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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호
- [특별기고(寄稿)]미(美) 월스트리트저널지(紙), 「한국의… 고민」을 읽고 노 재 봉(盧 在 鳳) 국회의원·전(前) 국무총리 지금 한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은 새로운 시대(時代)에 살고있다. 40년간의 권위주의(權威主義)가 사라지고 민주체제가 들어섰으며 경제사회가 산업사회로 변했다. 세계의 반쪽과 교류하던 것이 지금은 전세계에 열려진 민주체제(國際關係)를 가지게 되었고 유엔의 회원국까지 되었다. 권위적 심성(心性) 버려야 이 모든 것이 지난 4년동안에 이루어졌다. 시대를 달리하게 만든 변화는 역사가(歷史家)의 눈으로 보면 혁명(革命)임에 틀림없다. 민족의 역사상 이렇게 커다란 발전적인 변화를 겪은 일은 없을 성 싶다.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이 대전환(大轉換)은 신기하기만 할 것이다. 열전적(熱戰的)인 냉전(冷戰)의 긴장을 가장 밀도 짙게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역전과정(逆轉過程)을 거침이 없이 체제전환(體制轉換)이 가능할 수 있었는가는 아마도 희귀한 연구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 전환의 와중에서 몇년안에 임금이 두배이상 오르고도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것 또한 신기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더욱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마치 북한이 천국인것처럼 곳곳에서 붉은 띠를 두르고 주먹을 휘두르는 체제(體制)타도를 외쳐대던 판이였는데, 바로 그 북한이 남쪽의 경제협력(經濟協力)을 바라고 있는 현실에 외국인들은 그저 놀라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인 우리 자신들의 눈은 어떤가. 우리의 국민적 성공에 비하여 요즘만큼 우리 스스로를 비하(卑下)해 본일이 있는가 싶다. 모든 것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불만이며 불평이다. 이것은 근 반세기에 걸쳐 체질화되어 온 생활심리(生活生理)와 새로운 체제간의 마찰의 소신(所産)이라 생각된다. 피할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되는 새로운 민주체제(民主體制)에 적응해 나가려면 여간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의 상황을 현실이라 하여 그것에 맞추어나가야 한다면 우리는 값진 도약의 기회를 잃고 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政府) 만능시대 지나 권위주의(權威主義)의 유산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그것에서 초래된 사회적 인격(人格)이다. 권위주의는 그 영향의 전면성(全面性) 때문에 오래 지속되면 조그마한 일도 전체에 결부시켜 매도하는 심성을 만들어내고 그 철저성 때문에 무엇이든 완벽을 바라게 하는 욕구를 만들어내며 또한 크 타율적인 통치(統治) 때문에 개인이 스스로의 책임에서 면탈되어,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습성를 길러낸다. 그런 내용을 가진 인격이 우리 사회에서 오랜시간을 통하여 형성되어 왔다. 거의 습관처럼 실질화(實質化)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는 객관적인 체제가 변했다고 해서 쉬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4년간의 한국사회의 모든 곤란은 바로 그것에 기인했다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정확이 표현한다면 그동안 우리는 무질서(無秩序)를 경험한 것이다. 이것은 곧 권위주의를 통한 사회나 경제의 발전은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것이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통한 발전이라는 선택밖에 없다. 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한국은 다시 낙후되는 운명을 피할길이 없는것이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것은 새로 출발해야 할 바로 이 시점(視點)에 권위주의사회가 낳은 심성 때문에 모든 분야에 엄청난 퇴행적인 값을 치루었다는것이다. 그리하여 나나 할것없이 모두가 무기력(無氣力)과 실의에 빠지게 되고 도처에 굴절현상은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이대로는 안된다. 초기적인 근대화는 끝나고 지금한국은 현대화를 서둘러야 할 산업사회인 것이다. 과거의 방식으로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해낼수 있는일이란 이제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을 새로이 정비하고 조정하지 않으면 움직여질수가 없는 형편이다. 농사도 국제시장도 무시하고 할수 없는 상활에 놓이지 않았는가. 새출발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자조(自嘲)와 열등감(劣等感)을 벗고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이정도로 살게 만든 창조적(創造的)요소들을 다시 찾아 소중히 가꾸어나가야 한다. 민주화가 된 이 마당에 있어서는 각 분야가 정상적 자율기능(自律機能)을 발휘해야 한다. 