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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예방, 피해자 권리보장부터

[안전사회로 가는 길] ② 이화영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

2012.10.12 이화영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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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잇따른 아동성폭력 사건들로 사회적 불안과 국민적 공분이 커진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도 성폭력 범죄해결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논의가 뜨겁다. 정부에서도 성범죄 예방과 처벌에 대한 수위 높은 대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이와 관련, 공감코리아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정부 대책 수립, 성범죄 예방 의식 확산 등에 도움이 되고자 각계 전문가 5명의 의견을 듣는 기회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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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발생한 성폭력 사건과 정부의 대책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심각한 성폭력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을 나누고, 보호해야할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를 판단하여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면 마치 해결될 것처럼 대책을 쏟아내고 있어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연간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로 접수되는 1400여 건의 상담 중에 80%이상이 아는 사람에게 당한 성폭력이다. 우리 상담소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내부적으로 관계와 피해유형으로 사건을 지칭하고, 지명으로 사건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통영사건’을 ‘이웃집 아저씨가 아동을 성폭행한 후 살해한 사건’으로 명명하고 언론에 친족성폭력 사건이 더 많이 보도되었다면 우리사회가 겪을 불안감의 종류와 성질은 달라져 있었을지 모른다. 성폭력사건에 지명을 붙이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모르는 관계처럼 보여지고, 가해자는 성범죄 전력이 있거나 사이코패스이거나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사회에 대한 원망이 있는 사람이라는 식의 보도는 성폭력가해자는 특수한 사람이라는 또 다른 통념을 심어주게 된다.

성폭력가해자를 특수한 사람으로 보고 사회와 격리되거나 분리 되어야 할 사람으로 보는 것은 성폭력 예방이나 피해자 지원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가해자를 특수한 사람으로 보게 되는 순간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은 ‘특수함’의 범주에서 배제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리적 제도개선도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가 성폭력범죄를 예방하기 가장 먼저해야할 것은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발생률이 80%이상을 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법제도 개선을 수립하는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는 ‘특수’한 사람이 아니다

몇 달 전 지원하던 내담자가 힘들어서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전화를 해왔다. 상대는 종교시설의 주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몇 년 간 지속되어 온 사건이다. 조금만 견디면 되는데 하는 마음이 앞서서, 검찰에 기소될 때까지만 참아보자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모든 가족들이 이 일로 인해서 죽을 지경이다, 포기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니 살만하다고 했다. 고소과정을 함께 하다 보니 내담자뿐만 아니라 함께 조사받으러 가고, 지지자의 역할이 되어준 가족도 지병이 악화될 정도로 많이 힘드셨던 것 같다. 가해자가 종교시설 이용자를 데리고 와서 협박을 하고, 명예훼손이나 무고로 역으로 고소하겠다고 하니까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던 것 같고 지지자 역할이던 가족이 힘들어하니까 결정적으로 고소를 포기하게 된 것 같다.

내가 만나왔던 내담자들은 내가 피해자니까 고소하면 경찰이 내 편을 들어줄 것이고, 가해자는 곧 구속되어 나의 모든 게 편안해 질 것이라는 기대, 최소한 무엇인가는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기대를 갖고 있는데 현실은 다르며 현실을 모른다고 탓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이 고소했을 때 접하게 되는 기대와 다른 환경을 탓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수사에 들어가면 가해자의 대부분은 본인의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내담자는 고소인 자격으로 피해 받은 사실을 증거로 입증하고, 여러 차례 진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항상 수사기관이 가해자의 편을 드는 것 같다는 의심을 말하곤 한다. 피해자는 제3자에게 피해를 말하는 어려움도 넘어서야 하고 다른 사람이 통념을 갖고 나를 바라볼지 모른다는 두려움과도 맞서야 한다. 수사기관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고소한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이 가해자의 편을 들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가 어떤 절차로 수사재판과정에 임하게 될지, 다른 어려움이 발생한다면 어느 기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피해자들에게 의무적으로 고지해야 한다. 성폭력피해에 대해서 모두가 고소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소를 했을 때 수사기관이 공정하다는 느낌을 준다면 이 또한 피해를 극복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드러나지 않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관심을

이번 사건들로 기자들에게 성폭력 예방을 위한 궁극적인 대책이 무엇인지 수차례 질문 받았다. 오래전부터 여성운동단체나 성폭력상담소들은 성폭력예방교육이 실질화 되어야 하고, 사람들의 통념을 바꿀 수 있는 교육이 평생교육처럼 자리 잡아야 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해왔었다.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피해를 당했다면 도움 받을 곳을 구체적으로 알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성폭력예방교육도 화재사고, 안전사고에 대한 대처법처럼 상식이 되어야 하고, 끊임없는 금연 공익광고의 효과가 타인에 대한 배려로 나타나듯 성폭력예방교육도 꾸준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신상공개,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등 정부의 보여주기 식의 제도마련에 대해서는 상당한 우려가 든다. 또 가해자를 처벌하려면 재판부의 판결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폭력 신고율이 10%를 넘지 못하고, 2011년 대검찰청이 밝힌 5년간의 기소율은 47.5%, 이 중에서 징역형의 실형 선고율은 28%다. 신고율이 10%라고 볼 때 전체 성폭력 사건 중 실형 선고율은 1.33%다. 즉 100명의 성범죄 중에 단 한명이 처벌 받는데 전자발찌와 화학적 거세는 중형이기 때문에 대상자가 되는 사람의 비율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성폭력 예방,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는 가해자처벌도 중요하지만 아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이 80%이상인 현실을 직면하여 제도를 정비하고,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피해사실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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