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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동물화, 몸통은 같으나 깃털은 달랐다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변상벽의 ‘닭’과 이암의 ‘개’

2016.07.28 변종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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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그림을 보다보면 동물화가 의외로 많다. 개, 고양이, 닭, 소, 말, 까치, 메추리, 독수리, 호랑이 등 많은 동물이 그려졌는데 특히 생활 속에서 흔하게 보는 개와 닭,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 적지 않다. 그 표현 방식과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조선시대에 동물화는 문인화나 풍경화에 견주어 격이 낮은 그림으로 취급됐지만, 사실 동물 그림은 동물의 생태적 특징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정확한 묘사로 그릴 수 있는 재능이 필요한 어려운 그림이다.

정확한 데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칫 우스꽝스럽거나 부자연스러운 그림이 되기 쉽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 익숙한 동물들을 그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리는 것이 관건이다.

이암, 윤두서, 김두량, 변상벽, 최북, 김홍도, 신윤복, 장승업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 대부분이 동물화를 그렸지만, 자신이 그린 다른 장르 그림보다 동물화를 앞세울 수 있는 화가는 많지 않다.

그만큼 동물화로 뚜렷한 자기만의 화풍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된다. 언급한 화가 중 동물화로 자신의 화풍을 선보인 화가를 꼽자면 이암과 변상벽을 들 수 있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동물화의 품격을 높여준 화가라 할 수 있다.

변상벽(卞相壁, 1730~?)은 ‘변계(卞鷄)’와 ‘변고양(卞古羊)’이라 불릴 만큼 닭과 고양이를 잘 그렸다.

도화서 출신에 영조어진을 그린 경력자답게 고양이와 닭을 표현한 탁월한 묘사력은 조선회화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대표작 <자웅장추>와 <모계영자도>를 보면 그를 왜 변계라고 불렀는지 실감할 수 있다. <자웅장추>는 암수탉이 병아리를 거느리며 한가롭게 먹이를 먹는 광경을 놀라울 만큼 사실적으로 그린 수작이다.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처럼 실감이 난다.

<도판1> 변상벽 <자웅장추도>, 18세기 중엽, 종이에 채색, 30×46cm, 간송미술관소장.
<도판1> 변상벽 <자웅장추도>, 18세기 중엽, 종이에 채색, 30×46cm, 간송미술관소장.
 한껏 깃털을 세우고 강렬한 눈빛으로 정면을 쏘아보고 있는 수탉이 압권이다.

우선 닭의 시점부터 남다르다. 일반적으로 정면은 묘사하기 어려워 웬만한 실력이 아니면 화가들도 시도를 꺼리는 방향이다.

그러나 변상벽은 이러한 우려를 완벽하게 떨쳐냈다. 토종 수탉을 큰 벼슬의 머리 부분에서 꼬리 깃털까지 신묘한 필치로 그려냈다. 형태뿐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새끼를 보며 경계하듯 노려보는 인상이나 깃털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집요함이 돋보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변상벽의 닭 그림을 보고 탁월한 재능에 감탄하며, 자유분방하게 휘둘러댄 산수화보다 탁월한 묘사와 실증을 바탕으로 그린 그의 사실적 그림을 한층 높게 평가한 이유를 알만하다.

<도판2> 변상벽 <모계영자도>, 18세기 중엽, 비단에 채색, 101×50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도판2> 변상벽 <모계영자도>, 18세기 중엽, 비단에 채색, 101×50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변상벽의 또 다른 닭 그림인 <모계영자도> 역시 수작이다.

<자웅장추>의 그림에서 흡사 암탉과 병아리만 따로 분리해서 그린 것 같다. 새끼들을 돌보는 암탉의 모성애를 더욱 강조한 그림이다. 수탉대신 괴석을 배치하고, 나비와 꽃을 그려 넣어 다양함과 따뜻함을 더했다.

<도판3> 변상벽 <자웅장추도>, <모계영자도> 부분도
<도판3> 변상벽 <자웅장추도>, <모계영자도> 부분도

 

 

 

 

 

 

 

<자웅장추>보다 화폭이 큰 만큼 닭과 병아리의 사실감이 더하다. 수적으로 늘어난 병아리들의 모습을 한층 다양하고 재미있게 묘사한 것도 눈에 띈다. 어미가 물고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몰려든 새끼들, 어미 뒤에서 졸고 있는 녀석, 실지렁이를 서로 당기는 녀석들, 사발위에 올라 물을 마시며 하늘바라기를 하는 모습 등 그야말로 정감 있는 풍경이다.

솜털처럼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병아리의 털이나 암탉의 깃털 등 질감이 손끝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이다. 이렇듯 변상벽의 <모계영자도>와 <자웅장추> 두 그림은 현대미술의 극사실화와 비견될만한 정교한 그림이다.

변상벽보다 앞서 활동한 조선 초의 화가 이암(李巖, 1499~?) 역시 영모화에 빼어난 재능을 지닌 화가였다.

다만, 그의 삶과 예술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 몇몇 사료의 기록과 현존하는 작품으로 그의 위대성을 가늠할 뿐이다.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증손자였고, 동물화를 잘 그리고, 중종어진제작(1545)에 참여했다는 어숙권의 ‘폐관잡기’나 그의 화명이 기록된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의 사료 정도가 전부이다.

