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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크기로 승부하다

2017.04.20 변종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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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남녀구분 없이 누구나 자기중심에서 어떤 대상을 확대하고 축소한다. 손가락만 이용하면 스마트폰에서 손쉽게 자신이 원하는 대상을 화면가득 확대해서 볼 수 있다.

어린이는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나 그림의 주인공을 크게 그린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공간이나 종속관계를 따지기 보다는 흥미를 주는 대상을 크게 그리는 것이다.

이 같은 어린이 관점은 미술 분야(특히 조각과 회화)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중세시대부터 미술사를 장식한 수많은 조각과 회화(벽화포함)는 작품의 크기로 감상자를 압도하며 작품 내용과 의도 전달에 힘을 실었다.

회화의 경우 14세기에 제작한 성화(聖畵)처럼 중요도에 따라 인물크기를 다르게 그리거나, 르네상스시대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품인 다비드상과 같이 사람 크기의 몇 배로 확대해서 만들었다.

이러한 표현은 이후 미술사에서 꾸준하게 이어졌으며, 현대미술에서도 작가에 따라 중요한 표현양식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전체 모양을 확대해서 표현하는 방식보다 특정 대상이나 특정 부위만을 선택하여 크기를 확대하는 작품들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사물에 대한 새로운 ‘바라보기’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파올로 베네치아노 <성모상> 1325, 패널위에 템페라, 142x90 cm / 미켈란젤로 <다비드상>1504, 대리석, 높이 434 cm
파올로 베네치아노 <성모상> 1325, 패널위에 템페라, 142x90 cm / 미켈란젤로 <다비드상>1504, 대리석, 높이 434 cm

회화와 조각분야에서 확대방식으로 제작한 작품들을 몇몇 살펴보면 그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먼저, 회화사에서 독특한 화면구성으로 사물을 확대하여 호기심을 끌어내는 작가로 마그리트를 꼽을 수 있다.

마그리트의 <사적인 가치>와 <청강실> 등 작품을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물이 거대하게 확대되어 있다. 머리빗, 유리잔, 면도솔, 성냥개비, 비누가 옷장이나 침대만큼 크게 그려졌다.

마치 돋보기로 한 물체를 확대해서 미처 보지 못했던 사물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할까. 평소 집안에서 사소한 것에 불과했던 사물들이 방안의 가구만큼 확대되어 더는 사소한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인 가치부여에 의해 키워진 사물이지만,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어떤 사물보다 가치 있고,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역발상으로 사물의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청강실>은 거대한 과일이 방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구성이다. 사과가 방안크기만큼 자라다니? 내부 공간자체에서 자라난 사과라, 비상식적인 설정이지만, 보는 이를 사유의 세계로 이끌어 골몰히 생각하게 만든다. 사유의 시간이 시작된다.

마그리트 <사적인 가치>,1951-1952, 캔버스에 유채 / <청강실> 1958, 캔버스에 유채
마그리트 <사적인 가치>,1951-1952, 캔버스에 유채 / <청강실> 1958, 캔버스에 유채

사물전체를 확대하지 않고, 특정부위만을 확대하는 화가로는 미국의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를 꼽을 수 있다.

그녀는 작고 연약한 꽃송이를 화면전체에 꽉 차게 클로즈업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꽃을 무척 좋아했던 자신의 심성을 고스란히 그림에 반영하였다. 때로는 연약한 여인의 피부 같고, 또 어떤 그림은 은밀한 신체부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회화사에 수많은 꽃그림이 등장하고, 숱한 화가들이 꽃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왔던터라 독창적인 그림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오키프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꽃그림을 탄생시키기 위해 꽃의 특정부위만을 확대하여 그리는 것을 선택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오키프의 꽃 그림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것이 오키프 꽃 그림을 선호하는 컬렉터층이 두터운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조지아 오키프 <분홍 바탕 위의 두 송이 칼라>, 1928, 캔버스에 유채 / <검은 붓꽃>1926, 캔버스에 유채,
조지아 오키프 <분홍 바탕 위의 두 송이 칼라>, 1928, 캔버스에 유채 / <검은 붓꽃>1926, 캔버스에 유채,

이번에는 입체로 시선을 돌려보자.

고전적 조각에서 크기로 압도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처럼 실제 인간의 몇 배 이상의 크기로 제작하여 거대한 작품 앞에서 위압감을 느끼게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표현방식에서 벗어나 회화에서처럼 특정대상이나 특정부위를 확대하여 제작하는 방식이 입체분야에서도 나타나는데 특정대상을 크게 확대한 방식을 선호하는 대표작가로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erg, 1929~)를 들 수 있다.

올덴버그는 2006년 우리나라 청계천에 세워진 거대한 소라모양의 공공조각인 ‘스프링(Spring)’을 제작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마그리트의 <사적인 가치>처럼 일상의 사소한 물건들을 거대한 나무나 건물크기 만큼 확대하는 것이 특징이다. 망치, 드라이버, 펜치 등 공구와 쓰레받기, 빗자루, 볼링핀 등 일상생활용품이나 운동소품 등을 확대하여 공간에 설치한다.