정부가 모든 것을 다할수 있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각 분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논리에 합당한 자기개혁(自己改革)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통일의 길이란 것도 한국이 어떻게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느냐에 찾아진다는것이 명백하게 된 것이다. 통일을 감당할수있는 경제력을 갖자면 빨리 지금의 상황을 넘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간단없이 확장되어가는 현대국가들의 활동무대에서 한국은 위축될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간이 정말 없다. 단기간 동안에 한국은 두단계를 뛰어야 한다. 첫단계는 모든 왜곡되고 굴절된 제도와 질서를 정상화해야 하고 그 바탕위에서 다음의 발전단계로 진입해야 한다. 그럴수 있는 힘과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남의 눈에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새로운 기회(機會)와 도전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각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되찾아가면 족한 것이다. 1992.07.30
- 미(美) 윌스트리트 저널지(紙) ‘한국의 부질없는 고민’ 기사전문(全文) 한국인(韓國人)들은 지난 5년간 놀랄만한 경제성장(經濟成長)과 정치 민주화(民主化)를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는 커녕 불만에 차있다고 미국(美國)의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reet Journal)지(紙)가 21일 서울발(發)로 보도했다. 동지(同紙) 자매회사인 다우존스사(社)의 카렌 하우스 부사장(副社長)이 쓴 한국의 부질없는 고민이란 제하의 이 칼럼은 한국인들은 자신이 이룩한 더 큰 성공에 대해서는 외면(外面)한채 실패한 것에만 지나차게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칼럼 전문(全文). 우리나라가 쇠퇴하고 있다 한국은 경쟁력(競爭力)을 상실(喪失)했으며 직업논리(職業論理)가 퇴조하고 있다 국민들은 방향을 잃고 의기소침해 있다 우리는 강력한 리더쉽을 필요로 하고 있다 금년말(末) 대통령선거를 앞둔 한국(韓國)의 여기저기에서는 이같은 근심과 탄식이 직장이든 저녁자리에서든 반복되고 있다. 눈을 감고 있노라면 이런 대화(對話)는 워싱턴 D·C에서 나누는 이야기같기도 하고 1992년의 우울한 여름에 거의 모둔 선진국의 수도에서 들어볼 수 있는 그런 비관론(悲觀論)이다. 유권자들간에 이토록 만연된 비관주의는 실제로 정치·경제현실과 맞대놓고 비교해 보면 사뭇 과장된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韓國)만큼 이와 같은 비관론(悲觀論)을 내세울 근거가 희박하고 보다 역설적인 것처럼 보이는곳도 없다. 한국(韓國)은 그야말로 거의 모든 개발도상국가가 지향하는 모범국이다. 남북(南北)관계 새로운 진전(進展)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제성장율을 유지하면서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民主主義)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나라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韓國)은 경제적 자유(自由)를 확대하고 북한(北韓)과 대화의 문을 열었다. 또 중국(中國)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가들과 정치·경제 관계를 추진했으며 불과 수년전까지만 하더라도 학생 및 노조(勞組)의 시위로 시끄럽던 사회에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안정(安定)을 이룩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느냐는 생각도 있을지 모르나 적지않은 한국인들은 근 40년만에 최초의 민주주의적 선거가 실시됐던 5년전에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이런 성과(成果)에 대해 별다른 자부심이나 즐거움을 나타내기는 커녕 불만(不滿)에 가득차 있다. 한국인들의 얘기를 들으면 현재 미국(美國)에서 돌아가는 분위기와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 점이 많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미국인들은 속죄양과 구세주를 찾아 허우적거리면서 자신에 대한 비판과 회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분위기는 아이러니칼하게도 한국인(韓國人)을 포함한 세계도처의 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미국(美國)은 냉전(冷戰)에서 승리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정치적 가치관을 세계에 확산시켰으며 사담후세인과의 전면전에서도 승리했다. 또 거의 모든 측면에서 세계최고의 생산성과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미국(美國)이 왜 우울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인(韓國人)들도 자신들이 이룩한 더 큰 성공에 대해서는 외면(外面)한채 실패한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양국 국민들은 최근 수년간 나라를 이끌어 온 지도자를 고뷰(拒否)하려는 분위기가 높고 심지어는 정치체제 자체마저 배격하려는 느낌이다. 