그러나 한 가지 그가 어진에 참여했고,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그림이 일본에 전해졌다는 점에서 당대 명성을 추측해볼 수 있다.

이암이 즐겨 그린 소재는 고양이와 강아지(개)이다. 특히 천방지축으로 노는 강아지들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탁월했다.

철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고, 장난치고, 노는 모습이 한없이 사랑스럽다. 한 마리 한 마리가 귀여움으로 가득하다. 흡사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

이것이 이암의 동물화와 변상벽의 동물화가 다른 점이다. 이암의 동물화가 한결 부드럽고, 유아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두 화가가 그린 고양이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변상벽의 <묘작도>는 고양이 특유의 날카롭고 예민한 성질과 유연한 동세를 실감나게 그렸다.

반면 이암의 고양이는 마치 강아지처럼 귀엽고 장난기 많은 동물로 친근감이 넘친다. 고양이끼리 응시하는 장면의 변상벽 그림에 비해 고양이를 호기심 많은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강아지를 그린 이암의 그림이 훨씬 동화적이다.

<도판4> 이암 <화조묘구도>, 16세기 중엽, 비단에 채색, 86.4×43.9cm, 평양조선미술박물관소장 / / 변상벽 <묘작도>, 18세기 중엽, 비단에 채색, 93.9×43.0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도판4> 이암 <화조묘구도>, 16세기 중엽, 비단에 채색, 86.4×43.9cm, 평양조선미술박물관소장 / / 변상벽 <묘작도>, 18세기 중엽, 비단에 채색, 93.9×43.0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이암의 조형적 특징은 그의 대표작 <모견도>와 <화자구자도>에서 쉽게 확인된다.

<모견도>는 평화롭게 쉬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한사코 엄마의 품속을 파고들며 어미젖을 찾는 강아지와 이미 한껏 배를 불리고 있는 강아지를 다리로 감싸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특히 형제들의 행동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 등 위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고 강아지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어미개의 모습이 정겹고 포근하다. 머리에서 유난히 긴 꼬리까지 전체적으로 사용한 곡선이 화면의 부드러움을 배가 시킨 효과를 준다.

 이 그림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은 개의 목을 감싼 방울 달린 붉은 색 목걸이다. 먹색과 대비되는 붉은 색과 강조한 방울이 장식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듯 보인다.

주인이 있다는 표시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느껴진다. 예로부터 민간신앙에서 방울을 단 개가 잡귀를 쫓는 벽사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사냥, 호신, 집 지키기 등에 뛰어난 재능뿐 아니라 재앙을 물리치는 능력을 지닌 동물로 여겼다.

실제 세화(歲畵)그림에 개를 그릴 경우 반드시 방울 달린 목걸이를 함께 그렸다. 이 점에서 이암의 그림도 감상을 넘어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염원을 함께 담은 그림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암의 또 다른 대표작 <화조구자도>에는 어미개 대신 강아지와 새, 나비, 괴석이 그려졌다. 꽃나무에 앉은 두 마리 새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나비와 벌이고, 정작 강아지들은 무관심하고 각자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

흰둥이는 앞발에 잡힌 곤충에 온통 집중해 있고, 중앙에 있는 검은 강아지는 어딘가를 유심히 바라고 있다. 그 뒤로 세상모르고 잠자고 있는 강아지도 보인다. 봄날 한가롭게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넘친다.

<도판5> 이암 <화조구자도>, 16세기 중엽, 종이에 담채, 86.0×44.9cm, 보물 1932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 이암 <모견도>, 16세기 중엽, 종이에 담채, 73.2×42.4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도판5> 이암 <화조구자도>, 16세기 중엽, 종이에 담채, 86.0×44.9cm, 보물 1932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 이암 <모견도>, 16세기 중엽, 종이에 담채, 73.2×42.4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막상 <화자구자도>와 <모견도>를 놓고 보니 두 그림에 등장하는 세 마리 강아지는 생김새로 보아 같은 강아지처럼 보인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왼쪽 까만 강아지가 성견이 되면 우측의 어미개 처럼 될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미래의 모습이랄까? 어쩐지 두 그림에서 시간의 연속성이 느껴진다.
 
살펴보았듯이 변상벽과 이암의 동물 그림은 세심한 관찰과 뛰어난 묘사력으로 동물의 생태적 특징을 정확하게 표현한 걸작들이다.

무엇보다 두 화가의 동물 그림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암탉이나 새끼를 포근하게 감싸며 안락함을 주는 어미개(모계중심)의 행동묘사를 통해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동물과 인간이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이것이 변상벽과 이암의 동물 그림에 담긴 진정성일지 모른다.

옛 그림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은 단순 지식이나 시각적 만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의미와 가치 발견이야말로 옛 그림을 보는 진정한 의미이며 즐거움이다.

*관련 추천도서 : 유홍준 ‘한국미술사강의 3’, 눌와, 2013. / 백인산 ‘간송미술 36회화’, 컬처그라피, 2015.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에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4.2)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겸 편집위원, ANCI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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