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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와 사유 사이 그 모든 게 그들의 자유다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마당의 위치가 왜 다를까

앞에 있든 뒤에 있든 마당이 있는 삶 그 자체가 행복할 뿐

2017.07.26 김창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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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이게 정녕 뒷마당이란 말이야? 그럼 앞마당은 웬만한 학교 운동장만한 하겠구나.” 50대 후반인 대전의 한 자영업자 남성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단체로 SNS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놀라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자영업 남성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는 친구가 단체 채팅방에 올린 뒷마당 사진을 보고서 그 크기에 놀란 것이었다. 실제로 미국에 사는 친구의 뒷마당은 그 자체로 웬만한 전원주택이 들어서고도 남을 정도로 넓었다.    

미국 필라델피아 한 가정의 뒷마당. 웬만한 집이 두어 채 들어설 정도로 뒷마당이 크다.
미국 필라델피아 한 가정의 뒷마당. 웬만한 집이 두어 채 들어설 정도로 뒷마당이 크다.

하지만 필라델피아의 친구로부터 돌아온 답은 ‘실망스럽게도’ “사실상 앞마당은 없다”는 거였다. 농구장만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뒷마당이 큰데, 아예 앞마당은 없다는 사실을 자영업 남성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뒷마당이란 개념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중장년층 혹은 노인 세대들에게 뒷마당은 보통 ‘뒤란’의 개념 정도로 남아 있을 뿐이다.

뒤란은 대개 장독대가 자리하거나 여름 한철만 채소를 가꾸곤 하는 작은 채마밭이 위치하는 장소였다. 또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이나 기구 같은 걸 정돈해 놓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인 혹은 유럽인들에게 뒷마당은 어쩌면 한국과 정반대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거나 아이들이 뛰놀고, 경우에 따라서는 작은 수영장이나 저쿠지(jacuzzi) 등이 자리하는 곳이다.

문화나 생활풍속 측면에서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앞마당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서구인들에게는 뒷마당이다. 그러니 대체로 미국이나 유럽의 단독주택에서는 뒷마당이 앞마당보다 훨씬 클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인과 서구인의 이 같은 뒷마당 개념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로 님비(NIMBY)라는 영어 단어를 들 수 있다. 님비는 ‘내 뒷마당에는 안돼’라는 의미, 즉 ‘not in my backyard’의 앞글자를 따 만든 말이다.

1980년대 들어 한국의 신문 등에 이 단어가 제법 자주 오르내리곤 했다. 쓰레기 처리시설이나 화장장 같은 혐오시설이 동네나 주거지역 근처로 들어서는 걸 주민들이 반대할 때, 님비란 표현이 단골로 등장했다.

당시 님비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한국 사람들 가운데는 앞마당도 아니고 하필 뒷마당이냐는 의문을 품었음직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면 사회적 혐오시설의 설치를 반대할 때 같은 값이라면 뒷마당이 아니라 “앞마당에는 안돼”라고 했어야 하는데, 뒷마당(뒤란)을 거론한 탓이다.

앞서 언급했듯 뒤란은 집 앞쪽으로 내놓기에 마땅하지 않은 것들이나, 심지어는 옥외 화장실 같은 것들이 한 켠에 위치하는 장소이다. 헌데 사회적 혐오 시설의 마을 근처 입주를 반대한다며 앞마당이 아닌 뒷마당을 거론하는 건 어딘지 반대의사 표현으로는 어색한 감이 있었던 것이다.

마당은 전통적으로 문화가 탄생되고 교류되며 실현되는 장의 역할을 해왔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서 마당은 과거 혼례나 장례가 치러지는 공간이었고, 집안 또는 마을의 대소사가 이뤄지는 터전이었다.

나란하게 들어서 있는 2채의 시골 주택. 모두 앞마당을 주 마당으로 삼고 있다.
나란하게 들어서 있는 2채의 시골 주택. 모두 앞마당을 주 마당으로 삼고 있다.

생활문화의 장으로써 마당 그 자체의 역할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국사회와 서구사회에서 주 역할을 하는 마당이 각각 앞과 뒤로 다른 건 몇 가지 서로 다른 배경 때문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날씨의 차이가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분석한다. 아메리카에서 식민지가 개척되기 시작한 미국의 북동부 지역이나 영국을 포함한 유럽 북부 지방의 경우 바람이 거세고 추운 날씨여서 자연스레 뒷마당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텃밭은 서구사회에는 뒷마당에 위치하는 예가 흔한데, 집이 자연스레 울타리가 돼 바람과 추운 날씨를 막아줬다는 것이다.