올 여름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억만장자 기업가인 로스페로와 놀아난 것처럼 적지않은 한국인들이 재벌 기업가인 정주영(鄭周永)씨와 희롱하고 있다. 이 두사람은 모두 강력(强力)한 지도력을 원하면서도 통치받기를 원치 않는 이 역설적(逆說的)인 사회에서 기업인으로서 쌓은 단순한 해결책을 국정(國政)운영이라는 복잡한 문제들에 적용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들의 불만(不滿)은 임기를 끝내고 물러나는 한국(韓國)의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나 재선(再選)을 노리는 부시 미(美) 대통령에게는 매우 곤욕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용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盧대통령은 합리적인 기준으로는 마땅히 칭찬을 받을 만한 그의 업적에 대해 한국사회가 올바른 평가를 하지 않는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盧대통령이야 말로 1948년이후 한국(韓國)에서 처음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다. 군인(軍人)출신이기는 하지만 盧대통령은 민주주의제도를 수립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이행했으며 신생 민주국가의 분출하는 많은 욕구불만을 적절히 처리했다 한국 민주주의 제도화(制度化) 또 국내의 반대세력과 무질서에 대해 철퇴를 가하고 싶은 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착실한 경제성장(經濟成長)을 주도해 왔으며 5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내년 2월에 퇴임한다는 약속을 지킴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를 제도화(制度化)했다. 盧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국민들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원한다면서 아울러 권위주의 통치하에서만 가능한 결과를 요구한다. 이러한 자세는 자기 모순이다. 나를 우유부단(優柔不斷)하다고 비판하고 있음을 알고있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제까지나 힘의 방식에 의존할 수는 없지 않는가라고 자신의 고뇌를 털어놓았다. 5년전만하더라도 정치적 정통성(正統性)의 문제가 한국(韓國)의 대통령 선거에서 유일한 이슈였다. 근 40년동안 한국은 억압적인 군부 독재자들에 의해 통치돼 왔으며 그들은 반대자들을 투옥하고 지도자들을 탄압했다. 또 학생들에게 폭력을 사용하고 전반적으로 공포와 무력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했다. 오늘 한국인들은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정치적 정통성(正統性)을 확보했음에도 불구, 이 위대한 업적을 깎아내리고 외면하고 심지어 헐뜯기까지 하고있다. 수년전 한국인들이 한결같이 경멸하던 독재시대의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던 강력한지도력과 법과질서 등을 오늘날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의 기억력이란 오래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를 지닌 사람들만이 정치적 자유가 갖는 문제점들에 대해 불만을 얘기할 수 있는 사치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결론을 짓게 된다. 경제성장률이 작년 8.5%에서 별로 차이도 크지 않으며 그것 자체도 대단한 7.5%로 줄어 들었을 뿐인데도 한국인(韓國人)들은 GNP가 후퇴하고 있다고 사치스러운 불평을 하고 있다. 근로자드른 임금이 지난 5년간 두배로 늘어났는데 인플레가 6.8%나 된다는 불만이다. 기업가들은 고임금(高賃金)·고금리(高金利)와 일본(日本)과의 경쟁에 대해 투덜대고 있으나 한국기업들은 그들의 경제적 입지를 전세계에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들은 또한 대단한 액수도 아닌 아마도 일시적(一時的)인 무역적자(貿易赤字)를 새로운 위기라고 개탄하고 있다. 으레 무역은 큰 흑자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不安感)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덕을 보고 있는 사람은 현대(現代)그룹의 창업주인 76세의 정주영(鄭周永)씨일지도 모른다. 鄭회장은 집권당의 후보인 김영삼(金泳三)씨 그리고 오랫동안 야당지도자였던 김대중(金大中)씨에 맞서 정치인을 거부하는 정치인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사소한 문제 악화되면 위험 한국(韓國)은 불과 5년간 민주정치제도를 유지해 왔는데 鄭씨는 벌써 이제도에 반기를 들었다. 한국(韓國)의 경제적 자유가 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야 하며 또한 미국도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범죄, 마약, 교육 등과 같은 국내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한(韓)·미(美)양국의 유권자들이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해결가능한 문제인 국내문제(國內問題)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한국의 민주화 그리고 미국(美國)의 경우 소련 공산주의의 패망이라는 진실로 가치있는 역사적 업적을 이처럼 평가절하 한다는것은 단순한 흥미로운 사회학적 증상으로 간과(看過)할 수 만은 없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증상(症狀)이 악화(惡化)될 경우 그 나름대로의 위험성을 수반한다. 