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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착한’ 책값을 정직한 책값으로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2014.11.10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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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할인판매 덕분에 책을 다량 구매한 사람들이 많다. 평소 읽고 싶어 하던 책이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워 사지 못했던 것들을 겨우살이 준비하듯 장만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도서정가제의 시행(11월 21일)을 앞두고 서점과 출판사가 경쟁적으로 대폭 할인판매를 하고 있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이런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없다는 광고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인문 사회 분야의 책을 실용서로 둔갑시켜 팔기도 한다.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도입되면 모든 책의 할인율은 마일리지 등을 포함해 최대 15%를 넘지 못한다. 지금은 신간에 한해 최대 19%까지만 할인할 수 있도록 제한할 뿐 출간 18개월이 지난 도서나 실용서, 초등학교 참고서 등은 얼마든지 할인해 팔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도서정가제를 앞두고 일부 출판사가 벌이고 있는 ‘재고떨이’는 할인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도서정가제가 실시되면 책값이 오른다고 느끼게 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반값을 넘어 최고 90%까지 책을 폭탄 할인하는 것은 도서 가격에 거품이 많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그런 거품을 걷어내고 모든 판매자가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토록 함으로써 도서 시장을 일신하고 전반적으로 출판산업을 육성하자는 게 도서정가제의 근본 취지일 것이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 서점을 찾은 시민들이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서적을 고르고 있다. 오는 21일부터 기존 신간 도서 위주로 적용돼온 도서정가제는 출간 18개월 이후 구간을 포함해 원칙적으로 모든 도서류로 확대 적용하고 할인폭도 총 15% 이내로 규제된다. (사진=저작권자 (c)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지난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 서점을 찾은 시민들이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서적을 고르고 있다. 오는 21일부터 기존 신간 도서 위주로 적용돼온 도서정가제는 출간 18개월 이후 구간을 포함해 원칙적으로 모든 도서류로 확대 적용하고 할인폭도 총 15% 이내로 규제된다. (사진=저작권자 (c)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지난해 1월 의원입법으로 출판법 개정안이 발의된 이후 계속 제기돼온 반대논리는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실효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책도 다른 일반 재화처럼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경쟁하고 소비자들이 선택토록 해야 하는데 새 제도는 시장왜곡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대론자들은 또 중소서점 감소와 경영 악화는 온라인서점의 득세가 원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온라인서점이 생기기 이전부터 번진 현상이니 온라인서점을 통한 할인을 규제하기보다 중소서점의 경쟁력 개발이 먼저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새 도서정가제는 중소서점도 살리지 못하고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를 빼앗아 소비자만 피해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가제 시행 이후 책값을 낮출 예정인 출판사는 거의 없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이런 주장은 책에 대한 근본 인식을 다시 점검하게 만든다. 즉 책을 공공재로 볼 것인가, 일반상품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해 책은 두 가지 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책의 가치를 결정하는 내용(이른바 컨텐츠)은 중요한 지적 자산이며 이 자산은 많은 사람들이 큰 부담 없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른 일반상품과 달리 책은 공공재, 지식재로 인식되고 있고 그렇게 다뤄야 할 정책 수요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책을 살 때 부가세 10%를 면제해 주고 정부나 지자체가 공공도서관을 지어 무상으로 책을 빌려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책은 일반상품인 게 맞지만 일반상품과는 달리 다뤄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현행 도서정가제(2003년 시행)는 당초 입법취지와 달리 ‘합법적 할인법’으로 변질돼 출판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빚었다. 지나친 할인이 관행이 되다 보니 독자들의 가격 불신이 가중되고 영세 서점과 출판사들은 물론 선량한 양질의 저자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전국의 중·소형 서점은 1,600여 곳으로, 최근 10년 동안 동네서점의 절반이 사라졌다. 또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된 4만6,000여 개 출판사 가운데 실제 책을 내는 곳은 15.1%뿐이다. 출판시장을 이렇게 만든 책임은 결국 출판계에 있지만 이번 기회에 책값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고 건전한 도서유통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도서정가제는 책의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되찾게 하는 것이다.

새 제도 시행과 함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출판문화 및 독서문화 전반에 대한 개선이다. 책을 읽지 않는 풍토, 출판사의 수가 서점 수보다 훨씬 많은 기형적 환경, 독서를 외면하게 만드는 입시제도, 정부의 공공도서관 투자 부족, 출판계의 전근대적 거래관행 등을 개선대상으로 꼽을 수 있다. 문화부가 이미 마련한 독서진흥계획을 내실 있게 추진하면서 도서 유통과 출판문화 발전을 위해 공공도서관 자료구입비(현재 700억 수준)를 대폭 늘리는 등 정책적 재정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새 도서정가제의 규정도 계속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대 할인율 15%가 너무 높으니 더 낮춰야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카드사 제휴 할인이나 경품할인 등에 대한 규정이 없어 실질적으로 15% 이상 할인해 팔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추가할인, 편법할인, 변칙할인 등을 할 수 있는 허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도서정가제를 지키지 않을 경우 위반 건수마다 부과되는 과태료 100만 원도 너무 낮아 실효가 적을 것이라는 여론이 있다. 

어렵게 만들어진 규정인 만큼 시행하면서 계속 보완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어법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 ‘착한’ 책값을 추구할 게 아니라 ‘정직한’ 책값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문화적 사회적 성숙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임철순

◆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언론문화포럼 회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보성고 고려대 독문과 졸. 1974~2012 한국일보사 근무. 기획취재부장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논설고문으로 ‘임철순칼럼’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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