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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삶의 여유, 휴식을 그리다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19세기 전후 있다 없다- 여유

2017.05.01 변종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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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은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5월은 야외로 나들이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쾌청한 날씨, 따스한 햇볕, 상큼한 바람, 화사한 꽃 등 시간만 허락한다면 가족이나 연인들, 친구들과 화목하고 즐겁게 보내기 딱 좋은 때이다. 야외에 나가 풍경을 감상하노라면, ‘한 폭의 그림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5월은 눈부시고 찬란한 계절이다.

봄의 싱그러운 기운과 따사로운 햇살을 몸과 마음으로 껴안을 수 있는 소풍은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다. 우리 사회에 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는 모습은 이제 보편적 일상이 되었다.

연휴나 휴가를 이용해 긴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자유 시간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갑갑한 사무실, 변함없는 일과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나들이는 생활의 활력을 주고 심리적으로 안정과 즐거움을 준다. 

미술작품에는 소풍이나 여행을 소재로 한 그림이 있다. 그러나 다른 소재보다 작품 수가 현저하게 적다. 19세기 전까지 신화와 종교, 역사와 정치 같은 무거운 주제에 떠밀려 낭만적 분위기를 지닌 그림들은 하찮은 그림으로 무시당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노는 모습을 그리는 것은 무의미한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보잘것없던 주제가 새로운 감상 대상으로 뒤바뀐 것은 과거의 화풍을 탈피하고 새로운 형식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등장하면서이다. 세계인이 좋아하고, 가장 애호층이 두터운 인상파 화가들이 그 주인공이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일정한 틀에 갇혀있던 아카데미 화풍에서 벗어나 빛, 색채, 공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일상과 자연으로 시선을 옮겼다. 예시작품에서처럼 모네, 르누아르, 바질, 시슬레 등이 아카데미 화풍이 멀리한 자연을 그림 주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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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소풍, 뱃놀이, 일광욕, 승마, 카페, 해변, 길거리, 바다풍경, 정원 등 평범한 일상이 캔버스에서 전쟁, 죽음, 근심, 폭풍 등 무거운 주제를 내쫓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들이 19세기전만 하더라도 특정 계층을 제외하면, 일반인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일들이었다. (이런 현상은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일반인이 일상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산업 혁명을 거쳐 본격적으로 확립된 자본주의의 영향이 크다. 산업자본주의가 자리 잡기 전에는 노동 시간을 법적으로 정한 규정이 없었다.

노동시간이 정해지고, 여가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전까지 노동자는 급여를 지급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노동의 시작과 멈춤이 결정되었다. 일하는 것이 일상의 핵심이었고, 휴식은 타인에 의해, 또는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노동중심의 삶을 살았다.

그러고 보면,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잠시나마 육체적 고달픔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일상의 여유가 생기면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자연스럽게 근교나 야외 나들이로 이어졌다.

모네 <생라자르 역-기차의 도착>1877,  <생라자르 역-노르망디로 가는 기차> 1877
모네 <생라자르 역-기차의 도착>1877, <생라자르 역-노르망디로 가는 기차> 1877

파리의 생라자르역은 도심을 벗어나 자연으로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고, 일상의 변화를 이끈 장소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기차가 발명되고 철도가 놓이면서 당시 파리지앵(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도심의 먼지와 소음을 피해 맑은 공기와 한가롭게 휴식을 만끽하는 장소를 찾아 떠났다. 인상파 화가들은 도시를 떠나 자연을 캔버스에 담을 기회를 얻었다.

그뿐만 아니라 철도산업의 이윤이 미술시장에 유입되면서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기차는 인상파 화가들에게 단순한 이동수단의 편리함을 뛰어넘는 의미였다.

모네가 그린 생 라자르역 시리즈가 공간특성을 넘어 프랑스 삶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그림으로 해석되는 지점이다. 궁극에 인상파의 그림은 삶의 여유를 즐기려는 당시 프랑스의 사회 변화를 가장 밝고 즐거운 풍경으로 그려낸 그림이다.

일상의 낭만과 여유를 가장 잘 드러낸 모네와 르누아르의 몇몇 작품을 들여다보자.

모네의 작품을 보면 여가를 보내는 일상이 직접 드러난다. 스냅(snap)사진처럼 특정 장면을 재빨리 포착한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가족, 남녀(연인), 파리지앵들이 한가롭게 여가를 즐기는 주를 이룬다.

모네의 그림에 표현된 낭만적 분위기는 그의 남다른 노력의 산물이다. 그는 복잡한 세상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자연과 한층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센 강변에 아르장퇴유 집을 얻어 센 강변의 풍경을 묘사하고, 반짝이는 물의 표면을 정확히 관찰하고 빛을 탐구하기 위해 배를 작업실로 개조해 선상에서 그림을 그릴 정도로 자연탐구에 몰입했다.