현재 한(韓)·미(美)양국에 팽배한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인 자아비판분위기는 오랜 우방간인 두나라간의 상호이해의 충돌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역설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그들의 경제적 취약성을 너무 과장하고 일본(日本)의 경쟁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수출경쟁력을 회복해야겠다는 결의로 인해 한국 시장(市場)을 개방(開放)하여 더 많은 외국과 경쟁하도록 하느라는 미국(美國)의 압력(壓力)에 대해 점증하는 분노를 느끼고 있다. 반면에 과도한 군사적 공약(公約)이 미국(美國)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믿고 있는 많은 미국인(美國人)들은 미군을 국내로 불러들이고 외국시장에 압력을 가해서라도 개방시켜야 한다는 자세이다. 아직도 적대적인 북한(北韓)이 핵(核)무기 개발계획에 발벗고 나선 이시점에서 주한미군(駐韓美軍)의 철수가 초래할 좌절을 악순환은 한(韓)·미(美) 양국의 자기 중심적인 유권자들이 이제는 지나간 시대의 위험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바로 그런 종류의 국제적 위기를 촉발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1992.07.30
- [화제(話題)]전(前) 주한(駐韓) 독일(獨逸)대사 위르겐 클라이너씨 지난 85년 사월부터 92년4월까지 주한(駐韓) 독일(獨逸)대사를 지낸 위르겐 클라이너씨(59·현 나이지리아 대사)가 자신의 재임중 경험을 바탕으로 쓴 한반도-험난한 길위에(Korea-Auf Steingem Pfad)란 제목의 책이 이달초 독일에서 출간돼 많은 화재를 모으고 있다. 클라이너씨는 모두 5부18장 3백71쪽으로 구성된 이책에서 한국의 민주화과정과 북방정책의 성과등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정도로 놀랬다. 당시 노태우(盧泰愚)대통령후보는 시대가 요청하는 극적(劇的)인 방향으로 민주화(民主化)를 단행했다. 클라이너씨는 이책에서 6·29선언과 관련한 내용을 상세히 다루면서 당시 한국(韓國)의 여론은 盧후보의 제의를 크게 환영했고 일부에서는 열광적으로 지지하기 까지 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는 盧후보가 사전(事前)에 전두환(全斗煥) 전(前)대통령의 동의를 받았는가에 대한 갖가지 억측이 자자했지만 누가 뭐래도 국민들을 향해 노선변경을 선언한 것은 바로 盧후보라고 지적, 盧후보의 정치적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클라이너씨는 남북한(南北韓)의 통일정책에 대해서도 언급, 한국(韓國)은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화해(和解)의 바탕위에 점전적인 통일을 이루려는데 반해, 북한(北韓)은 한국에서의 혁명을 고대하면서 이를 조장하고 있다고 북한을 비난했다. 그는 이어 북한(北韓)은 최근까지 반체제인사와의 대화만을 선호해 왔다고 지적, 그 실례로 문익환목사와 임수경양의 방북(訪北)시 북축은 떠들썩한 환영으로 이들을 선전에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또 한국(韓國)은 88년2월25일 盧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했듯이 6공화국 정부구성초기부터 정열적으로 북방정책을 취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북방정책은 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동구권(東歐圈)국가들의 개혁시점이 맞물려 성공적으로 추진돼 한국은 순식간에 소련을 비롯한 모든 동구의 국가들과 국교를 수립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또 불과 몇 년전만 하여도 개발도상국에 불과하였던 한국(韓國)이 이제는 동구권국가들이 추파를 던지는 국가로 변모했다는 사실에 한국인들은 자부심(自負心)을 가져도 좋다고 덧붙였다. 1992.07.30
- [시론(時論)]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계기로 되돌아본 서울 올림픽 박 세 직(朴世直) 국회의원, 전(前)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장 무더위로 지쳐있는 이때 반갑게 찾아온 한줄기 시원한 바람은 지중해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25회 여름 올림픽 소식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불어오는 이 바람은 우리들 모두의 콧등을 찡하게 한다. 88년 서울 그날의 환희(歡喜)와 감동(感動)을 일깨워준다. 그날의 환희와 감회 새로워 우리 모두가 아낌없이 신바람 나게 정열을 바쳐 이룩한 소중한 꿈을 유럽의 한나라에서도 이루려고 애쓰는 모습은 정말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올림픽이 무엇이기에 피카소, 달리, 미로, 가우스를 배출하면서 세계문화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스페인이 이다지도 혼신(渾身)의 노력을 기울이는가 수지(收支)기 맞아서일까 아니면 국내적 불만(不滿)을 덜어보자는 정치적 목적때문일까. 세계인의 대화(對話)의 장(場)으로는 유엔과 올림픽을 들 수 있겠으나 진정 이념(理念)의 벽을 넘어서 화합(和合)이라는 지고(至高)·지선(至善)의 인류적 가치를 이룰수 있는 것은 올림픽 밖에 없다. 