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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 아르노 강은 피렌체 시가지를 통과하여 서쪽으로 흘러간다. 아르노 강 남쪽 언덕 위에 조성된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서면 아르노 강과 피렌체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시선은 두오모(원래 명칭은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집중되다가 피렌체의 정청(政廳)이던 팔랏쪼 벡키오를 거쳐 아르노 강의 다리 폰테 벡키오로 옮겨진다.
황혼에 물든 아르노 강물 따라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의 감미롭고도 애틋한 선율이 다리 아래로 흘러가는 듯하다. 이 선율만큼 피렌체의 분위기를 그토록 따뜻하고 부드럽고 정감 있게 가슴에 와 닿게 하는 것이 있을까? 그런데 이 아리아의 선율만 그냥 들으면 마치 멀리 있는 아버지나, 하늘나라로 떠난 아버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사실 이 아리아를 부르는 소프라노나 이를 듣는 청중들은 으레 애틋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어 가사는 다음과 같다.
O mio babbino caro,
mi piace; è bello, bello;
vo‘ andare in Porta Rossa
a comperar l‘anello!
Sì, sì, ci voglio andare!
e se l‘amassi indarno,
andrei sul Ponte Vecchio,
ma per buttarmi in Arno!
Mi struggo e mi tormento!
O Dio, vorrei morir!
Babbo, pietà, pietà!
원어의 느낌을 살려 우리말로 번역 해보면 다음과 같다.
오, 나의 사랑하는 아빠.
난 그이가 좋아요. 그이는 멋져요, 멋져.
난 포르타 로사 성문에 가고 싶어요
(결혼)반지 사러 말예요!
정말이에요, 정말로 거기에 가고 싶어요!
만약 내가 그이를 헛되이 사랑하고 있다면
폰테 벡키오로 갈 거예요
아르노 강에 뛰어들려고 말예요!
난 초조하고 괴로워요!
오 하나님, 죽고 싶어요!
아빠, 제발, 제발!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선율이 주는 애절한 느낌과는 완전 딴판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용이라고는 한마디도 없으니 말이다.
가사에는 폰테 벡키오가 언급된다. 폰테 벡키오는 ‘오래된(vecchio) 다리(ponte)’라는 뜻으로, 이것을 국내출판물에서는 ‘베키오 다리’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아주 우스꽝스럽다. 어쨌든 피렌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 다리는 그 형태가 아주 독특하다. 즉, 단순히 강의 양안을 연결하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가도 갖추고 있는데다가 구름다리 같은 통로가 동쪽 상가 위로 지나가는 복합기능의 구조물이다. 다리 양쪽에 늘어선 상가는 현재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금은방이다.
금은방 진열장을 보면서 걸어가다 보면 다리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게 된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오래 되었으면 ‘오래된 다리’라고 하는 것일까? 이 다리의 기원은 2000여 년 전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중세에 여러 번 증축되고 개축된 다음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메디치 가문의 집무 건물인 우피찌 궁을 세운 조르지오 바자리(1511-1574)의 설계에 의한다.
한편 폰테 벡키오 가까이 바로 서쪽에 놓인 다리 폰테 산타 트리니타는 단테의 애절한 사랑의 추억이 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단테는 9살 때 아버지를 따라 포르티나리 가문에서 열리는 축제에 갔다가 포르티나리의 8살 난 딸 베아트리체를 처음 보고 그만 마음이 사로잡히게 되는데, 10년 후에 이 다리 입구에서 그녀와 다시 마주쳤다고 한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부유한 은행가 바르디 가문의 남자와 결혼했고, 단테 역시 부유한 도나티 가문의 규수 젬마와 결혼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이승에서 다시 만날 운명도 아니었다. 베아트리체는 출산하다가 24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절명하고 말았으니…
피렌체는 12세기 초반에 도시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세력을 크게 확장했고 13세기에는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면서 앞으로 문화의 중심지가 될 바탕을 다져 나갔다. 하지만 피렌체는 교황 지지파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지파로 분열되었고, 주도권을 잡은 교황파는 다시 내분에 휩싸였다. 황제파였던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오랜 유랑생활 끝에 라벤나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유배지에서 베아트리체를 추억하면서 쓴 방대한 서사시는 후세에 <신곡>이라고 불리게 된다.
한편 단테는 반대파의 정치가, 성직자, 악명 높은 범죄자들을 모두 <신곡>의 ‘지옥편’에 던져 넣어버렸다. ‘지옥편’에는 잔니 스킥키에 대해서 몇 줄 언급되는데, 그는 남의 유산을 교묘하게 모조리 가로챈 희대의 사기꾼이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후세에 <쟌니 스킥키>라는 단막 오페라로 탄생하게 되었다. 이 오페라는 비극적인 오페라만 작곡했던 풋치니가 쓴 유일한 희극 오페라로 음악과 극의 짜임새가 아주 뛰어나다. 이 오페라의 핵심을 이루는 아리아가 바로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이다.
가사는 잔니 스킥키의 10대 외동딸이 사귀는 남자와 결혼을 못하게 되면 폰테 벡키오로 가서 아르노 강에 몸을 던지겠다고 아버지에게 떼를 쓰는 내용이다. 폰테 벡키오에 가서 아르노 강물에 몸을 던지겠다는 딸의 ‘위협’에 놀란 아버지는 기가 막힌 사기극을 꾸미게 된다. 어쨌든 가사 내용과는 관계없이 이 아리아는 가장 아름다운 오페라 명곡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탈리아어는 현지발음에 가깝게 표기했다.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cultureb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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