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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와 헝가리 무곡

[클래식에 빠지다] 집시와 헝가리, 그리고 무곡의 역사

2021.08.30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 집시와 헝가리

19세기 헝가리는 세계1차 대전 이후 해체되기 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아래 있었던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으로 불렸다.

이후 1867년 오스트리아와의 대타협으로 자치왕국으로 승격되었지만 외교와 국방은 합스부르크가 아래 있었다. 한편 헝가리 인구의 대부분은 우랄산맥에서 넘어온 기마민족 마자르(Magyar)인데, 그 외 나머지 7~10퍼센트를 차지하는 제1 소수민족은 집시들이었다.

이들 집시의 유래는 역사적으로 이집트출신의 기독교 순례자들로 보는 이집트기원 설과 언어 인종학적 가설에서 출발한 인도기원 설로 나누어져 있다.

동유럽의 헝가리 집시들은 15세기경 발칸반도에서 유입됐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한데, 이들의 음악은 유랑생활을 하며 느꼈던 희로애락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으며 애수에 차있고 이국적인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한가지의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그리스, 터키, 유대, 비잔틴, 슬라브, 아랍 등 여러 도시와 민족을 만나고 영향을 받은 이런 다양한 요소들은 음악적으로 결합했으며, 특히 스페인으로 넘어가서 플라맹고 음악의 탄생에 기원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또한 19세기 집시들의 음악이 활발했던 곳도 헝가리였는데, 이들의 음악은 15세기 헝가리 문헌에도 기록돼있을 정도로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20세기의 작곡가 졸탄 코다이(Zoltan Kodaly)와 벨라 바르톡(Bela Bartok)은 집시음악이 아닌 헝가리의 전통적인 음악을 지켜내고자 마자르족의 민요를 채집해 자신들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펼쳤다.

하지만 18~19세기 집시들의 음악은 마자르족의 전통적인 음악과 결합하면서 유럽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후 민족주의 운동과도 결합하면서 더욱 발전하였다.

지난 2007년 8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제10회 유대교 여름축제에서 100명의 집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EPA/ZSOLT SZIGETVARY HUNGARY OUT/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2007년 8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제10회 유대교 여름축제에서 100명의 집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EPA/ZSOLT SZIGETVARY HUNGARY OUT/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무곡의 역사

무곡은 말 그대로 ‘춤곡’을 뜻하는데, 주로 춤을 추기 위한 반주곡의 형식으로 초창기에는 인식했으나 오늘날에는 콘서트용 음악으로 하나의 장르처럼 인식된다.

물론 음악과 춤의 관계의 기원을 찾아가자면 아득히 먼 기원전으로 넘어가야겠지만, 기록이 활발한 역사부터 살펴보면 14세기 교회권력이 쇠퇴하고 중세봉건제도가 무너지는 시점부터 세속적인 무곡들이 궁정을 중심으로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후 춤곡은 15세기 이후 궁전의 귀족들을 위한 사교춤으로 더욱 발전했는데, 바로크시대에는 영국에 지그(gigue), 프랑스에서는 쿠랑트(courante)와 가보트(gavotte), 스페인의 사라반드(sarabande), 독일에서는 알라망드(allemande)등 나라마다 독특한 특징의 리듬과 빠르기를 가진 춤곡들이 나왔다.

한편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보면 이들 6개의 모음곡형식에 춤곡을 모티브로 작곡된 아름다운 작품을 들어볼 수 있다. 또 18세기에는 미뉴에트(minuet)가 사교계에 성행했는데, 당시 비엔나가 춤의 중심지로 떠올랐고 왈츠라는 형식의 장르로 발전했다.

그리고 19세기 중반 폴란드의 마주르카(mazurka)를 필두로 보헤미아 지방의 폴카(polka), 미국의 래그타임(ragtime), 남미의 탱고(tango)와 삼바(samba) 등 저마다 개성 있는 형식과 리듬 템포를 가지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헝가리의 집시들도 전통적인 춤곡형식 음악인 차르다시(Csardas)가 있는데 이탈리아 작곡가 비토리오 몬티(Vittorio Monti)가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으로도 유명하다.

헝가리의 춤곡에는 느린 템포의 라싼(Lassan)조와 빠른 템포의 프리스카(Friska)조가 있는데, 느린 도입부 템포는 우수에 젖은 듯 애환을 표현하고 있다.

후반부는 빠른 템포의 격렬하면서도 열정적인 기쁨을 표현하는 그들의 민족성을 엿볼 수가 있는데,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또한 이런 차르다시의 당김음적인 리듬과 집시음계를 사용해 작곡되었다고 볼 수 있다.

◆ 브람스와 레메니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탄생에는 헝가리 계 바이올리스트 레메니(Eduard Remenyi)의 영향이 아주 컸다고 말할 수 있다.

브람스보다 5살 연상인 레메니는 지금의 비엔나 국립음악원에서 같은 헝가리 계이자 명망 높은 교육자인 바이올리스트 조셉 뵘(Joseph Bohm)에게 사사했다.

그의 스승인 뵘은 후바이(Jeno Hubay)나 조셉 요하힘(Joseph Joachim), 하인리히 에른스트 (Heinrich Ernst)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을 길러냈으며, 베토벤과의 친분으로 그의 현악 사중주12번을 초연했고 심포니 9번 <합창>의 초연에도 함께 한 사이다.

이처럼 훌륭한 스승 밑에서 음악가로서 재능이 많았던 20살의 레메니는 안타깝게도 1848년 헝가리 시민혁명에 가담한 이유로 오스트리아에서 추방당하고 독일로 떠나고, 그 곳에서 15살의 브람스를 만나 헝가리의 음악들을 소개하게 된다.