민족적 재도약 전기(轉機)마련 우리가 5천년 문화를 결집(結集)시키고 빛나는 시민(市民)정신을 꽃피워 화합과 전진(前進)이라는 숭고한 이념으로 인류사(人類史)에 기여한 것처럼 스페인도 이렇게 하는것이 인류 지구가족이 되는 첩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우리가 올림픽을 통하여 한란(限難)과 고통의 세월을 청산하고 하면 되다는 자기 확인속에서 민족적 재도약의 전기(轉機)를 만들었듯이 스페인도 프랑코시절 내전(內戰)이래 정체돼온 국가발전의 새로운 전기(轉機)는 바로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뿐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일요일 새벽 유럽적인 강력한 빛과 소리로 우리들의 잠을 설치게 한 몬주익경기장의 개회식은 서울올림픽을 되돌아 보게한다. 너무도 쉽게 우리로부터 잊혀져 갔으나 다시 바로셀로나에서 세계인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그 장엄한 한민족(韓民族)의 자랑스런 성공이야기를 일깨운다. 미국의 어느 신문도 최근 지적했듯이 어리석은 불만으로 안타깝게 스스로 퇴색(退色)시켜 버린 우리들의 세계적 성적표를 다시보게된다. 그 어는 민족의 어린이가 굴렁쇠 하나로 세계를 평정(平定)할 수 있었는가. 혼돈과 탐욕으로 일그러진 소란스런 세상을 그렇게 간단히도 정숙(靜淑) 속으로, 평온속으로 몰고 갈수있겠는가. 세계와 함께한 민족(民族)대잔치 마주보고 굉음(轟音)을 내면서 달려오는 두 대의 탱크를 누가 단숨에 소리없이 잠재울수가 있는가.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고(鼓)놀이의 평화비법을 알아낼수 없는 것이다. 강(江)으로 강(江)으로 다양한색깔, 서로 다른 생각, 원주의 마음을 가진 50억 인류(人類)를 불러들여 지난 세계사의 반목(反目)을 누에둥지속에서 녹여버리고 다시 그 강(江)으로 모두 웃으며 돌아갈수있도록 어느 누가 그렇게 쉽게 해낼 수 있는가. 전세계가 걱정했던 분단(分斷)의 땅에서 마지막 남은 화약차(火藥車)에서 6월 민주화 여진(餘震)속에서 소매치기 사고 한건없이 민족의 이름으로 세계와의 약속을깨끗이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잘해낸 일을 벌써 잊어버리지는 않았으리라 세계는 우리를 격찬했다. 독일인(獨逸人)의 정확성과 일본인(日本人)의 친절성, 그리고 미국(美國)의 자본가적 정신이 한데 어루어진 세기적(世紀的)성공작이 서울올림픽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바로 이것이 오늘의 한국적힘의 근간(根幹)을 이루고 있다는 지적을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서울 올림픽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서울올림픽은 5천년 우리역사의 영광일뿐만 아니라 지난 세대(世代)의 한(限)과 지금 세대(世代)의 꿈을 모아 다음 세대의 신화(神話)를 만들었다고 우리 모두 자부(自負)했다. 21세기(世紀)향한 힘찬 전진(前進)기대 우리는 또한 서울 올림픽은 한국근대사의 금자탑(金字塔)이자 우리 민족사(民族史)와의 큰 약속=화합(和合)과 평화, 그리고 인간이 있는 민주화를 달성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분단을 극복하자는=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 우리들의 약속은 희미한 과거속으로 퇴색해 가고 있는 것 또한 작금(昨今)의 현실인것 같다. 이제 우리는 서울올림픽이라는 민족의 金반지를 다시 꺼내 소중히 닦고 자랑스럽게 손가락에 끼워야 한다. 스페인이 그 옛날의 영화를 되찾고자 올림픽으로 몸부림치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때 가장 어려운곳에서 기적(奇蹟)같은 업적을 이룩했듯이 우리는 다시 뭉쳐서 이미 도약대(跳躍臺)를 뛰어오른 매무새를 바로잡아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기고 통일을 이룩하며 힘차게 21세기로 나아가야 한다. 이처럼 그 신화(神話)가 아직 살아있고 민족적 자부심(自負心) 또한 드높기에 우리는 다시 해내고야 말것이다. 1992.07.30
- [김달현(金達玄) 북한 정무원 부총리 방한(訪韓) 의의]핵(核)의혹 해소 선결(先決)과제 이 동 복(李東馥) 남북(南北)고위급회담 대변인 최각규(崔珏圭)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초청으로 김달현(金達玄) 북한(北韓) 정무원 부총리 일행이 지난 7월 10일부터 25일까지 우리쪽을 방문하고 돌아간 바있다. 문화유적지 3곳 참관 金부총리는 방문기간중 포항(浦項)제철, 대우(大宇)조선, 삼성(三星)반도체 등 13개 업체의 우리측 산업시설과 함께 롯데백화점, 남대문시장,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과 비원(秘苑),석굴암을 비롯한 3개소의 문화유적지를 참관했다. 또한 초청자인 최각규(崔珏圭)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과의 세차례에 걸친 만남을 비롯 경제(經濟)5단체장, 다수의 기업(企業)경영인 등과 의견교환기회를 가졌다. 특히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24일 김달현(金達玄)부총리 일행을 특별히 접견하고 남(南)과 북(北)이 국제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남북간(南北間) 경제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현안문제로 되어있는 핵(核)문제와 남북간 각 분과위원회 부속합의서등 경제협력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기본문제에 대한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각별히 당부한 바있다. 