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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의 역사와 판문점 정상회담 의미

판문점,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를 만든 장소로 다시 자리매김 하길

장용훈 연합뉴스 통일외교부 기자 2018.04.06

장용훈 연합뉴스 통일외교부 기자
장용훈 연합뉴스 통일외교부 기자
휴전을 앞둔 전선의 치열한 대결을 다룬 영화 '고지전'은 휴전협정을 논의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1951년부터 1952년까지 지루한 협상이 지속된 협상 텐트. 천으로 된 허름한 텐트가 세워지고 지루한 말싸움을 주고받던 그 곳이 바로 판문점이다. 판문점(板門店)이란 지명은 '널문(리) 가게'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현재 판문점은 남쪽 땅도 아니고 북쪽 땅도 아니며, 공동경비구역(JSA)으로 불린다. 남쪽 지역은 유엔군 사령부가 관할하고 있다.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이다. 휴전협정이 체결돼 1953년부터 현재까지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이어가는 출발이 만들어진 장소이기 때문이다. 휴전협정 이후 천막이 있던 자리에 목조 건물이 들어섰다. 이후 남한은 1965년에 '자유의 집'을, 북한은 1968년 '판문각'을 세웠고 목조건물 대신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게 됐다.

대결과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은 1970년대 초 미중간 정상회담과 관계개선으로부터 데탕트가 시작되면서 변화했다. 미국의 대화 요구, 그리고 당시 박정희 정권의 국내 정치적 필요가 결합되면서 적십자 회담이 시작됐고 판문점이 남북한 사이의 관계를 논의하는 장이 된 셈이다.

판문점에서 우리 군과 북측 경비병들이 군사분계선 턱 하나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판문점에서 우리 군과 북측 경비병들이 군사분계선 턱 하나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후 25차례의 예비회담과 실무회의를 거쳐 1972년 8월 29일 1차 적십자 본회담이 평양에서 열리게 된다. 그리고 9월에는 2차 회담이 서울에서 열렸다. 남과 북이 서로 상대 지역을 오가며 회담을 하기로 하자 치열한 체제경쟁이 시작됐다. 우선 대표단이 오갈 수 있는 도로가 필요했다. 당시 서울에서 판문점까지는 비포장이었고, 비 오는 날에는 회담 대표들이 타고 가는 차가 수렁에 빠진 일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12월에 지시해서 석 달 만에 여러 건설회사가 구간을 나눠 초고속으로 통일로가 만들어졌다. 급한 나머지 뿌리도 없는 나무를 심기도 했다. 북한도 판문점에서 평양까지 250km의 도로를 100만 명의 인원을 동원해 초고속으로 건설했다.

남북한의 대표단이 오가고 회담이 열리면서 판문점은 분단을 대체할 대화와 화해를 만들 것 같았지만, 국제정세의 변화에 떼밀려 시작된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화가 끊기자 대결이 다시 들어섰다. 그리고 1976년 8월 18일 '도끼 만행 사건'으로 아찔한 충돌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반도의 유일한 중립 지역인 판문점에도 38선이 그어졌다. 높이 7cm, 너비 40cm의 시멘트로 경계선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남북한의 대표단은 이 선을 넘어 오가고 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의 첫 정상회담 이후에도 사실 판문점에는 화해와 평화가 깃들지는 못했다. 북한은 미군이 주축인 유엔사령부가 판문점을 경비하고 있는데 대한 거부감으로 판문점을 통한 이동과 남북간 각종 회담을 개최를 꺼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 당국간 회담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 북한은 남쪽의 기업인 현대아산이 관광 사업을 해온 금강산 지역을 사실상 중립지역으로 보고 이 곳에서 회담과 접촉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2005년 개성공단 시범단지가 가동에 들어가고 개성에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가 들어서면서 개성이 남북한의 중립지역으로 여겨지면서 많은 회담이 개성에서 열렸다. 사무소에는 남북한이 논의할 수 있는 회의공간이 갖춰지면서 손쉽게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판문점 ‘평화의 집’. (사진=파주시청)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판문점 ‘평화의 집’. (사진=파주시청)

이런 면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리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우선 1953년 6·25전쟁의 총성이 멈추고 휴전의 불안정한 평화가 깃든 땅에서 진정한 한반도 평화의 길을 만드는 회담이 열리기 때문이다. 판문점이 대결이 아닌 화해의 장소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두 번째로 북한 최고지도자가 판문점에 놓인 높이 7cm의 경계선을 넘어 남쪽 땅을 처음으로 밟게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지만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항공로를 통해 평양을 갔고,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경의선 육로 위의 분계선을 넘어 승용차편으로 평양을 향했다.

끝으로 최근 북한의 태도변화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판문점이 유엔군, 더 정확하게는 미군이 관할하는 지역이라는 이유로 회담 개최에 거부감을 보여 왔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현재의 한반도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이러한 입장을 확장하면 일부에서 제기하는 주한미군 철수라는 의제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주한미군 주둔의 현실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단과 면담에서 4월부터 치러지고 있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혀 이런 태도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이 열릴 날이 20여일 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 정상회담이 휴전 이후 켜켜이 쌓인 남북한 대결의 묵은 때를 벗어낸다면 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은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를 만든 장소로 다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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