이후 잠시 미국으로 피난 후 유럽으로 돌아온 레메니는 반주자를 자청한 19살의 브람스와 함께 연주투어를 떠나고 함부르크, 뒤셀도르프, 하노버, 바이마르 등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연주하며 찬사를 받았다.

한편 브람스는 이 연주여행을 통해 많은 인사들과 교류하게 되었는데, 이 중에는 나중에 대립하게 되는 프란츠 리스트가 있었다.

또한 지휘자 한스 폰 뵐로우와 훌륭한 조언자이자 바이올린 협주곡을 헌정한 요하힘(Joseph Joachim), 그리고 스승인 슈만(Robert Schumann)까지 그의 음악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연주 투어였다. 

브람스는 레메니와의 연주를 통해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고 헝가리 민요와 집시선율을 메모하고 편곡하며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었는데, 이 작품이 바로 헝가리 무곡집이다.

이 곡은 처음에는 헝가리의 듄켈(Dunkel)사에 출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후 짐 로크사에서 출판을 했는데, 후에 엄청난 인기와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브람스가 이 곡을 통해서 승승장구하게 되자 레메니는 소송을 걸게 되는데, 바로 자신의 음악적 선율과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이유였다.

사실 헝가리 무곡의 여러 멜로디들은 레메니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볼 수 있지만, 브람스는 작품에 자신의 작곡이 아닌 편곡이라고 표기했기 때문에 소송은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브람스에 많은 인생의 기회를 만들어준 레메니였지만 아쉽게도 이 헝가리 무곡으로 인해 둘 사이는 소원해 졌다.

◆ 출판과 편곡

친구인 짐 로크의 출판사에서 나온 헝가리 무곡은 모두 4집으로, 총 21곡으로 이루어져있는데 36살의 브람스는 1869년 초판에 두 명이 피아노에 함께 앉아 연주할 수 있는 4 hands 연탄용 1집과 2집을 편곡해서 출판했다.

먼저 1집에는 헝가리무곡 1번부터 5번까지, 2집에는6번부터 10번까지가 수록되어있다. 이후 3집(11번부터 16번)과 4집(17번부터 21번)은 11년후에 출판되었는데, 우리가 많이 들어 봤음직한 유명한 멜로디들은 주로 1집과 2집에 실려있다.

아마 3집과 4집이 덜 유명한 이유는 레메니로부터 얻은 헝가리 집시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느낌과 스타일이 작곡에 반영이 되었기 때문인듯하다.

또한 1번부터 10번까지 실려있는 1집과 2집은 1872년 브람스가 피아노 솔로 곡으로 직접 편곡했으며, 2년뒤에 1번, 3번, 10번은 오케스트라 곡으로도 편곡했다.

나머지 18곡은 체코의 국민작곡가 드보르작을 포함 여러 작곡가들이 편곡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5번 f단조는 다소 생소한 작곡가 마틴 슈멜링(Martin Schmeling)이 편곡했다.

이밖에 오케스트라 버전이 아닌 바이올린 피아노 듀오 버전은 브람스의 친구이자 조력자인 바이올리스트 요하힘이 편곡했는데 지금까지 많은 연주가들에 의해서 대중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 음악은 3부형식의 테마를 무겁게 때론 가볍게, 애수 젖은 느린 서주로 시작해서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듯한 빠른 템포들로 마무리 되는 차르다시 풍을 많이 따르고 있다.

◆ 노마드 음악(Nomad Music)

브람스는 훌륭한 4개의 교향곡 포함 소나타와 협주곡, 실내악, 레퀴엠등 여러 귀중한 작품들을 세상에 선보였지만 그가 가장 애착하는 작품은 헝가리 무곡인듯 하다.

1889년 자신의 연주로 최초 녹음한 곡이 헝가리무곡 1번이었는데, 녹음 앞부분에는 자신의 육성도 들어가 있다.

물론 녹음상태는 신중하게 들어야 들릴 정도로 좋지 않지만 그가 기념비적인 첫 레코딩으로 이 곡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헝가리 무곡이 우선적으로 마음속에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특히 헝가리 무곡5번은 채플린이 나치와 히틀러를 풍자한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도 등장하는데, 1940년 제작 당시 많은 유태인들과 집시들이 나치에 의해 학살을 당하고 있었다.

유럽각국에서는 고단한 유랑생활을 하는 집시들에게 직업을 갖도록 하고 이들을 ‘찌고이너(Zigeunerweisen)’ 또는 신 헝가리인으로 불렀는데, 브람스가 곡 제목에 헝가리를 붙인 이유도 이런 소외된 자들을 위한 음악이란 뜻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헝가리 무곡은 집시 뿐만이 아니라 모든 소외된 자들의 음악인데, 어쩌면 우리모두는 실존적 소외자이면서 성장해가는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이런 면에서 헝가리 무곡이 대중적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어느덧 처서가 지나가고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계절이 기다려진다.

☞ 추천음반

심포니 편곡 녹음으로는 빈 필하모닉과 함께한 아바도(Abbado)의 녹음이 다이나믹하고 속도감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명반이라 생각하는 음반은 필립스에서 발매된 이반 피셔(Ivan Fisher)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좀 더 감성적으로 와 닿는다.

바이올린 편곡으로는 레오니드 코간(L.Kogan)과 벤게로프(Vengerov), 카바코스(Kavakos)의 연주를 추천하며, 콘 아모레 음반에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헝가리무곡 1번 연주도 명연이다.

한편 피아노 듀오는 브렌델(A.Brendel)과 발터 클리엔(W.Klien)의 연주로, 전통적인 집시음악 연주로는 전통악기인 침발롬(cimbalom)과 함께 연주하는 로비 라카토시(Loby Lakatos)의 연주를 꼭 들어보시기 바란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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