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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의 반려를 위하여

2016.09.30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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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과 나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무조건 좋아한다. 그런 사람하고 들길이든 산길이든 함께 걸으면 참 좋다. 그런 동행은 평화롭고 격조 있다. 바위틈에 수줍게 피어난 야생화나 한겨울 앙상한 나무도 무슨 꽃이니 무슨 나무니,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특성이 무언지 이야기해주면 놀랍고 존경스럽다. 사람이 새로 보인다. 난 그런 사람에겐 정말 한 수 접는다. 삶의 여유와 깊이와 멋을 아는 지혜롭고 선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런 내공이 없다. 한때 식물도감을 열심히 외워보기도 했다. 그러나 시험 공부하듯 사진 보고 외운다고 외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금세 알았다. 눈썰미가 없는 나에겐 모양도 색도 비슷비슷한 꽃과 나무 이름을 구별한다는 건 넘사벽이다. 아마도 식물과 진정한 교감이 없이 살아와서가 아닐까 싶다.

며칠 전 구리시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코스모스 축제에 놀러갔다. 끝도 안 보이게 10억 송이가 펼쳐진 장관이었다. 코스모스를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봤다. 빨강 분홍 하얀 꽃이지만 꽃잎의 모양과 색조의 그라데이션이 참으로 다양하고 오묘했다. 가을바람에 살랑거린다 해서 우리말로는 살사리꽃이려니. 코스모스보다 정겨운 이름이다.

코스모스 꽃밭 구석에 처음 본 꽃이 피어있었다. 연노랑의 은은한 색상에 접시꽃 모양인데 키도 꽃잎도 꽤 크고 무엇보다 소박했다. 바로 사진을 찍어 ‘모야모’에 올려보았다. 10초 안에 다섯 명한테 답이 왔다. 한지를 만드는 ‘닥꽃’이었다.
 
꽃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참 많다. 모야모는 2014년 IT전문가 박종봉씨가 만든, 식물 이름과 정보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이다. 사진을 찍어 올리면 거의 실시간으로 답이 달린다.  회원들이 경쟁하듯 자발적으로 답을 올린다. 같은 취미를 가진 집단지성의 힘을 가장 성공적으로 증명한 사례로 꼽힌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과연 호응을 해줄까 걱정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반응은 대단했다. 가입자가 25만 명, 누적 질문이 100만 건을 넘었다. 하루 수천 건의 질문과 답이 오고 간다. 세계 최대의 식물 분야 질의응답 서비스가 되었다. 단순히 꽃과 풀과 나무 이름만 묻고 답하는 것 말고도 자신이 경험한 식물 이야기나 키우는 법들도 주고받는다.

식물에 대한 첫 번째 관심과 애정은 바로 이름을 알고 불러주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김춘수, ‘꽃’)
 
시인 안도현은 ‘무식한 놈’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이 들길 여태 걸어 왔다니//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그는 애기똥풀에 죄를 졌다. ‘나 서른다섯이 될 때까지/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얼마나 서운했을까요.//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애기똥풀’)
 
이름을 알면 친해지고 같이 있고 싶어진다. 요즘에 ‘반려식물’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반려식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면, 식물은 조용한 여유와 소소한 기쁨을 주어 좋다고 한다. 꼬리를 흔들고 품에 안기는 애교는 없지만, 그 자리에 조용히 있는 그 자체만으로 위안을 준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환한 햇살 아래 반짝이는 꽃, 밤새 삐죽 솟아나온 새 순을 발견하는 경이로움. 누구는 그 잎이 시들어 나의 불찰을 깨우치는 삶의 리트머스 페이퍼라고 썼다. 식물은 ‘키우는’ 게 아니라 ‘기른다’. 기른다는 건 키운다는 것보다 왠지 정성이 더 느껴지는 말이다.

사실 잘 몰라서 그렇지 식물의 세계는 참으로 경이롭다. 명저로 꼽히는 ‘식물의 정신세계’(피터 톰키스 공저. 1993)란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식물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한다. 예쁘다고 말을 들은 난초는 더욱 아름답게 자라고, 불품없다는 말을 들은 장미는 자학 끝에 시들어 버린다. 떡갈나무는 나무꾼이 다가가면 부들부들 떨고, 홍당무는 토끼가 나타나면 사색이 된다.’

식물이 동물보다 열등하다는 건 편견이라는 과학적 연구와 저술이 많다. 식물은 지능을 갖고 의사소통을 하며 외부의 환경과 자극에 대해 동물보다 훨씬 더 지각하고 전략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이젠 정설로 통하고 있다. 식물은 지구상 생물의 99.9%를 차지한다. 식물국회, 식물인간이란 말은 식물이 들으면 화낼 일이다. 식물에 대한 모욕죄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취향과 기호에 변화가 생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동물보다 식물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성호르몬의 변화와 비슷한 거 같다. 무심코 지나치던 나무와 꽃 이름이 궁금해지고 봄가을에 꽃시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나이를 먹어 간다는 뜻이요, 몸 안에 식물성이 자란다는 징표다.

팍팍하고 분주하고 폭력적인 이 경쟁사회는 테스토스테론이 지배하는 동물성이 아닐까. 발 없는 식물은 한 자리에서 조용하게 피고 지지만, 잎으로 가지로 알 거 다 알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한다. 식물과 소통한다는 건 그런 세상의 이치를, 삶의 질곡을 아는 것이다.

시인 도종환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읊었고, 함민복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다. 고독한 킬러 레옹은 늘 작은 화초를 안고 다녔다. 고은 선생의 세 줄짜리 시는  말한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올 때 못 본/그 꽃.’(‘그 꽃’)
절창이다.

한기봉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을 구제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한국 언론과 글쓰기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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