주지한 바와같이 작금(昨今)의 남북(南北)관계는 지난해 말 서울에서 개최된 제5차 남북고위회담(南北高位級會談)에서 남북(南北)사이의 화해(和解)와 불가침(不可侵) 및 교류(交流)·협력(協力)에 관한합의서를 채택한 이래 이에 따른 분야별 공동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南北)당국간의 상설 공식 접촉 창구인 남북(南北)연락사무소를 판문점(板門店)에 각각 설치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또 오는 8월 하순에는 비록 적은 규모이지만 이산가족(離散家族) 노부모(老父母) 방문단 및 예술단을 상호교환 방문키로 합의하는 등 외견상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 그러나 북측(北側)이 한반도(韓半島)의 비핵화(非核化)에 관한 공동선언에서 분명히 확인한 바 있는 남북(南北) 핵상호사찰(核相互査察)을 거부하고 있고 기본합의서에 규정된데 따라 이의 이행을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을 담아야 할 각 분과위원회 부속합의서 합의(合意)를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지연시키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남북(南北)관계가 오히러 그 어느때 보다도 더한 경색국면을 맞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루어진 이번 김달현(金達玄) 북한 정무원 부총리의 서울방문은 남북한 기본합의서에 의거 남북(南北) 교류·협력에 공동위원회의 가동과 이를 통한 남북한 경제분야에서의 교류 협력 추진을 앞두고 그 전단계로서 북측 고위(高位)경제 관료로 하여금 우리측 경제발전상을 직접 확인, 경제교류와 협력의 파트너로서의 우리의 역량(力量)을 인식시켰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이들에게 우리측의 실물경제현장을 직접보게 함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남북(南北)간 경제 분야 교류·협력에 효과적으로 대비할수있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아울러 남북(南北)경제협력이 활발하게 추진되기위해서는 현안으로 걸려있는 북한의 핵개발의혹해소와 남북(南北)간의 각 분과위원회 부속합의서 합의문제들이 하루속이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했다. 金부총리 일행의 이번 방문의의를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면 우선 남북(南北)경제정책 최고당국자간의 정상적인 교류와 협의의 길이 열렸다는점이다. 확고한 정부(政府)기본입장 피력 사실 북한(北韓)은 그동안 소위 그들식의 조국통일 3원칙에 입각, 개별기업간의 합작과 교류만을 주장하면서 남북(南北)경제교류·협력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반드시 요청되는 남북한(南北韓) 쌍방책임 있는 당국자간의 협의를 외면해 왔다. 체제 특성상 민간기업이 존재할 수 없다는 북측(北側)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북측(北側)주장은 소위 남조선(南朝鮮)혁명론에 입각한 통일전선 전술을 경제협력분야에 적용한 것으로서 남북한(南北韓)경제교류와 협력의 실질적 진전을 희망하는 우리정부와 국민들에게 많은 실망과 우려를 갖게 했던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金부총리의 일행의 방한은 우리측 崔부총리의 초청에 의한 공식방문형식으로 실현됨으로써 이러한 우리 내부의 우려를 불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측에는 오래전부터 남(南)과 북(北)이 모두 상대의 실상을 정확히 이해하는것이 통일(統一)로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위경제실무관료인 북측(北側) 金총리의 방문과 뒤이어 이뤄질 최각규(崔珏圭) 부총리의 북측(北側)지역방문은 앞으로 양측간에 이같은 분야별, 사안별, 당국자간 교류가 본격적인 남북(南北)교류의 전형으로 정착될수 있는 계기가 될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핵(核)상호사찰과 남북(南北) 공동분과위 부속합의서 합의, 이산가족(離散家族)교환방문문제 등 남북(南北)간의 현안문제에 대한 정부의 단호하고도 확고한 기본입장을 직접 전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점이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국민적 여론을 배경으로 金부총리 일행에게 북측(北側)이 필요로하는 경제협력도 핵사첼(核査察)문제의 해결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우리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주지시키는데 노력함으로써 이들도 핵(核)사찰 문제해결의 심각성을 체득하고 돌아갔으리라고 기대된다. 부속 합의서(合意書) 조속해결기대 다음으로 중요한것은 우리 정부의 남북(南北)문제에 대한 미래지향적이고도 의연한 자세를 내외에 과시한점이다. 북한(北韓)의 남포공단조성·타당성 조사를 위한 조사단 파견 합의는 남북(南北)간 본격적인 경제협력의 구체적 이행에 앞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전 단계적 조치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이번 金부총리 일행은 방문기간 중 둘러본 우리기업체에서 남북(南北)간 경제협력이 가장 실용적이고 실리적이라는 평가를 가졌을 것이며 아울러 우리 국민들이 핵(核)문제, 이산가족(離散家族) 등에 갖고 있는 감정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현장인식이 궁극적으로 부속합의서의 조속한 합의를 통해 각급 남북공동위원회를 정상적으로 가동시키고 나아가서는 핵(核)문제의 원만한 해결에 크게 기여하리라고 기대해 본다. 이제 남(南)과 북(北)이 경제교류와 협력을 통해 남북의 균형있는 발전과 민족공영을 이루어 통일(統一)의 길로 다가설수 있느냐 여부는 북측(北側)의 판단과 선택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92.07.30
