 한 흔적들을 직접 목도하며 실종자 수색과 구조작업을 해 온 잠수사들은 작업현장에서 말을 아낀다고 한다.

“물속에 들어가면 사연 많은 친구들, 가슴 아픈 친구들이 많았어요. 지금도 그 친구들 찾아야지 하는 마음뿐이에요.”

조정현 잠수사는 여섯 살짜리 딸이 집에서 기다리지만, 지금도 팽목항에 머물며 몸이 나아져 입수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황대식 본부장은 “이렇게 많은 희생을 치렀으니 사고 수습이 끝나고 나면 잠수사들의 값진 경험을 흘려 보내지 않도록 1년에 한번이라도 민·관·군 잠수사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가져 경험을 공유하고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민간 잠수사 조정현 씨(왼쪽). 황대식 한국해양구조협회 해양구조본부장(오른쪽).
민간 잠수사 조정현 씨(왼쪽). 황대식 한국해양구조협회 해양구조본부장(오른쪽).

민간이든 군·경이든 잠수복으로 하나된 이들은 남은 실종자들이 가족 품에 안기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자신의 가족들 걱정을 뒤로 하고 오늘도 묵묵히 바다로 뛰어든다.

장마가 시작됐지만 희생자 한 명 한 명을 온몸으로 안고 올라오는 그들이 있기에 실종자 수색은 계속된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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