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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에 영감을 받은 작곡가들

[클래식에 빠지다] 단테의 <신곡>과 음악

2022.07.05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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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거대한 서사시 단테의 <신곡(神曲)>은 ‘신들의 노래’란 뜻으로 원래 단테가 붙인 제목은 ‘희극(La Divina Commedia)’이다.

그가 작품을 ‘희극(Commedia)’이라 명명한 이유는 “원래 희극은 추한 것으로부터 시작해 아름답게 마무리되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신곡은 지옥으로부터 시작해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마무리 되는 설정을 하고 있는데, 9박 10일정도의 기간 동안 단테가 지옥과 천국을 경험한다는 내용이다.

단테의 <신곡>은 현재까지 많은 예술가들과 지성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특히 작품의 문장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생생하게 쓰여져서 당대 사람들은 그가 천국과 지옥을 실제로 다녀왔다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신곡의 시작문장은 “인생의 최 전성기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로 시작한다. 그의 주변에 나타난 동물은 표범과 사자 암늑대인데 각각 탐욕과 권력욕, 애욕을 상징한다.

고향 피렌체를 떠나 망명생활 중이었던 단테가 문득 인생을 되돌아보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이러한 욕망들이라는 자각을 했던 듯 하다.

작품 <신곡>은 바로 이러한 그의 자각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때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아닌 자(Non uomo, uomo gia fui)”라는 이탈리아의 국민문장을 통해 작품 속에서 베르길리우스를 지칭한다.

그리고 로마의 시성인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여행하는 단테와 그의 뮤즈인 베아트리체(Beatrix)를 생각하며 많은 작곡가들은 작품을 써내려 갔다. 그러면 단테의 <신곡>에 영감을 받은 작곡가들은 누구일까.

16세기 말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단테 초상화. (출처=저작권 만료 무료 다운 사이트 ‘아트비 artvee’)
16세기 말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단테 초상화. (출처=저작권 만료 무료 다운 사이트 ‘아트비 artvee’)

◆ 조반니 파치니(Giovanni Pacini)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파치니(G.Pacini)는 ‘신포니아 단테(Sinfonia Dante)’를 작곡했다.

오페라 ‘노르마(Norma)’의 작곡가 벨리니(Vincenzo Bellini)의 라이벌로도 유명한 그는 젊은 시절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성공작인 오페라 ‘사포(Saffo)’나 ‘메데이아(Medea)’는 비극적인 스토리를 다루고 있지만 또 다른 대표작 ‘신포니아 단테’는 아이러니하게 희극으로 내용을 마무리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당시 19세기 심포니 양식에 맞게 4악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악장은 지옥, 2악장은 연옥, 3악장은 천국을 묘사하고 있다.

독특한 부분은 4악장을 ‘단테의 승리’라는 부제로 마무리하며 양식에 맞추었다는 점으로, 행진곡풍의 느낌을 주고 있다.

1악장은 지옥의 입구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커다란 팡파르로 시작하며 음침한 분위기를 준다. 2악장은 현악기들의 소리가 인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듯 하다.

3악장에서 천국은 시종일관 밝고 경쾌한 음색이 특징으로 트라이앵글 소리가 별을 묘사한다. 90여편이 넘는 오페라 작곡가답게 전반적으로 오페라적인 요소들이 음악에서 많이 느껴진다.

◆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9세기 초절정 기교 피아니스트 리스트(Liszt)는 단테 <신곡>을 모티브로 하는 두 개의 작품을 썼다. 하나는 피아노 곡인 ‘단테 소나타(Dante Sonata)’로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의 <단테를 읽고>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위고의 작품은 주로 지옥 편에 집중되어있지만 리스트의 작품은 신곡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도입부 서주 첫마디의 불협화음들은 ”이 문에 들어서는 자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의 글귀가 적힌 지옥문을 형상화 한 것이다.

곡의 마지막 부분은 자신의 뮤즈인 베아트리체에 의해 정화되고 천국으로 인도되는 단테의 모습을 그린다. 첫 소절에 불완전 화음으로 시작한 음악은 안정적인 화성으로 마무리되며 안도감을 표현해준다.

헨리 제임스 홀리데이가 그린 1883년작 <단테와 베아트리체>. (출처=저작권 만료 무료 다운 사이트 ‘아트비 artvee’)
헨리 제임스 홀리데이가 그린 1883년작 <단테와 베아트리체>. (출처=저작권 만료 무료 다운 사이트 ‘아트비 artvee’)

‘단테 소나타’는 40년 동안 여러 번의 개작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신곡을 소재로 한 다른 작품 ‘단테 교향곡(Dante Symphony)’은 바그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원래 지옥, 연옥, 천국의 3개 악장으로 구성할 예정이었으나 바그너가 천국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하고 신성모독이 될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리스트는 이 충고를 받아들여 천국 편을 작곡하지 않았다.

하지만 2악장 후반부 여성합창단의 목소리를 통해 천국의 문에 다다르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단테 심포니’는 피아노 소나타를 발표한 10년 뒤 작곡에 들어갔다. 초연은 리스트 자신의 지휘로 드레스덴에서 공연됐으며, 작품에 도움을 준 바그너에게 헌정되었다.

◆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베르디(Giuseppe Verdi) 이후 이탈리아의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는 단연 푸치니(Puccini)를 들 수 있다.

