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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기고] 김태우(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200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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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유엔안보리는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 구성을 승인하는 제1511호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어서 18일 한국정부는 이라크 추가파병을 정식으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시민단체들간에 설왕설래가 많은 모양이지만, 결론부터 말해 파병 결정은 불가피했고 향후 논의도 찬반논쟁에서 탈피해 ‘국익의 최대화’를 위해 언제 어떤 부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추가파병 문제는 지난 9월초 미국이 이를 요구하면서부터 논의되기 시작했고, 이후 한국사회는 ‘국론분열’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격렬한 찬반논쟁에 휘말렸었다. 파병 지지자들은 한미동맹의 중요성, 북핵문제 해결의 시급성 등을 내세웠고, 반대자들은 이라크 전쟁의 부당성, 현지의 불안정성 및 이에 따른 파견장병의 안전문제, 한-이슬람 관계 악화 가능성 등을 주요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라크 파병은 국익을 추구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일 수밖에 없으며, 파병 여부는 결국 국익계산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도덕논쟁에 함몰되어서는 곤란

파병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부도덕한 침략전쟁이므로 가담해서는 안된다”라는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전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카스피해를 잇는 전략벨트를 확보함으로써 그리고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려는 지역세력들의 발호에 쐐기를 박음으로써 미국 중심적 국제질서(Pax Americana)를 정착시키려는 워싱턴의 시도는 다분히 패권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를 무조건 저주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역사를 보더라도 그렇다. 로마나 영국이 그랬듯 패권적 힘을 보유한 나라는 하나같이 그 힘을 바탕으로 패권적 질서를 구축하려 했으며, 소련 붕괴 및 탈냉전 이후 유일 초강국으로 등장한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는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한국 역시 일정부분 여기에 순응하면서 생존과 번영을 모색할 수밖에 없으며, 오랫동안 맹방관계를 맺어온 나라가 국제질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라크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면서 독재와 개인 우상화를 자행해온 후세인 정권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경우가 이럴진대, 천편일률적인 도적논쟁에 함몰되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자세는 타당하지 않다. 대외의존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국제사회에의 참여를 통해 안보 및 경제적 번영을 꾀해야 하는 한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거대한 도덕세력인양 행동할 수는 없다.
테러공격으로 인한 파견장병의 희생 가능성은 당연한 우려이나, 엄청난 인명희생이 불가피했던 베트남 전쟁과는 양상이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대규모 군사작전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1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주둔하게될 이라크를 8년 8개월 동안 연인원 32만명이 참전하여 2만명의 사상자를 낸 베트남과 비교하는 것은 한 마디로 무리이다.

파병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파병 예정지인 모슬 지역이 안전하다” 라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이 또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미리부터 위험을 과소 평가하는 것도 국민에 대해 정직한 태도가 아니다. 한국군이 테러의 표적이 되고 그 과정에서 교전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군대란 국익을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조직이 아닌가. 이런 정도의 위험을 이유로 파병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한-이슬람간의 관계 악화 여부는 상당부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서희·제마 부대가 열심히 대민지원을 한 결과 이라크인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이 파견되는 부대에도 교훈이 될 것이다. 자위를 위한 교전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희생적인 대민봉사에 힘쓰고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치안유지에 임한다면 매우 우호적인 이미지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이라크 정상화 이후 오히려 한-이라크간경제관계는 돈독해질 수 있으며, 이라크 재건 과정에서도 상당한 기득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국익 극대화를 위한 고도의 정치적 결정

한미동맹을 재확인하고 상처난 양국관계를 치유하는 것은 파병이 가져올 최대의 국익이다. 사실, 한미동맹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이후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북핵문제가 불거지면서 더욱 어려운 처지에 빠져들었다. 북한을 ‘민족적 화합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포용정책이 북한을 ‘공동의 적’으로 간주하는 한미동맹의 기본원칙과 상충성을 보이면서 동맹의 존재이유는 희석되었으며, 반미정서가 확산되고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북핵문제에 있어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이 전쟁방지를 최우선 목적으로 삼고 ‘북핵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병행정책’을 고수하고 있지만, 세계전략 차원에서 강력한 대북압박을 통해서라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시각에서 보면 지나치게 엉거주춤한 행동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주한미군 재배치를 밝히고 감축설을 흘리는 것은 그 동안 진행된 한미동맹의 이완이나 미국내 반한정서의 확산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한미간 대외정책의 원칙과 목표가 상이하고 동맹관계도 예전같지 못하지만, 한국안보에 있어서의 한미동맹의 역할은 여전히 막중하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한국의 중대한 안보문제로 부상할 때 우선적으로 의존해야 할 대상은 결국 미국의 핵우산과 방위공약이며, 한미동맹이 확고하고 미국이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인정할 때 6자회담 등 진행중인 다자대화에서의 한국의 외교적 입지도 넓어진다.

해방후 반세기를 넘긴 이 시점에서도 한국의 안보적·외교적·경제적 위상이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낌은 당연한 일이나, 이것이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문제는 한국이 경제적·기술적 선진화를 이루고 자주국방 능력을 확보한다면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나, 그때까지 미국은 한국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파트너로 남을 것이다. 그런 미국이 어려움에 처해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면, 한국의 파병은 불가피하다.

이제부터는 국론결집에 나서야

추가파병이 정식으로 결정된 이상, 한국사회도 이제부터는 소모적 찬반논쟁보다는 반대급부를 최대화하기 위한 국론결집에 나서야 옳다. 비록 한국정부가 공개적으로 ‘조건’으로 요구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미국으로 하여금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을 보류하고 대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하도록 하는 것이나 북핵문제의 확실한 해결을 위해 미국의 힘과 지렛대를 활용하는 것은 최상위 국익이 될 것이다.

미국의 세계전략과는 무관하게 파병을 통해 한-이슬람 관계를 오히려 증진시키고 향후 중동 수출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우리만의 지혜’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이제부터의 논의는 이를 뒷받침하는데 모아져야 한다.

한국군의 독자적 지휘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파견부대의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가, 탱크나 장거리 대구경 화포 같은 중화기들을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면 어느 정도의 무장이 필요한가, 이라크인들과의 우호적 관계를 위해 어떤 대민봉사 활동을 벌일 것인가, 파견장병의 안전을 위해 어떤 사전 교육을 실시할 것인가 등 지금부터 결정하고 추진해야할 세부사항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지 않은가.

이러한 때에 정치권이 당리당략적 목적으로 서로의 눈치를 보거나 일부 시민단체들이 파병결정 자체에 대해 과격한 반대운동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런 논의는 이미 지금가지 한 것으로도 충분하다.
따지고 보면, 정부는 추가파병 문제와 관련하여 애초부터 지나치게 여론의 눈치를 살폈다. 중요한 국가정책이 국민의 여론을 중시하면서 입안되고 수행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고도의 전문성과 치밀한 국익계산을 요하는 사안을 막연히 국민대중의 여론에 내맡기는 것에는 문제가 많다.

이는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한 방안을 놓고 승객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가 치밀한 국익계산과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토대로 방향을 결정한 후 다소의 반대가 있더라도 여론을 주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사안도 많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보다 당당한 자세로 국론결집을 선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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