- 노재봉(盧在鳳)씨 특별 기고(寄稿) 이것은 곧 권위주의를 통한 사회나 경제의 발전은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것이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통한 발전이라는 선택밖에 없다. 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한국은 다시 낙후되는 운명을 피할길이 없는것이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것은 새로 출발해야 할 바로 이 시점(視點)에 권위주의사회가 낳은 심성 때문에 모든 분야에 엄청난 퇴행적인 값을 치루었다는것이다. 그리하여 나나 할것없이 모두가 무기력(無氣力)과 실의에 빠지게 되고 도처에 굴절현상은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이대로는 안된다. 초기적인 근대화는 끝나고 지금한국은 현대화를 서둘러야 할 산업사회인 것이다. 과거의 방식으로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해낼수 있는일이란 이제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을 새로이 정비하고 조정하지 않으면 움직여질수가 없는 형편이다. 농사도 국제시장도 무시하고 할수 없는 상활에 놓이지 않았는가. 새출발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자조(自嘲)와 열등감(劣等感)을 벗고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이정도로 살게 만든 창조적(創造的)요소들을 다시 찾아 소중히 가꾸어나가야 한다. 민주화가 된 이 마당에 있어서는 각 분야가 정상적인 자율기능(自律機能)을 발휘해야 한다. 정부가 모든 것을 다할수 있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각 분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논리에 합당한 자기개혁(自己改革)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통일의 길이란 것도 한국이 어떻게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느냐에 찾아진다는것이 명백하게 된 것이다. 통일을 감당할수있는 경제력을 갖자면 빨리 지금의 상황을 넘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간단없이 확장되어가는 현대국가들의 활동무대에서 한국은 위축될수밖에 없는것이다. 시간이 정말 없다. 단기간 동안에 한국은 두단계를 뛰어야한다. 첫단계는 모든 왜곡되고 굴절된 제도와 질서를 정상화해야 하고 그 바탕위에서 다음의 발전단계로 진입해야 한다. 그럴수 있는 힘과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남의 눈에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새로운 기회(機會)와 도전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각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되찾아가면 족한 것이다. 1992.07.30
- 핵(核)의혹 해소 선결(先決)과제 김달현(金達玄) 북한 정무원 부총리 방한(訪韓)의의 이동복(李東馥) 남북(南北)고위급회담 대변인 최옥규(崔玉圭)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초청으로 김달현(金達玄) 북한(北韓) 정무원 부총리 일행이 지난 7월 10일부터 25일까지 우리쪽을 방문하고 돌아간 바있다. 문화유적지 3곳 참관 金부총리는 방문기간중 포항(浦項)제철,대우(大宇)조선, 삼성(三星)반도체등 13개 업체의 우리측 산업시설과 함께 롯데백화점, 남대문시장,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과 비원(秘苑),석굴암을 비롯한 3개소의 문화유적지를 참관했다. 또한 초청자인 최옥규(崔玉圭)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과의 세차례에 걸친 만남을 비롯 경제(經濟)5단체장, 다수의 기업(企業)경영인등과 의견교환기회를 가졌다. 특히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24일 김달현(金達玄)부총리 일행을 특별히 접견하고 남(南)과 북(北)이 국제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남북간(南北間) 경제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현안문제로 되어있는 핵(核)문제와 남북간 각 분과위원회 부속합의서등 경제협력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기본문제에 대한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줄것을 각별히 당부한바있다. 