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자정부 누리집 로고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콘텐츠 영역

별빛 어린 테베레 강변에서 들리는 토스카의 절규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이탈리아/로마(Roma)

2017.06.22 .
글자크기 설정
인쇄 목록

영원의 도시 로마의 하늘에는 아직도 새벽별이 빛나고 있었다. 베드로 대성당의 돔은 어둠의 베일 속에서 그 웅대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신의 은총을 갈구하는 인간들을 굽어 내려 보는 듯한 미카엘 천사상 아래에서 별안간 어둠의 정적을 깨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름다웠던 사랑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그는 그만 피를 흘리고 쓰러지고 말았다.

테베레 강변에 세워진 거룩한 천사의 성.
테베레 강변에 세워진 거룩한 천사의 성.

가식적인 총살형인 줄 로만 믿고 있던 그의 연인은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죽음 앞에서 오열을 토하며 절규했다. 잠시 후 발자국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로마총경 살해혐의로 그녀를 체포하려고 경찰들이 성 위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그만 성곽 아래로 흐르는 테베레 강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1800년 6월 18일 새벽빛이 로마의 하늘을 덮은 어둠을 거두기 시작하기 직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총살당한 남자는 화가 카바라돗시(Cavaradossi), 테베레 강에 투신한 그의 연인은 가수 토스카(Tosca)였다. 풋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마지막 장면 무대가 바로 이 ‘거룩한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이다.

<토스카>는 풋치니가 프랑스의 극작가 빅토리앙 사르두가 1800년의 격동하는 로마의 정치상황을 배경으로 쓴 희곡 ‘라 토스카(La Tosca)’를 오페라화 한 것으로 1900년 1월에 로마에서 초연한 이래로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거룩한 천사의 성 정상부에는 미카엘 천사상이 올려져 있다.
거룩한 천사의 성 정상부에는 미카엘 천사상이 올려져 있다.

오페라에서는 빅토리앙 사르두의 원작에서 보여지는 종교와 정치가 뒤얽혀진 내용은 많이 바랬지만 사랑의 비극은 훨씬 더 극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또 극의 짜임새와 음악도 절묘하게 맞물려가고 있다.

여주인공 토스카는 노래와 사랑에 살아왔던 순진한 가수이고 그녀의 연인 화가 카바라도시는 친프랑스파이며 공화정을 부르짖는 투철한 혁명가이다. 한편 사르두의 원작에 자주 등장하는 나폴리왕 페르디난도 4세의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는 무능한 왕을 제치고 실권을 잡는다.

왕비는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딸로 다름 아닌 마리 앙투아네트의 언니이다. 그녀는 당시 자유와 인권의 상징이던 나폴레옹 세력을 견제하면서 국내 친프랑스파를 탄압하다가 1798년 나폴리가 프랑스군에게 함락되자 시칠리아로 도망간다.

그사이 로마와 나폴리에는 공화정이 선포된다. 하지만 얼마 후 프랑스가 패하는 바람에 나폴리 공화국과 로마 공화국이 무너지고 다시 권력을 잡은 왕비는 무자비한 복수극을 벌인다. 동생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고 간 프랑스 혁명을 찬양하는 친프랑스파를 뼛속 깊이 증오했던 것이다. 로마 총경감 스카르피아는 바로 그녀의 하수인이다. 

거룩한 천사의 성에서 본 베드로 대성당.
거룩한 천사의 성에서 본 베드로 대성당.

1800년 6월 14일,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이탈리아 북부 마렝고에서 격돌하는데 이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가 압도적으로 우세해 로마에는 오스트리아가 승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순간에 프랑스가 역전승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오페라 <토스카>는 프랑스가 패배한 줄 알고 기뻐하며 성당 안으로 달려 들어오는 성당지기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까 이 오페라의 시간적 배경은 전황이 전해진 6월 17일 낮부터 다음날 새벽까지인데 줄거리를 보면 3명의 주역들이 모두 하룻밤 사이에 죽음으로써 끝맺는다.

이 오페라에서 압권을 이루는 아리아는 단연 ‘E lucevan le stelle…’이다. 직역하면 ‘별들은 빛나고 있었지’인데 ‘별은 빛나건만’으로 의역되어 있다. 화가 카바라도시는 연인 토스카와의 아름다웠던 사랑의 추억을 간직하고 먼동 트는 로마의 하늘을 배경으로 이 아리아를 부른 뒤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만다.

거룩한 천사의 성의 감옥입구 철문.
거룩한 천사의 성의 감옥입구 철문.

바티칸 지역 초입 테베레 강변에 세워져 있는 거룩한 천사의 성은 그 거대한 규모의 원통형 형태 때문에 기념비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

또 성이라고 해서 단순히 벽돌만 튼튼하게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붉은 색조를 띄고 있는 원통형 성채의 표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벽돌은 큼지막한 돌로 쌓은 원통형 석조구조물 위에 쌓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원통형 구조물의 돌 표면에는 수많은 세월이 스쳐간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즉 이 성은 시대와 디자인 양식이 서로 다른 건축이 겹쳐져 있는 것이다.

원래 이 성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과 후세의 황제들을 위해 세운 영묘였다. 이 영묘에 관해서는 사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서기 130년경에 축조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지며,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사망한 지 1년이 지난 서기 139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영묘는 격동하는 로마의 역사와 함께 그 기능도 여러 번 바뀌었는데 로마제국 말기에는 수도 로마를 방어하는 견고한 보루가 되었고 10세기에는 교황청을 방어하는 요새가 되었으며 12세기부터는 이름이 ‘거룩한 천사의 성’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성은 1527년 독일 용병에 의한 로마약탈 기간 중에는 교황의 피신처가 되기도 했다. 그 후에는 감옥이 되어 정치범들을 수감하거나 처형하던 곳이 되었다. 거룩한 천사의 성이 오페라 <토스카>의 3막의 배경이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태남◆ 정태남 건축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BAUM architects)의 파트너이다.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이전다음기사 영역

하단 배너 영역

지금 이 뉴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