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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지도력’으로 이끌어낸 ‘교황 방북 수락’

김종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전 교황청립 한국신학원장) 2018.10.22

김종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전 교황청립 한국신학원장)
김종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전 교황청립 한국신학원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부터 21일까지 프랑스, 이탈리아, 교황청에 이어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열린 ASEM 정상회의에 참석해 여러 정상들을 만났다. 유럽 순방의 마지막 방문지인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도 ‘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회의에 참석해 기조 연설을 하고, 덴마크 총리를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이 모든 정상회담에서 각기 고유한 다른 의제들이 있었겠지만 그와 병행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설명하고,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문 대통령 자신의 구상에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더해 문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촉진을 위한 대북 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각국 정상들에게 설파했다. 그래서 언론은 문 대통령의 유럽 순방의 가장 큰 목적을 ‘북한 제재 완화의 공론화’라고 보도했다.

각국 정상들과 개별적인 회담을 할 때는 그 정상들이 문 대통령의 구상에 동의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으나 ASEM 정상회의는 의장 성명에서 여전히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촉구하고, 북한 제재를 포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완전한 이행을 재차 약속했다.

이러한 국제 사회의 반응에 필자는 야속한 느낌이 들었다. 국내 언론을 통해 들은 일본 언론들의 평가는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아베 총리의 승리라는 것이었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과 반대 입장에서 경쟁해 아시아와 유럽의 정상들의 마음을 붙잡았다는 이야기다.

아베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때까지 북한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북한 제재를 완화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앞당겨 실현하는 데에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라는 커다란 장애를 뛰어넘기가 쉽지 않음을 절감하게 한다. 여기에 더해 이번 ASEM 정상회의는 문 대통령의 구상을 살현하기 위해서는 이 회의의 모든 회원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양 초청 의사를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전해 듣고 매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하지만 교황의 평양 방문도 쉽지만은 않다.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려면 몇 가지 선결 조건들이 있다. 그 조건들은 쉽게 해결될 사안들이 아니다. 그래서 2000년 김대중 정부 때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교황 초청에도 실제 방문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당신의 방문이 이뤄지면 ‘기적’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화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화하고 있다.(사진=청와대)

그러나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인 성격을 들어 아주 이른 시일 안에 교황의 북한 방문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현 상황에서 교황의 평양 방문이 이뤄지면 그것은 아주 대단히 예외적인 일, 기적 같이 예외적인 일이 될 것이다.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는 데 첫째 어려움은 우리의 교계 제도 때문이다. 교황은 정치적 목적으로도 어느 지역을 방문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교황의 외국 방문은 무엇보다도 사목 방문으로서 그 지역의 신자들을 만나는 데에 가장 큰 뜻을 지닌다.

그런데 북한에는 자유롭게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하는 신자들이 없다. 실체적인 신앙 공동체가 없다. 사목자도 없다. 더욱이 평양 교구 사목을 책임진 분은 ‘평양교구 서리’라는 이름으로 서울에 있다.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게 되면 서울교구장을 겸하고 있는 평양교구장 서리, 곧 염수정 추기경이 평양에 가서 북의 정상과 함께 교황님을 맞아야 한다. 가능한 일일까?

교황이 바티칸 시국의 ‘정상’으로 북한을 방문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정상으로 외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 언제나 가톨릭 교회의 최고 목자인 교황으로서 방문한다. 바티칸 시국은 이탈리아로부터 독립돼 고유한 주권을 행사한다는 것 외에 다른 나라와 맺는 외교 관계에서는 의미를 갖지 않는다. 바티칸 시국은 다른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지 않는다. 다른 나라와 외교 관계는 교황청이 맺는다. 곧 교회가 맺는 것이다.

교황이 현 평양교구장 서리의 영접 없이 직접 평양을 방문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경우는 북한의 지위를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로 인정하고 이미 설립돼 있는 평양교구와 함흥교구 그리고 덕원 면속구(수도원구)의 존재를 무시하고 북한에 새로운 교구 설립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은 교회의 역사 안에 없었다. 교황이 한 명의 신자도 없는 땅에 첫 선교사처럼 그 지역이나 나라를 방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는 엄연히 교구가 있다.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교황청 국무원 관계자들은 북한의 교황 초청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구두로써만이 아니라 정식 통로를 통한 ‘공식 초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교황의 외국 방문의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고 들었다.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교황의 북한 방문은 정치적 방문일 수만은 없고 사목 방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문 대통령의 교황 방문에서도 확인됐다. 통역을 통해서 전해진 표현이긴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나는 북한을 방문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Sono disposto a visitare la Corea del Nord)”면서 “공식 초청(l’invito ufficiale)이 도착하면 평양에 갈 수 있을지 확실히 답을 줄 것입니다(Sicuramente darò una risposta se arriva un invito (ufficiale) e se posso andare)”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식 초청’이라는 표현이 지닌 함축적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북한 또는 평양에 가톨릭 교회가 재건돼 주교와 사제들이 상주하게 되고, 그들이 북한 정부와 함께 교황을 초청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평양을 방문하고자 하는 교황의 뜻은 확고한 것으로 확인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파격적이듯이 김 위원장도 파격적이어서 매우 빠른 속도로 북한에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교계제도를 복원해 교황을 초청한다면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지 못 할 이유가 없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교황청,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이 꿈꾸는 일이다. 필자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마음이 들떠 있다. 좋은 일이 제도적 한계 때문에 이뤄지지 않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희망한다. 지독히 예외적인 일이라고 하더라도 교황의 평양 방문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교황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가는 길을 멈추지도 말고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남북이 진정하고 꿋꿋한 마음으로 평화와 통일의 길을 닦는다면 완성된 길을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장애는 많다. 우리 편도 없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이 길을 가야 한다. 필자는 일찍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도력을 ‘겸손한 지도력’이라고 해 왔다. 그 겸손한 지도력으로 세상의 갖은 장애를 이기고 우리나라에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데에 자기 직분을 다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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