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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전원에서 들려오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헝가리/머르톤바샤르

2017.03.27 정태남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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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년 독일 본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20대 초반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이주해 57세에 생애를 마칠 때까지 빈을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젊은 시절에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헝가리를 여러 번 찾았다.

그의 행적은 부다페스트에서 남서쪽으로 약 30킬로미터에 있는 머르톤바샤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이 곳은 인구 6000명 정도의 아주 작은 도시로 웬만한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도 않다.

독일계 헝가리 유력 귀족가문 브룬스비크의 저택. 오른쪽에 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독일계 헝가리 유력 귀족가문 브룬스비크의 저택. 오른쪽에 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부다페스트에서 열차편으로 이 곳으로 오려면 서부역에서 세케슈페헤르바르(Székesfehérvár) 행 기차를 타고 네 번째 역인 머르톤바샤르에 내리면 된다. 역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브룬스비크 거리가 길게 쭉 뻗어져 있다.

이 길을 따라 약 300미터 정도 걸어가면 브룬스비크 거리 2번지의 정문에 헝가리어로 브룬스비크 카스테이(Brunszvik-kastély), 즉 ‘브룬스비크 성(城)’이라는 표시판이 보인다. 브룬스비크 성은 성이라기보다는 영국식 고딕양식 복고풍의 커다란 저택이고 그 옆에는 성당이 딸려있으며 이 저택 건물 주변에는 아주 넓은 정원이 전원처럼 펼쳐져 있다. 

베토벤 박물관 입구를 장식하는 베토벤의 초상조각
베토벤 박물관 입구를 장식하는 베토벤의 초상조각

머르톤바샤르는 원래 중세 마을이었는데 18세기 후반에 한 독일계 헝가리 귀족 가문이 이 마을을 아예 통째로 매입했다. 이 유력 가문의 이름이 바로 브룬스비크이다.

이 가문의 안톤 브룬스비크 남작은 이 곳에서 바로크 양식의 1층짜리 저택을 짓고 넓은 정원을 조성했을 뿐 아니라 당시 헝가리의 영토였던 슬로바키아의 돌나 크루파에도 웅장한 저택을 지었다.

그는 부인 안나 사이에 테레제, 프란츠, 요제피네, 샤를로트 등 네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음악에 뛰어났다. 

1792년에 안톤 브룬스비크 남작이 4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은 부인은 자녀들을 빈으로 데리고 가서 음악교육에 공을 들였다.

그러던 차, 1799년에는 빈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29세의 젊은 베토벤과 알게 되었다. 베토벤은 테레제와 요제피네를 비롯해 그들의 사촌동생인 줄리에타에게도 피아노 레슨을 해줬는데 베토벤이 줄리에타를 사모해 헌정한 곡이 바로 <월광 소나타>이다. 

베토벤은 테레제의 남동생 프란츠와는 끈끈한 친분을 유지했다. 당시 부다페스트는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프란츠는 부다에서 거주하면서 1800년 5월 8일에 부다의 궁정극장에서 베토벤의 연주회를 주관하기도 했으며 그 후에도 그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이에 베토벤은 1804-1805년에 작곡 한 <피아노 소나타 23번>을 프란츠에게 헌정했다. 이 곡은 베토벤 사후에 출판사에 의해 이탈리아어로 아파시오나타(Appassionata)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이것이 바로 <열정 소나타>이다. 

베토벤 당시의 피아노가 있는 베토벤 박물관 내부.
베토벤 당시의 피아노가 있는 베토벤 박물관 내부.

베토벤이 머르톤바샤르에 언제 왔는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학자들은 테레제가 남긴 일기의 내용을 봐서 틀림없이 1800년, 1803년, 1811년, 1820년 여름에 이곳에 체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브룬스비크 성은 일반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라서 내부는 볼 수 없고 다만 이 건물 측면에 1958년에 만든 작은 베토벤 박물관은 일반에게 공개돼 있다.

박물관 안에는 베토벤 당시의 악기들과 베토벤과 관련된 자료 및 악보가 전시돼 있는데 그 중에는 그가 쓴 편지의 사본과 브룬스비크 가문에게 헌정된 악보들이 눈길을 이끈다. 또 브룬스비크 가문에 관한 자료 중에는 특히 테레제와 샤를로트 자매의 초상화가 눈길을 끄는데 아쉽게도 이 그림에는 요제피네가 빠졌다. 

테레제와 샤를로트 자매의 초상화.
테레제와 샤를로트 자매의 초상화.
베토벤이 1812년에 ‘불멸의 사랑하는 여인’에게 쓴 10쪽짜리 편지가 사후에 발견됐는데 그가 이 편지를 누구에게 보내려고 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학자들은 이 여인이 요제피네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테레제였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베토벤은 1809년에 테레제에게도 <피아노 소나타 24번>을 헌정했으니 말이다. 테레제는 나중에 교육학자가 되어 헝가리에 최초의 유치원 교사양성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베토벤과 브룬스비크 가문의 추억이 남아있는 이 브룬스비크 성은 베토벤의 음악에 열정을 갖고 중부 유럽을 여행하려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찾아와 볼 만한 장소로 꼽을 수 있겠다.

그런데 원래의 바로크식 저택은 1세기 후인 1875년에 네오 고딕양식으로 개축되면서 2층으로 증축됐으니 현재의 브룬스비크 성은 베토벤이 머물렀을 때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다만, 그 옆의 성당은 1775년에 세워진 이래로 원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어쨌든 이 곳에서 베토벤을 더 느끼고 싶다면 여름에 오는 것이 좋다. 왜냐면 매년 7, 8월에 전원같이 넓은 정원에서 베토벤 음악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정태남

◆ 정태남 건축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BAUM architects)의 파트너이다.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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