푸치니의 오페라들은 풍부하고 아름다운 선율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그리고 인간적 호소력을 바탕으로 극적인 감동을 주는 특징이 있다.

한 편의 잘 짜여진 영화와도 같은 그의 오페라들 중 ‘3연작 시리즈(Il Trittico)’는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됐다.

단막극형식의 세 작품은 스토리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 옴니버스형식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외투(Il tabarro)’는 지옥을, 두 번째 ‘수녀 안젤리카(Suor Angelica)’는 연옥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잔니 스키키(Gianni Schicchi)’는 천국을 표현하는 작품으로 유명한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로도 잘 알려있다.

‘잔니 스키키’는 단테 신곡의 지옥 편에 “피렌체 사람으로 유언장을 위조한 죄로 지옥에 떨어짐”이란 한 구절만 나와있는데, 푸치니는 대본작가 포르차노와 함께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만들었다.

특히 잔니 스키키는 지옥 편에 나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푸치니는 그를 천국 편 오페라에 사용했고 이 작품은 푸치니의 유일한 희곡 작품이 되었다.

아돌프 폰 베커의 1867년작 <지옥의 단테와 버질>. (출처=저작권 만료 무료 다운 사이트 ‘아트비 artvee’)
아돌프 폰 베커의 1867년작 <지옥의 단테와 버질>. (출처=저작권 만료 무료 다운 사이트 ‘아트비 artvee’)

◆ 엔리크 그라나도스(Enrique Granados)

그라나도스(Granados)는 스페인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그의 음악은 스페인의 전통적인 감성과 근대음악적 특징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있다.

그의 스페인 무곡이나 화가 고야(Francisco Goya)에 영감을 받은 명작 ‘고예스카스(Goyescas)’는 그라나도스의 낭만주의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라나도스는 뉴욕과 백악관에서의 성공적인 연주 후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뱃길에 독일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48세의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었다.

쇼팽을 사랑한 그는 여러 피아노 작품과 가곡 등을 작곡했는데, 동향인 까탈루냐 출신 대 첼리스트 카잘스(Pablo Casals)는 그를 “우리들의 슈베르트”라고 부르곤 했다.

그의 교향시 ‘단테’는 그라나도스의 많지 않은 관현악 작품 중 하나다. ‘단테 교향시(Dante Symphonic Poem)’는 전체 2악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흔히 연상되는 지옥, 연옥, 천국의 구성이 아닌 독특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1악장은 주인공과 여행가이드인 ‘단테와 베르길리우스(Dante e Virgilio)’, 2악장은 지옥 편에서 불륜을 저지른 ‘파올로와 프란체스카(Paolo e Francesca)’다.

2악장 뒷부분은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사랑의 용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음악 전반에 흐르는 시적이고 서정적인 묘사는 그가 신곡을 통해 얻은 음악적 통찰력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 그림자

단테 신곡에는 ‘그림자’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그림자는 어떤 것이 있어야 생기는 것, 또 그것을 통해 어떤 것을 유추할 수 있다는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단테는 이성적이고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의 삶이 인간 정체성의 근본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로뎅의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를 모델로 하고 있다. 사실 <생각하는 사람>은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이 아닌 신곡 지옥 편을 주제로 만든 <지옥의 문>에 포함되어 있는 조각상이다.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Le Pensure)>이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있다.(사진=저작권자(c) Friso Gentsch/d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Le Pensure)>이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있다.(사진=저작권자(c) Friso Gentsch/d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신곡>의 지옥의 문에는 “이곳에 들어온 자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저자는 희망이 없다면 현실세계도 지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30대에 총리대신 직에 올랐던 단테는 당쟁에서 패하고 망명생활을 하며 언젠가 돌아올 희망을 가지고 신곡을 집필했을 것이다.

스콜라 철학의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신곡>이외에도 향연, 속어론, 제정론 등을 망명생활 중 집필했다.

단테의 원래 이름은 ‘두란테(Durante)’인데, 그 뜻은 ‘참고 견디는 자’로 그의 삶을 잘 대변해주는 이름인 듯 하다.

오직 신만을 사랑했던 중세에 그는 <신곡>을 통해 인간의 사랑을 표현했고, 이는 중세와 르네상스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단테를 “최후 중세시인인 동시에 최초 근대시인”이라 칭했다.

비록 단테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말라리아로 타지에서 삶을 마감했지만, 그의 그림자는 아직도 우리들 곁에 머물며 수 많은 예술가와 지성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 추천음반

파치니(G.Pacini)의 ‘신포니아 단테’는 질리오 오페라극장의 루카 오케스트라(Teatro del Giglio di Lucca Orchestra)의 연주를,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는 조르주 치프라(Georges Cziffra)와 아르카디 볼로도스(Arcadi Volodos)의 연주를 권한다.

리스트의 ‘단테 심포니’는 바렌보임과 베를린 필(Barenboim & Berliner Philarmoniker)의 연주를, 푸치니의 삼부작은 로린 마젤(Lorin Maazel)과 도밍고(Placido Domingo)의 음반 또는 미렐라 프레니(Mirella Freni)의 음반을 꼽는다. 

그라나도스의 ‘단테 교향시’는 바르셀로나 심포니 오케스트라(Barcelona Symphony Orchestra)의 낙소스 음반을 추천하겠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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