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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음악, 미술로 그리다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미술과 음악의 하모니

2017.02.28 변종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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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펫은 밝은 색조로 옮겨갈수록 예리한 음을 낸다. 청색이 밝으면 플루트가, 청색이 어두우면 첼로와 가깝다.…초록색은 바이올린이 길게 뿜어낼 때 나는 중간음이며, 빨강색은 튜바의 강한 음색과 닮았다.’

악기소리를 색에 비유한 이 표현은 추상미술의 창시자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의 말이다.

음악과 관련한 이미지를 그리지 않고도 음악의 감흥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로 제작한 칸딘스키의 추상미술은 음악적 감성을 표현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음악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아름다운 선율을 악기나 악보로 표현하지 않고, 음악을 듣고 느낀 심상을 즉흥적으로 표출했다.

음악과 미술의 관계는 매우 특별하다. 색조, 조화, 구성이라는 공통적 용어의 사용에서부터 미술과 음악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발전해 왔다.

실제 미술에서 음악은 소재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음악’ 하면 떠오르는 그림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도 아래의 그림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림과 추상적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크게 나뉠 것이다.

좌-칸딘스키<인상3-콘서트> 1911. 캔버스에 유채,77.5×100cm. 우-천이페이, <현악4중주> 1986, 캔버 스에 유채, 150×226cm
좌-칸딘스키<인상3-콘서트> 1911. 캔버스에 유채,77.5×100cm. 우-천이페이, <현악4중주> 1986, 캔버 스에 유채, 150×226cm

세계적인 극사실주의 작가인 중국의 천이페이(1946~2005)의 <현악4중주>가 미술사의 오랜 전통인 사실주의 맥락의 양식이라면 칸딘스키의 미술은 음악에서 받은 영감이나 느낌을 색과 선으로만 표현한 추상미술의 대표 양식이다.

그러나 미술사에는 천이페이의 그림과 같이 음악이 단순히 묘사나 재현의 대상이 아닌 칸딘스키의 추상미술처럼 내적 감정을 표현하거나 작품세계의 근본적인 바탕을 이루는 경우가 있다.

이 글은 후자의 경우에 집중해 음악이 미술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몇몇 작품을 사례로 살펴보자.

음악을 미술에 이입하려고 한 칸딘스키의 열정은 <인상3-콘서트>란 작품의 제작배경에서 엿볼 수 있다.

<인상3-콘서트>는 1911년 1월 1일에 오스트리아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1874~1951)의 연주회에서 연주를 듣고 그날의 느낌을 표현한 그림이다.

화면의 주를 이루는 색은 검은색과 노란색이다. 검은색은 그랜드 피아노를 상징하고, 노란색은 피아노 연주 소리를 상징한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흰 기둥이 있고, 연주회를 가득 메운 청중들이 쇤베르크의 연주소리(노란색)에 흠뻑 빠진 순간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 이후에 칸딘스키는 쇤베르크와 편지를 왕래하며 예술적 교감을 나누고, 점점 음악과 미술을 접목한 추상 세계로 빠져들었다.

음악가가 미술가에게, 미술가가 음악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례는 미술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여러 사례 중 음악가가 미술 작가에 영향을 준 경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음악가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표한 작품이 있다.

파리, 퐁피두 센터문화광장의 장 팅겔리(좌)와 니키드 생팔(우)의 작품, 1982,
파리, 퐁피두 센터문화광장의 장 팅겔리(좌)와 니키드 생팔(우)의 작품, 1982,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생 메리 성당의 가운데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색채와 특이한 모양의 기계부품들로 만들어진 특이한 작품들이 있는 조각 분수가 있다.

러시아 현대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의 대표작〈봄의 제전〉을 기리기 위해 니키드 생팔과 장 팅겔리가 제작, 설치한 것이다.

20세기 가장 혁명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봄의 제전>은 초연 당시에는 과격하고 원시적인 공연으로 관객의 격렬한 비판과 평단의 신랄한 혹평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가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할 정도로 위대한 작곡가로 추앙받는다. <스트라빈스키의 분수>는 이러한 반전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이다.

르네상스 시대 그림이 현대 조각가에게 영감을 주고, 그 조각가의 작품이 다시 현대 음악가에게 영향을 준 경우도 있다.

지난 2002년 10월, 영국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지름 30m의 거대한 나팔, 파이프 길이 150m, 10층 빌딩 높이와 맞먹는 거대한 작품이 설치됐다.

