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가무형유산 이수자 전시를 취재하던 중 "국립민속박물관에 전통문화와 K-컬처를 잇는 상설 전시 공간이 있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과거의 생활 문화가 어떻게 오늘의 한류와 연결되고 있을까.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 1부 <쓸모 있는> - 익숙한 물건에서 시작된 'K'
김치냉장고의 아이디어가 된 옹기. 전통 기술이 오늘의 생활 속으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다.
전시장 입구, 1부 '쓸모 있는'에서는 지게, 옹기, 호미, 한지 등 익숙한 물건들이 '한국인의 쓸모'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단체 관람객이 호미 앞에 멈춰 섰다.
인솔 교사가 "이게 뭐라고 생각해요?" 라고 묻자, 아이들은 "모르겠어요, 처음 봐요" 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에게 익숙한 물건들이 이제는 박물관 전시품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세대의 변화를 실감하게 했다.
동시에 전통이란 어쩌면 이렇게 세대를 잇는 '연결의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화·공예·복원 등 다방면에서 활용되는 한지. 전통 소재가 산업과 예술을 잇는 가교가 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복원에도 쓰인 한국의 한지 전통 기술이 세계 문화유산 보존에 기여한 상징적 장면이다.
한지 전시에서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복원에 사용된 한국 한지'에 관련된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적인 박물관이 우리의 재료를 복원 기술로 쓰고 있다니, 전통의 힘이 새삼 자랑스러웠다.
◆ 2부 <자연스러운> - 자연을 닮은 삶
'백의민족'의 상징인 흰옷은 한국인의 아름다움과 공동체 의식을 담고 있다.
자연 염색으로 만든 색동옷 조화와 생명의 색을 품은 전통의 미학이 현대 디자인으로 이어진다.
2부 <자연스러운>에서는 천연 염색으로 물든 색동옷과 '백의민족'의 상징인 순백의 옷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어서 전통의 멋을 담은 여러 종류의 모자가 시선을 끌었다.
드라마 <킹덤>으로 다시 주목받은 검은 갓뿐 아니라, 하얀 갓인 백립, 어린이의 굴레, 겨울바람을 막는 풍차까지, 모자의 나라라 불리던 우리의 멋과 실용미를 엿볼 수 있었다.
생활의 기억이 K-뷰티의 원형으로 되살아난다.
옆에는 자개 화장대가 놓여 있었다.
청소년들이 "이거 할머니 집에서 봤는데."라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 역시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보던 그 자개 화장대였다.
세월이 흘러 생활의 물건이 전시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게 묘하게 뭉클했다.
2025년 하반기를 달군 '까치호랑이'. 전통 민화의 유머와 상징이 K-굿즈 열풍으로 이어졌다.
2부 전시를 지나 3부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익숙한 그림 하나가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까치호랑이'.
그동안 하나의 이름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까치와 호랑이가 함께 그려진 민화였다.
이 전통 도상은 시대를 넘어 오늘의 K-컬처 아이콘으로 부활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까치호랑이 굿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2025년 하반기 한국 전통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익살과 여유, 그리고 상징의 미학, 전통의 유머가 현대의 디자인 감각과 만나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었다.
◆ 3부 <함께 하는> - 일상에서 피어나는 K-컬처
우리가 쌓아온 일상은 세계인의 시선에서 'K-컬처'로 새롭게 읽힌다.
3부 <함께 하는>은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식탁을 함께 둘러앉아 "밥 먹었어?" 라고 묻는 평범한 인사, 케이팝 공연이나 e스포츠를 함께 즐기는 장면들이 스크린에 이어졌다.
그 평범한 일상들이 이미 세계가 함께 즐기는 K-컬처가 되어 있었다.
◆ The K-존 – '오늘의 K'를 기록하다
조선시대 외국인의 기행문 속 한국, 그들의 시선에서 오늘의 K-문화가 시작되었다.
마지막 공간인 'The K-존'에서는 시대를 넘나드는 K의 여정을 만날 수 있었다.
19세기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의 기행문과 기록에서부터 오늘날 외신에 등장하는 'K-컬처'까지, 세계인의 시선 속 한국의 모습이 펼쳐졌다.
음악과 인터뷰가 어우러진 공간. 'K'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의 문화를 듣는다.
벽면에는 한국인, 외국인 등 각자의 시선으로 정의한 '나만의 K'가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되어 있었고, 공간 한편에는 1980년대 가요부터 오늘날의 케이팝까지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태블릿 화면에는 'K-컬처'를 주제로 한 강의가 재생되고 있었다.
오래된 기록과 현재의 문화가 같은 공간에 공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K'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쓰이고 있는 '오늘의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시대별로 축적된 K를 살펴보고 앞으로 만들어갈 K를 상상하는 공간.
전시를 관람한 외국인 루크(오스트레일리아)는 "경복궁을 구경하다가 바로 옆에 있는 박물관을 우연히 발견해 들어왔다" 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에 머무는 동안 민속촌이나 역사 유적지를 둘러볼 예정" 이라며 "한국의 민속 문화를 좀 더 이해하면 한국사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라고 덧붙였다.
이어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이런 전시를 통해 한국 문화를 이해할 좋은 출발점을 얻었다" 라고 말했다.
◆ 'K'의 근원은 전통, 문화의 시작은 박물관에서
앙드레 김의 의상과 금기숙 작가의 작품. 전통과 현대가 만나 완성된 'K-디자인'의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전시관 1관은 더 이상 과거를 회상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곳은 '전통의 보존'에서 '생활 속 확장'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담고 있었다.
앙드레 김의 디자인, 한지 가구, 금기숙 작가의 전통 재해석 작품들까지,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지금 우리가 말하는 K-컬처의 뿌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경복궁 방문길에 늘 보이던 국립민속박물관의 탑. 이번에는 직접 안으로 들어가 'K의 시작점'을 마주했다.
경복궁을 찾으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국립민속박물관을 함께 둘러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전통문화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강국을 돌아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그것을 새로운 산업과 예술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K-컬처 또한 결국 그 뿌리를 전통에서 찾는다.
박물관에서 만난 'K의 오늘'은, 바로 그 시작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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