동시에 주된 마당, 즉 정원이 집 뒤편에 있으면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겨울철에 집 그 자체가 햇빛을 받기 쉬웠다. 나무 등이 집 뒤편에 주로 자리하고 있어 건물에 그늘이 들지 않고 일조량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전통사회가 아니더라도 우리 농촌이나 요즘 도시 근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전원주택에서 텃밭은 앞마당 쪽에 자리하는 경우가 흔하다. 일찍이 농경문화가 발달한 우리 사회에서는 문전옥답이라는 말도 있듯, 작물 재배지로는 집 앞쪽이 선호되곤 했다.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 신대륙 국가에서 흔히 보는 뒷마당은 우리보다 앞서 꽃을 피운 그네들의 중상주의적 문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큰 길에 가까울수록 땅의 가치는 크게 마련이다. 이에 따라 집을 최대한 큰 길 쪽으로 붙여 지음으로써 가치 높은 땅의 활용을 극대화 했다.

미국이나 호주 등을 방문한 경험이 없더라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이들 나라에서는 대로변으로 집들이 마치 상가처럼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큰 길 가까이로 앞마당은 사실상 없고 주차장 정도가 집 앞쪽으로 나 있으며 키 작은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게 고작이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주택단지. 집들이 길 옆으로 붙어 있고, 뒷마당은 집을 중심으로 길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주택단지. 집들이 길 옆으로 붙어 있고, 뒷마당은 집을 중심으로 길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또 한국인과 서구인의 기질 상의 차이도 주된 마당을 앞과 뒤로 달리하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서구인들의 경우 문화적, 사회적으로 개인주의가 일찍이 만개했다. 마을 공동체 중심이었던 과거 우리 사회와는 사뭇 대비되는 양상이다.

마을 공동체 전통을 가진 한국 사회에서 앞마당은 이웃이나 타인 등 외부의 시선에 개방된 곳이다. 하지만 서구 사회에서 뒷마당은 상당 수준으로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곳이다. 그래서 예를 들면 친구나 친인척들이 모여 바비큐를 할 경우 아무래도 사생활이 더 보호되는 뒷마당이 좀 편할 수 밖에 없다.

영미권에서 뒷마당이 마당의 대명사처럼 통하는 건 단어 그 자체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영어로 뒷마당을 뜻하는 backyard는,  뒤라는 뜻의 back과 마당이라는 yard가 결합해 한 덩어리가 된 것이다. 두 단어를 띄어 쓸 수도 있지만, 보통은 붙여서 쓴다. 반면 앞마당은 앞쪽인 front와 마당인 yard를 붙여 쓰지 않는다.

요즘 우리 사회에 흔한 전원주택은 사실 서구문화의 산물이다. 미국과 호주 등지에서 뒷마당을 주된 마당으로 하는 주택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대도시 교외의 개발이 본격화되면서부터 이다. 즉 18세기 후반 대도시 주변에 주거단지가 집중적으로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주거문화의 산물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는 도시화와 교외발달 자체가 늦었고, 더구나 땅이 풍부하지 않은 까닭에 마당이 있는 광범위한 단독주택 중심의 주거지역이 발달되기 어려웠다. 설령 소규모의 주거단지가 있다손 쳐도, 아파트 중심의 문화와 대도시의 급격한 확장으로 마당은 개발에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다만 최근 고령화 흐름 속에서 은퇴자와 귀촌인구를 중심으로 ‘마당이 있는 삶’이 다시 살아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마당은 공적 관리를 받지 않고, 집 주인이 전유하는 독립공간인 까닭에 마당을 잘 활용하면 삶이 그만큼 풍요로워 지는 건 자명하다. 광장이 발달한 사회가 보다 민주적이고 자유롭듯, 마당은 집 주인들에게 자유를 주고 다양한 삶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게 하는 바탕이다.

최근 나날이 늘어가는 마당을 낀 전원주택이나 교외주택은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최근 10여년 사이에 지어지는 전원주택의 건축양식은 대부분 서구식이고, 마당 부분은 전통적인 앞마당 중심이라는 점, 즉 일종의 하이브리드 형이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 이채롭다.

서로 뿌리를 달리하는 동서의 주거양식이 결합돼 어떤 형태의 새로운 주거문화를 낳을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주거문화가 개개인들의 사고에 끼치는 영향은 심대하기 짝이 없다.

단적인 예로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층간 소음에서 십중팔구 자유로울 것이고 이웃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질 수 있다. 또 텃밭을 가꾸고 마당의 나무와 풀들을 손보면서 드는 생각들은 집 주인의 사고방식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새로운 한국식 앞마당 문화가 주목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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