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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잃어서 미안합니다.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2020.11.24 정책기자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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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도 특수고용노동자는 있었다. 계약상 자영업자지만 택배회사의 업무 지시를 받았다. 없는 살림에 차를 구입해 택배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자신의 사업이라 생각했던 그에게 배송 기준은 잔인했다. 시간을 지키지 못해도, 잠시라도 경로를 이탈하거나 일이 생겨 출근을 못해도 벌금이 부과됐다. 

택배 일의 고단함은 그뿐만 아니다. 주인이 마당에 풀어 놓은 개에게 물리고, 택배의 위치를 전달하는 센서로 화장실에 갈 수도 없어 페트병에 볼일을 봤다. 배달 중 강도를 만나 갈비뼈가 부러졌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차에 오른다. 지난 해 개봉한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주인공 이야기다. 보는 내내 무거운 마음이 차올랐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갈수록 늘고 있는 택배기사들의 산업재해 사고 (출처=고용노동부, 국툐교통부)
갈수록 늘고 있는 택배기사들의 산업재해 현황.(출처=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택배회사에서 개인사업자로 일하는 A씨. 무엇보다 시간과 싸워야 한다. 하루에 배달하는 택배는 평균 450~500개. 많은 날은 한 15시간에서 16시간 정도 일해야 했다. 개인사업자라곤 하지만 사실상 작업량을 줄이거나 쉴 수가 없었다. 주차위반 과태료나 가벼운 사고에도 책임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렇게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버는 게 버는 게 아니었다. 아파서 쉬어야 하는 날에도 대신 일해 줄 기사를 자기 임금의 1.5배를 주고 불러야 했다. 무거운 짐을 여러 개 들고 계단을 올라가거나, 배달 중에 전화로 고객 응대도 해야 했다. 

1992년 최초 택배 서비스가 출범한 이래 시대는 빠르게 변했다. 온라인 쇼핑이 급격히 성장했고, 코로나19가 생겨난 세상에선 택배기사는 필수노동자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서 생겨난 택배 물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이러한 양적 성장 속에 택배기사의 과로사라는 한계가 드러났다. 

13일 서울 시내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기사들이 배송준비를 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2일 택배사별 1일 최대 작업시간을 정하고 오후 10시 이후 심야배송 제한 등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발표를 하고 실태점검 돌입한다고 밝혔다. 2020.11.13/뉴스1
13일 서울 시내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기사들이 배송 준비를 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에 지난 12일, 정부는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의 핵심은 ‘택배사별 1일 최대 작업시간 설정’과 ‘심야배송 금지’, ‘주5일 근무제 유도’, ‘표준계약서 도입’ 등이다. 업무량이 급증한 택배기사의 하루 작업시간의 한도를 정하고, 주5일 근무를 적용해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갖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으로, 지친 택배기사의 휴식과 건강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구체적인 방안도 마련했다. 주간 택배기사의 오후 10시 이후 심야배송에 대해서는 앱 차단 등을 통하여 제한하도록 권고, 적정 작업시간이 유지되도록 할 방침이다. 또한, 택배기사의 장시간·고강도 노동 방지를 위해, 사업주 조치 의무를 구체화하고, 직무분석을 통한 작업시간 등 평가 기준을 제시하여 택배사별로 상황에 맞게 1일 최대 작업시간을 정하고 그 한도에서 작업을 유도할 계획이다. 

택배사별 상황에 맞게 1일 최대 작업시간을 정하는 등 장시간·고강도 작업시간을 개선한다는 내용의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대책’ (출처=고용노동부)
택배사별 상황에 맞게 1일 최대 작업시간을 정하는 등 장시간·고강도 작업시간을 개선한다는 내용의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출처=고용노동부)


대리점에 택배기사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상 건강진단 실시 의무를 부과, 산재보험 가입을 방해한 택배회사를 처벌하는 조항을 만들어 택배기사의 사회안전망도 확대한다. 이를 위해 택배기사가 요구하면 물량 축소, 배송구역 조정 등의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택배사별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하고, 택배물량 조정에 따라 지연배송이 발생하더라도 택배기사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못하도록 할 계획이다. 

택배기사의 건강진단 및 사후관리 등 택배기사의 건강보호 강화를 위한 방안도 마련됐다. 건강진단 결과 택배기사에게 뇌심혈관질환 등 건강상의 문제가 우려되는 경우 대리점주가 작업시간 조정 등 조치를 협의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과로 예방을 위해 지속적으로 전문가 상담 등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아울러, 택배기사의 장시간 작업에 따른 직무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이행을 지도한다.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대책’으로 대리점 주에게 택배기사의 건강검진 실시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출처=고용노동부)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으로 대리점주에게 택배기사의 건강검진 실시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출처=고용노동부)


택배 가격 구조 개선방안 등도 마련할 계획이다. 인프라 확충 및 자동화 설비를 지원하고, 택배 배송시간 단축을 위해 도시철도 차량기지 등 유휴 부지를 활용하여 내년부터 2023년까지 공유형 택배 분류장을 30개소 이상 확충할 방침이다. 택배 분류작업의 자동화 설비 보급을 위하여 저리융자, 펀드 등을 활용하여 연 5000억 원 이상의 정책자금을 지원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대리점 등과 위탁 계약을 맺고 일하는 대부분의 택배기사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고 있다. 때문에 하루 평균 12.1시간을 작업하고 일요일이나 공휴일, 휴무 없이 주6일 배송이 보편화되어 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다. 특수고용직 종사자로 분류된 택배기사들은 정부의 과로방지 대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택배회사가 책임과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권고와 더불어 강제성이 동반돼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정부의 ‘과로사 방지대책’으로 특수고용종사자의 고용보험 적용을 통해 실직 위험에 대한 택배기사의 사회 안전망을 강화할 전망이다.(출처=고용노동부)
정부의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으로 특수고용직 종사자의 고용보험 적용을 통해 실직 위험에 대한 택배기사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전망이다.(출처=고용노동부)


열악한 노동환경의 변화는 제도적 개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변화는 조금씩 시작되고 있는지 모른다. 택배 노동자들의 요구 중 하나는 상자에 구멍을 뚫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40% 가량 하중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얼마 전 드디어 대형마트에서 택배상자에 구멍을 뚫어 손잡이를 만들기로 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반가운 일이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와 더불어 필요한 것이 있으니, 사람들의 배려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권고안으로 사회적 논의를 거쳐 확정될 방침이다.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통해 택배기사들이 생각하는 주된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기를, 제도와 기술적 기반이 택배산업의 양적 성장 속도와 병행하기를 바란다. 집 앞에 도착한 택배를 보고 살기 좋은 세상으로만 여겼던 것들이, 더 이상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기를 말이다. 




박은영
정책기자단|박은영eypark1942@naver.com
때로는 가벼움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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