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남산’하면 가장 먼저 어떤 것을 떠올릴까? 아마도 케이블카와 서울타워, 돈까스, 사랑의 자물쇠 등을 생각할 것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남산 인근에서 대학을 다녀 그 시절에는 뒷동산 오르듯 수시로 오갔지만 남산이 이토록 엄청난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인지는 몰랐다. 참으로 부끄럽지만 그랬다. 나는 2022년 8월, 오랜만에 남산에 오르기로 한다. 처음엔 가족과 함께 갈까 했지만 생각을 바꿔 나 홀로 조용한 남산 탐방을 시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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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남산 일대 1.7km의 역사탐방길인 국치길.(출처=서울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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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치길의 곳곳에서 역사를 기억하자는 의미의 보도블럭을 만날 수 있다. |
명동역 1번 출구로 나와, 남산 길을 오른다. 노오란 나비들을 따라 올라가면 남산예장공원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국치길이 시작된다. 국치길은 2019년 조성된 서울 남산 일대 1.7km의 역사탐방길로 한일병탄이 체결된 통감관저 터에서 시작해 조선총독부 터, 일제 갑오역기념비, 경성신사 터, 한양공원비석, 조선신궁 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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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해 통감관저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기억의 터’. |
한 10분쯤 걸었을까? 1910년 8월, 경술국치조약이 체결되어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하게 된 통감관저가 있던 자리에 다다른다. 경술국치 이후엔 통감부가 조선총독부로 바뀌어 식민통치자들의 본거지가 된 곳이다.
예전에도 분명 여러 번 왔던 곳이지만 이렇게 이곳의 지난한 역사를 알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는 왜 이곳을 몰랐을까? 찾아보니 ‘통감관저 터’라는 표석은 20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하여 세워졌단다. 이곳에는 ‘거꾸로 세워진 동상’과 ‘기억의 터’도 있다. 우리나라 침략에 앞장선 이의 이름이 새겨진 대리석을 거꾸로 세운 동상을 보니, 우리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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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7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름과 증언이 새겨진 ‘통곡의 벽’. |
옛 통감관저 터에 조성된 ‘기억의 터’는 2016년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의 이름과 증언,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이 새겨진 ‘통곡의 벽’과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글귀가 새겨진 ‘세상의 배꼽’ 등이 설치되어 있다. 밝혀지지 않은 전 세계 ‘위안부’ 피해자들이 수십만에 이른다고 하니, 아마도 그 이름을 다 적는다면 통곡의 벽은 얼마나 높고 크게 세워져야 할까? 어째서 우리는 많은 상처들을 잊고 덮고 살아온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과 함께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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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글귀가 새겨진 ‘세상의 배꼽’.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된 역사의 흔적은 남산도서관 앞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왕에 대한 참배를 강제로 시키던 ‘조선신궁’이 있던 자리로 서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세워져 있다.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의 동상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한국, 중국, 필리핀 소녀의 동상을 바라보고 서 있다. 취직시켜 준다, 공부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서, 혹은 밭일하다가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라는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들의 모습은 너무나 어리고 여리다. 그러나 이렇게 피해자는 있지만 공식적인 가해자는 없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서 가슴이 쓰라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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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린 김학순 할머니가 한국, 중국, 필리핀 소녀를 바라보는 모습을 한 서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
8월,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남산을 찾는다. 남산은 여전히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사랑받는 대한민국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하지만 이곳에서 우리의 역사를 떠올리는 이들은 많지 않다. 8월 29일은 일제의 강제병합으로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일’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명진 uniquekmj@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