확대된 대형작품을 대하는 순간, 감상자는 거인의 나라에 온 듯 사람보다 수십 배 커진 대상에 놀라게 된다. 가까이에서 보면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특정부위만을 보게 되는데, 그 순간 그것이 어떤 형태인지 전체적이 모양을 인지하기 쉽지 않다.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야만 작품전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클래스 올덴버그와 반 브루겐<숟가락 다리와 체리>, 1988, 스태인레스 스틸, 물감 900×1570×400cm / 클래스 올덴버그 <균형을 잡고 있는 공구들>, 1984, 폴리우레탄 에나멜을 칠한 강철, 800×900×610cm.
클래스 올덴버그와 반 브루겐 <숟가락 다리와 체리>, 1988, 스태인레스 스틸, 물감 900×1570×400cm / 클래스 올덴버그 <균형을 잡고 있는 공구들>, 1984, 폴리우레탄 에나멜을 칠한 강철, 800×900×610cm.

조각(입체)분야에서 전체가 아닌 특정부위를 확대하는 경우는 프랑스 조각가인 세자르 발다치니(Cesar Baldaccini, 1921~1998)처럼 엄지손가락 부위만을 거대하게 확대하여 표현한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올림픽 공원에 설치된 6m 높이로 엄지손가락만을 떼어내 거대하게 확대한 작품이 그의 작품이다.(파리 라테팡스 지역에는 12m의 엄지손가락 작품이 설치되어있다) 세자르의 엄지손가락을 보면 주름이 많고 깊게 패인 걸로 보아 인생의 온갖 풍파를 견뎌온 손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어떤 힘든 일을 당당히 이겨냈을 때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찬사’를 보내는 행위를 떠올려보면 세자르의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짐작이 간다.

세자르, <엄지손가락> 1988. 청동, 높이 6m
세자르, <엄지손가락> 1988. 청동, 높이 6m
 세자르의 엄지는 인간이 만들어낸 위대한 문명에 스스로 찬사를 보내기 위한 제스처였는지 모른다. 실제 작품이 제작된 1988년(88올림픽)에 세자르는 두 번의 위암 수술로 생사를 넘나드는 힘겨움 속에서 이 작품을 완성했다.

세자르는 <엄지손가락>외에도 여배우(브리지트 바르도)의 가슴을 직경 5.4m 높이 2.4m의 크기로 사실적으로 확대한 작품 <유방>과 오른 손을 거대하게 확대한 <손>이란 작품도 제작했다.

두 작품 역시 ‘신체의 특정 부위만을 거대하게 확대한 공통점이 있다. 결국 세자르가 선택한 엄지손가락 확대는 신체일부를 지시하는 사전적 의미가 아닌 신체에서 떼어내 바라보는 순간 해당 신체부위가 지닌 의미와 상징성 등을 돌아보게 한다. 

표현대상의 크기를 작품에 따라 다양하게 줄이고, 확대하는 작가로 론 뮤익(Ron Mueck,1958~)을 빼놓을 수 없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론 뮤익은 사람보다 오히려 작게 축소하여 표현하거나, 반대로 거대하게 확대하는 등 축소와 확대의 두 가지 방식을 선호한다. 예시작품처럼 사람의 머리 부분만을 거대하게 확대한 마스크 시리즈나 사람보다 작은 크기로 축소하여 사실감 있게 표현한 작품으로 나뉜다.

그는 조각가로 활동하기 전에 영화의 특수효과와 아동 TV프로그램에 필요한 인형을 제작하거나 조작하는 일을 했다. 미술전공자는 아니었지만, 탁월한 감각으로 사실성이 탁월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눈여겨 볼 지점이다.

1996년 장모와 협업으로 작업을 한 후, 슈퍼컬렉터 찰스 사치에게 발탁되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찰스 사치의 적극적인 지지 하에 국제적 조각가로 성장했다. 주변의 관람객을 통해 작품의 크기를 실감하게 되는 그의 작품은 인체의 피부, 신경조직, 털, 혈관 등을 섬세한 극사실로 표현한 최대 입체작품으로 유일무이한 조각가로 각광받고 있다.

론 뮤익-시계방향 Mask(1997), In bed (2005), Standing Woman(2007) Youth(2009), Man in a Sheet (1997) Two Women(2005)
론 뮤익-시계방향 Mask(1997), In bed (2005), Standing Woman(2007) Youth(2009), Man in a Sheet (1997) Two Women(2005)

미술작품에서 작품의 크기는 매우 중요한 조형요소이다. 사물을 본래 크기보다 확대하면 할수록 사물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훨씬 쉽다. 확대하면 할수록 리얼리티가 증폭된다.

전체작품의 크기보다 표현한 대상의 크기변화에 따라 작품을 바라보는 인식의 폭이 한층 달라진다. 크기로 승부하는 작가들의 도전은 얼마나 더 크게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어느 부위를 어떻게 확대하는가에 따라 전하는 메시지가 달라진다.

단순크기 비교가 아닌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앞으로 누가 또 어떤 크기로 얼마나 충격적인 작품을 창조할 것인지 기다려볼만 하다.

*참고문헌 및 추천도서 : 이명옥,『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시공아트, 2013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6), ANCI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며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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