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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국가유산] 가을날, 덕수궁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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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의 가을은 아름답습니다. 특히, 덕수궁 돌담길은 핫플로 알려진 곳이죠.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연인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지만, 그런 말이 무색할 만큼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찾는 명소이기도 하죠. 궁궐의 담장은 궁장(宮牆)으로 불리는데요. 궁궐의 경계를 구분하고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중요한 시설입니다. 덕수궁 돌담길은 사적 덕수궁을 품은 궁장입니다.

덕수궁은 고종이 왕위를 순종에게 물려준 후 계속 머문 곳으로,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뜻으로 덕수궁이라 불렀습니다. 원래 덕수궁 자리는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집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궁궐이 모두 불에 타고 없어서 임시로 월산대군의 집을 거처로 정하고 선조 26년(1593)부터 궁으로 사용하기도 했죠. 그 후 광해군은 이곳을 경운궁으로 고쳐 불렀으며 창덕궁으로 옮길 때까지 왕궁으로 사용했습니다.

고종이 러시아공관에서 옮겨오면서 다시 왕궁으로 사용되었는데요, 그때부터 궁궐다운 건물들과 시설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04년 큰불로 대부분 건물이 불에 타 없어지며 덕수궁에 큰 변화가 왔습니다.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당시 남쪽에 자리한 정문인 인화문과 대안문의 현판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덕수궁은 특히 돌담'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요.

일제강점기 때 태평로인 도로를 넓히며 동쪽 영역이 축소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통량의 증가로 태평로 확장 계획이 제시될 때마다 대한문의 위치도 돌담도 많은 변화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의 자리에 남게 되었죠. 덕수궁의 돌담길을 걷다 보면 오래전 덕수궁 무지개다리의 흔적이었던 교대가 담장에 남아 있는 흔적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궁궐의 담장이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하는 '돌담길'이 노랫말이 되기도 했고, 많은 사람에게 추억의 한편을 자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역사 속 아픈 시기를 담고 많은 이들이 추억이 된 덕수궁의 돌담은 소중 한 우리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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