모네 <라 그르누이에르>1869. <생트 아드레스의 테라스>1867, <몽소 공원>1878.
모네 <라 그르누이에르>1869. <생트 아드레스의 테라스>1867, <몽소 공원>1878.

<라 그르누이에르>, <생트 아드레스의 테라스>, <몽소 공원>은 싱그러운 자연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생트 아드레스의 테라스>는 에밀졸라가 극찬했다는 그림으로 대조적인 색채가 다른 작품에 비해서 두드러진다.

청명한 날씨와 바람에 날리는 깃발, 푸른 바다와 붉은 꽃(제라늄과 연꽃), 흰 드레스, 등이 강한 대조를 이룬다. 생트 아드레스에 머물며 자연의 빛과 색이 주는 효과를 연구한 시기의 작품으로 모네의 그림 중 표현이 뚜렷한 그림으로 손꼽힌다.

이에 견주어 10년 정도 지난 후 그린 1878년 작품인 <몽소 공원>은 알록달록한 빛이 화면가득 흩뿌려있는 듯한 풍경으로 감상자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나무들 사이를 뚫고 들어온 빛이 몽소 공원의 날씨를 짐작하게 해준다.

나무들이 우거진 공간에서 자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의 색과 어울려 생동감을 발산한다. 지금의 시간이 행복과 여유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모네와 더불어 인상파의 주도적 활동을 했던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 역시나 여가를 즐기는 파리지앵의 모습들이 많이 등장한다.

센강을 배경으로 남녀 한 무리가 여가를 즐기고, 명소를 찾아 담소를 나누고, 한적하게 뱃놀이를 하는 모습 등 낭만과 여유를 즐기는 파리지앵의 모습들을 두루두루 그렸다. 물빛반사가 보석처럼 빛나는 센강 주변의 자연공간은 도심을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없는 장소였다.

실제 파리가 신도시로 재정비된 후 낮에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센 강에 모여든 파리지앵들로 붐볐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 모네와 같은 장소를 그린 그림이 많다.(두 화가는 인상파 화가들 중 가장 친밀한 관계였다) ‘라 그르누이에르’를 소재로 한 연작이 대표적이다. ‘라 그르누이에르’는 크루아시 섬에 있는 술집으로 파리지앵이 즐겨 찾는 센 강 주변의 유명한 명소였다.

여름이 되면 뜨거운 도시를 피해 일상의 피로를 달래며 삶의 여유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러한 풍경은 모네와 르누아르에게 좋은 그림 소재가 되었다.

르누아르 <라 그르누이에르>1869. <샤토의 노젖는 사람들>1879, <아스니에르의 센강변>1879,
르누아르 <라 그르누이에르>1869. <샤토의 노젖는 사람들>1879, <아스니에르의 센강변>1879,

빈틈없는 일상, 휴식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현대인이라면, 마네가 그린 <정원의 모네가족>처럼 가족과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거나, 모네의 <정원에서 신문을 읽는 아돌프 모네> 그림 속 신사처럼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신문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거나, <점심(아르장퇴의 정원)> 그림 속 장소에서 가족이나 여인과 함께 여유로운 점심시간을 보내고 싶을 것이다.

아니면, 조용한 분위기의 점심 대신 르누아르의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 그림 속 풍경처럼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어울려 모든 근심을 잊고 왁자지껄하게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시계방향: 마네<정원의 모네가족>1874, 모네<정원에서 신문읽는 아돌프 모네>1867, 르누아르<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1881, 모네<점심(아르장퇴유의 점심)>1873.
시계방향: 마네<정원의 모네가족>1874, 모네<정원에서 신문읽는 아돌프 모네>1867, 르누아르<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1881, 모네<점심(아르장퇴유의 점심)>1873.

인간이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닌 활기찬 삶을 위해 재충전의 시간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일상의 피로함을 잊기 위해 갖는 휴식은 사치가 아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김정운 저)라는 책에서 ‘휴식하는 사람이 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듯이 휴식은 단순히 노는 것이 아니다. 휴식은 한층 발전적이고 유익한 생각을 끌어내기 위해 인간이 취해온 시간이다.

인간의 삶에서 휴식, 여가, 나들이, 여행 등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시간에 쫓겨 사는 사람은 맛볼 수 없는 인생의 즐거움이다.

진정한 휴식은 어떤 거대한 계획이나 긴 여행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짬짬이 시간 내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쉬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일상의 묵은 때를 벗고 나면 다시 힘차게 일상을 살아간 힘을 얻게 된다.

휴식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어린 시절 소풍 가는 날에 느꼈던 설렘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시절의 들뜬 기분이 마음 한곳에 남아있듯 소풍이 주는 설렘은 일상의 다른 설렘과 분명 다르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복잡한 머릿속에 한 줄기 바람을 불어넣는 청량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지금 바로 소풍(picnic) 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6), ANCI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며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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