현대미술의 거장 애니쉬 카푸어가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의 1576년 회화 <살가죽이 벗겨지는 마르시아스>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마르시아스>란 작품이다. 마르시아스는 그리스신화 속 산과 들의 정령인 사티로스를 지칭한다.

반인반수인 사티로스는 피리(플루트)연주로 농부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재능을 지녔지만, 아폴로와 연주대결에서 패하여 살가죽이 벗겨지는 형벌을 받은 비극의 주인공이다.

카푸어는 신에게 도전하여 생명을 잃어가면서도 예술로 경쟁하며 음악가로서 자존심을 지켜낸 당당함과 피부가 벗겨지는 잔혹한 형벌을 받은 마르시아스를 충격적으로 그린 티치아노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실제 카푸어는 작품의 PVC 표면 막이 ‘벗겨진 피부’ 같다고 말했다. “하늘 속으로 들어가는 육체를 만들고 싶었다”는 카푸어의 고백에서 ‘마르시아스’의 제작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규모나 제작방법, 설치, 개념 등에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도전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어느 위치에서도 전체적인 조망이 어려운 건축적 조각 작품을 통해 예술의 무한성을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애니쉬 카푸어 <마르시아스> 2002, 테이트모던 미술관, 런던 / 카푸어의 <마르시아스> 작품 앞 아르보 패르트의 <라멘타테> 초연장면, 2003.
애니쉬 카푸어 <마르시아스> 2002, 테이트모던 미술관, 런던 / 카푸어의 <마르시아스> 작품 앞 아르보 패르트의 <라멘타테> 초연장면, 2003.

상상을 뛰어넘는 카푸어의 작품은 또 다른 예술가에게 창조적 영감을 주었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세계적 작곡가인 아르보 패르트이다.

그는 카푸어 작품을 보고 놀라운 작품을 제작한 조각가와 작품에 관한 오마주로 <라멘타테>를 작곡했다. 그리고 2003년 2월에 카푸어의 작품 앞에서 초연했다.

<라멘타테>는 피아노 독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때로는 지배하고, 위로하고, 보듬는 듯 거대공간속에 울려 퍼지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돋보이는 음악이다.

마치 인간의 삶에서 마주하는 희로애락을 닮았다고 할까. 현대음악가 이면서도 어렵지 않은 음악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아르보 패르트의 신비롭고 명상적인 음악 특색이 <라만타테>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궁극에 애니쉬 카푸어의 세 개의 붉은 파이프가 다른 방향(공간)으로 입을 벌리고 외치는 듯한 작품과 비가(悲歌)를 의미하는 아르보 패르트의 <라멘타테>에는 어떤 비장미(悲壯美)가 느껴진다.

궁극에 미술에서 음악은 칸딘스키와 천이페이의 그림처럼 두 가지 양식으로 표현되고, ‘칸딘스키와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와 니키드 생팔·장팅겔리’, ‘애니쉬 카푸어와 아르보 패르트’처럼 예술적 공감을 이뤄왔다.

서로의 영역을 포용하고,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끌어냈다. 음악이 미술, 즉 회화나 조각에서 표현되는 과정과 수준을 보면 현대미술에서 표현되는 스케일과는 차이가 크다.

무엇보다 현대예술에서 현실과 보편성을 뛰어넘는 ‘신화, 비현실성, 상반된 가치’ 등을 콘셉트로 창작활동을 펼치는 많은 예술가에게 음악은 창조적 영감의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

음악적 지식이 전혀 없는 대중들도, 아름다운 화성 앞에서는 감동하기 마련이지만, 그림으로 조화로운 조합과 화음과 같은 공식을 찾으려한 칸딘스키와 같은 추상회화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색은 영혼에 직접 영향을 주는 힘이다. 색은 키보드이고, 눈은 망치이며, 영혼은 끈이 달린 피아노이다.

‘예술가는 연주하는 손으로 하나의 키 또는 다른 키를 두들겨서 영혼이 떨리게 한다.’(칸딘스키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고 말한 칸딘스키의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 다가올지 모르겠다.

만약 그의 그림에 공감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오늘 하루는 따뜻한 주황색 같은 음악을 듣고 싶다.’, ‘오늘 오후는 첼로의 깊은 저음처럼 짙고 무겁다.’라는 식으로 읊조리게 되지 않을까? 

* 참고문헌 및 추천도서 : 진회숙 지음,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세종서적, 2008.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6), ANCI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며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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