주지한 바와같이 작금(昨今)의 남북(南北)관계는 지난해 말 서울에서 개최된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南北高位級會談)에서 남북(南北)사이의 화해(和解)와 불가침(不可侵)및 교류(交流)·협력(協力)에 관한합의서를 채택한 이래 이에 따른 분야별 공동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南北)당국간의 상설 공식 접촉 창구인 남북(南北)연락사무소를 판문점(板門店)에 각각 설치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또 오는 8월 하순에는 비록 적은 규모이지만 이산가족(離散家族) 노부모(老父母) 방문단 및 예술단을 상호교환 방문키로 합의하느등 외견상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 그러나 북측(北側)이 한반도(韓半島)의 비핵화(非核化)에 관한 공동선언에서 분명히 확인한 바 있는 남북(南北) 핵상호사찰(核相互査察)을 거부하고 있고 기본합의서에 규정된데 따라 이의 이행을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을 담아야 할 각 분과위원회 부속합의서 합의(合意)를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지연시키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남북(南北)관계가 오히러 그 어느때 보다도 더한 경색국면을 맞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루어진 이번 김달현(金達玄) 북한 정무원 부총리의 서울방문은 남북한 기본합의서에 의거 남북(南北) 교류·협력에 공동위원회의 가동과 이를 통한 남북한 경제분야에서의 교류 협력 추진을 앞두고 그 전단계로서 북측 고위(高位)경제 관료로 하여금 우리측 경제발전상을 직접 확인, 경제교류와 협력의 파트너로서의 우리의 역량(力量)을 인식시켰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이들에게 우리측의 실물경제현장을 직접보게 함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남북(南北)간 경제 분야 교류·협력에 효과적으로 대비할수있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아울러 남북(南北)경제협력이 활발하게 추진되기위해서는 현안으로 걸려있는 북한의 핵개발의혹해소와 남북(南北)간의 각 분과위원회 부속합의서 합의문제들이 하루속이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피부로 느낄수있게 했다. 金부총리 일행의 이번 방문의의를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면 우선 남북(南北)경제정책 최고당국자간의 정상적인 교류와 협의의 길이 열렸다는점이다. 확고한 정부(政府)기본입장 피력 사실 북한(北韓)은 그동안 소위 그들식의 조국통일 3원칙에 입각, 개별기업간의 합작과 교류만을 주장하면서 남북(南北)경제교류·협력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반드시 요청되는 남북한(南北韓) 쌍방책임 있는 당국자간의 협의를 외면해 왔다. 체제 특성상 민간기업이 존재할수 없다는 북측(北側)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북측(北側)주장은 소위 남조선(南朝鮮)혁명론에 입각한 통일전선 전술을 경제협력분야에 적용한 것으로서 남북한(南北韓)경제교류와 협력의 실질적 진전을 희망하는 우리정부와 국민들에게 많은 실망과 우려를 갖게 했던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金부총리의 일행의 방한은 우리측 崔부총리의 초청에 의한 공식방문형식으로 실현됨으로써 이러한 우리 내부의 우려를 불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측에는 오래전부터 남(南)과북(北)이 모두 상대의 실상을 정확히 이해하는것이 통일(統一)로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위경제실무관료인 북측(北側) 金총리의 방문과 뒤이어 이뤄질 최옥규(崔玉圭) 부총리의 북측(北側)지역방문은 앞으로 양측간에 이같은 분야별, 사안별, 당국자간 교류가 본격적인 남북(南北)교류의 전형으로 정착될수 있는 계기가 될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핵(核)상호사찰과 남북(南北) 공동분과위 부속합의서 합의, 이산가족(離散家族)교환방문문제 등 남북(南北)간의 현안문제에 대한 정부의 단호하고도 확고한 기본입장을 직접 전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점이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국민적 여론을 배경으로 金부총리 일행에게 북측(北側)이 필요로하는 경제협력도 핵사찰(核査察)문제의 해결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우리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주지시키는데 노력함으로써 이들도 핵(核)사찰 문제해결의 심각성을 체득하고 돌아갔으리라고 기대된다. 부속 합의서(合意書) 조속해결기대 다음으로 중요한것은 우리 정부의 남북(南北)문제에 대한 미래지향적이고도 의연한 자세를 내외에 과시한점이다. 북한(北韓)의 남포공단조성·타당성 조사를 위한 조사단 파견 합의는 남북(南北)간 본격적인 경제협력의 구체적 이행에 앞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전 단계적 조치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이번 金부총리 일행은 방문기간 중 둘러본 우리기업체에서 남북(南北)간 경제협력이 가장 실용적이고 실리적이라는 평가를 가졌을 것이며 아울러 우리 국민들이 핵(核)문제, 이산가족(離散家族)등에 갖고 있는 감정을 충분히 이해했을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현장인식이 궁극적으로 부속합의서의 조속한 합의를 통해 각급 남북공동위원회를 정상적으로 가동시키고 나아가서는 핵(核)문제의 원만한 해결에 크게 기여하리라고 기대해 본다. 이제 남(南)과 북(北)이 경제교류와 협력을 통해 남북의 균형있는 발전과 민족공영을 이루어 통일(統一)의 길로 다가설수 있느냐 여부는 북측(北側)의 판단과 선택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1992.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