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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산업연구원 소재산업실장 |
지난 5일 정부는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확정·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지난 7월 1일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행된 이후 혼돈 속에 있던 우리 제조업의 대응 방안을 마련한 첫 번째 종합대책이자, 향후 우리 산업 구조를 완결형 산업 생태계로 고도화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중장기 정책 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제조업 가치사슬의 시작점이자 혁신의 동인(動因)으로 평가되는 소재·부품·장비는 어느덧 우리 경제의 중추로 성장했다.
제조업 경쟁력의 원천으로서 소재·부품 및 장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구체화된 2001년 (‘부품·소재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제정) 이후, 정부는 고질적 대일 역조의 해소, 소재·부품·장비의 수출 산업화, 기술력 향상, 소재·부품·장비기업의 전문화·대형화 등 우리 소재·부품·장비산업이 안고 있는 해묵은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집중 추진했다.
이러한 민·관의 노력에 힘입어, 우리 소재·부품·장비산업은 2001년과 비교해 2018년 현재, 생산은 3배, 수출은 5배 증가했으며, 무역수지가 9억달러 적자에서 1375억 달러 흑자로 전환되는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달성했다.
눈부신 양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질(質)은 여전히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제조업의 소재·부품·장비 자립화율은 여전히 60% 대에 머물러 있고,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와 같은 핵심 주력산업의 국내 소재·부품·장비 조달 수준은 50% 미만에 불과한 실정이다.
핵심 중간재에 대한 높은 해외 의존도가 고착화되면서 우리 첨단산업이 성장할수록 핵심 소재·부품·장비 수입이 증가하는 일명 ‘가마우지형’ 산업 구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지속해온 우리의 성장 방식에 경종을 울리는 일종의 전환기적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관련 전략을 적은 안내문이 놓여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제조업 혁신의 전면에 소재·부품·장비를 내세웠다. 우선적으로 국가 산업의 위기를 초래한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공급 안정화 대책을 R&D부터 수입 다변화, 국내 공급 확대를 위한 다양한 지원체계 구축까지 촘촘히 담았다.
100대 품목을 중심으로 구성된 단기 공급대책이 성공할 경우 우리 제조 가치사슬상 약점으로 지목된 상당 부분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곧 우리 산업 생태계 하부구조의 탄탄함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번 대책은 제조업 르네상스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 주체로 소재·부품·장비를 주목하고, 그동안 반쪽짜리 성장에 불과했던 우리 제조업 생태계의 완성도와 품질을 제고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시화했다는데 보다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대책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산업 생태계적 관점에서 기술정책과 非기술정책간 균형이 상당히 고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기술정책 측면에서도 수요-공급 기업 간 협업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R&D 방식과 참여 인센티브를 구성하는 등 투자의 실효적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진일보한 정책이 제시돼 있다.
그러나 첨단소재, 핵심부품, 정밀장비와 같이 투자 위험이 크고 시장실패가 발생하는 분야의 경우 기술 획득을 위한 기술정책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시장화로 향하는 각 과정에 상존해 있는 리스크를 각 경제주체가 효율적으로 분담하는 것이 산업화 성공의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대책은 세제, 재정, 규제, 금융 등 그간의 기술정책 위주의 담론을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지원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단기적으로 우리 제조업 공급망에 중대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요인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이번 위기가 지금까지 우리 제조 현장에 고착화된 방식이 더 이상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값비싼 교훈이 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이번 대책의 성공적 추진은 큰 의미를 갖는다.
남은 과제는 각 경제주체가 대책에서 제시한 길을 일관되면서도 묵묵히 걷을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부처를 넘나드는 각 지원 정책 간 체계적이고 실효적인 연계를 위해서는 부처 간 이해를 조정하고 돌파할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한데, 이는 법적 근거에 기반한 운영 체계의 구체화를 통해 가능하다.
다행히 이번 대책에 수반해 정부는 ‘소재·부품 특별법’을 ‘소재·부품·장비 특별법’으로 확대 개편해 지원 근거를 명확히 하고 정책의 지속성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소재·부품·장비산업의 미래지향적 전환과 강건한 생태계 구축을 견인할 수 있는 개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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