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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집단이동…결국은 다 다문화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DNA분석과 진화 인류학

2017.08.16 김창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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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대동강 유역에서 발굴한 신석기시대 무덤 유골.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2013년 대동강 유역에서 발굴한 신석기시대 무덤 유골.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고조선은 현대 한국인들의 뿌리 가운데 하나로 추정된다. 하지만 고조선의 실체는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에 의해 가려져 있다. 단군왕검이나 웅녀의 전설부터가 그렇다. 신화는 풍부할수록 더 큰 상상력을 자극하고, 문학이나 이런 저런 문화의 밑거름이 된다.

근대 이후 지구촌의 문명, 나아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유럽에서도 예외 없이 ‘옛날 옛적’은 많은 부분 미스터리와 신화의 시대이기도 했다. 유럽문명의 원류로 흔히 지목되는 지중해의 동쪽 크레타 섬의 문명이 대표적이다.

적잖은 사가들이 오늘날 유럽의 연속된 역사는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거칠게 말하면, 미노스를 기점으로 해 그리스로, 이어 로마를 거쳐 오늘날의 유럽 본토 문명이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당대를 동반했던 이런 저런 문화들은 말할 것도 없다.

유럽 문명의 발상지나 다름 없는 크레테 섬의 한 유적지. (제공=저지 스터젤렉키)
유럽 문명의 발상지나 다름 없는 크레테 섬의 한 유적지. (제공=저지 스터젤렉키)

헌데 미노스 문명을 일군 사람들은 그 정체가 수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오리무중이었다. 당시의 청동기 물품들이나 각종 도자기, 거대한 왕궁 터 같은 유적과 유물들은 숱하게 까지는 아니어도 넉넉하게 남아 있다. 미노스 문명이 지속됐던 시기, 또 시대상이나 문화상을 조명하는 데 크게 부족하지 않을 정도이다.  청동기를 거친 우리의 고조선 시대에 비하면 고고학적 자료들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레타 문명과 관련해서는 많이 남아있다는 얘기이다. 

고조선의 존재 시기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적지 않지만, 대략 기원전 2300년~기원전 100년 사이로 추정된다. 미노스 문명은 이보다 앞선 기원전 3600년~1050년 정도에 걸쳐 있었다. 고조선보다 한참 앞서 등장했고, 역시 1000년 가까이 앞서 막을 내렸다.

미노스 사람들은 문자를 썼다. 또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갖고 있었다. 다만 이들의 문자는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수준까지 해독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고조선 사람들에게도 언어가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한자든 아니면 그 나름의 문자체계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000년여 전 사람들이 독자적인 언어와 문자를 갖고 있었다는 점은 실로 대단한 면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노스 문명을 일군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미노스 문명을 전문하는 학자들조차도 잘 몰랐다. 다수의 유물과 유적에도 불구하고, 미노스 문명의 중심지인 크레테 섬이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건, 무엇보다 당대를 살았던 이들의 정체가 미스터리인 까닭이 아닐까?

고대 크레타 섬의 문명을 미노스 문명이라 일컫는 것은 이 곳을 지배했던 신화 속의 왕 미노스의 이름을 따서 이다. 미노스에 얽힌 이야기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미노타우로스에 관한 것일 것이다.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 섬의 문명 즉, 미노스 문명을 신비롭게 만드는 상징과 같은 존재이다.

얼굴은 황소, 몸은 사람인 미노타우로스 전설은 이렇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흰 황소를 미노스 왕에게 보내왔다. 그러나 미노스 왕은 이 황소를 살려뒀다. 그러자 분노한 포세이돈이 그 벌로 왕비 파시파이를 이 황소와 사랑에 빠지게 했고, 왕비가 미노타우로스를 낳게 됐다는 것이다.

미노스 문명의 심벌과도 같은 미노타우로스 상. 얼굴은 황소 몸은 사람이다. (제공=마스야스)
미노스 문명의 심벌과도 같은 미노타우로스 상. 얼굴은 황소 몸은 사람이다. (제공=마스야스)

미노타우로스 얘기는 좀 더 복잡하게 전개되는데, 크레타 섬에 실존했던 거대한 고대 왕궁 등과 결합해 마치 팩션처럼 전해져 왔다. 신화와 유적 유물들이 절묘하게 결합되고 배합돼 후세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문호 호머(호메로스) 역시 크레테 섬의 신화를 풍부하게 한 인물인데, 아쉽게도 호머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일리아드’나 ‘오딧세이’ 등으로도 미노스 사람들의 정체는 짐작할 길이 없었다.

고대 크레테 섬의 문명과 문화를 일궈낸 미노스인들의 정체를 단시일 내에 완벽하게 밝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는 단초가 잡히기 시작했다. 바로 유전자 연구를 통해서이다. 미노스 사람들의 고분과 미노스를 정복한 것으로 알려진 미케네 사람들, 그리고 크레타 섬과 가까운 터키와 그리스 사람들의 유전자를 비교한 분석결과가 최근 나왔다.

8월초 발간 된 유명 과학저널 ‘네이처’는 진화 유전학자들이 주도한 미노스인 등에 대한 DNA 연구결과를 실었다. 분석을 이끈 미국 하버드대학교 레이크 박사팀이 살펴본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DNA는 모두 19명에서 추출한 것이었다. DNA는 고분에서 발굴한 인골의 뼈와 치아에서 뽑아냈는데, 이중 미노스 사람 것이 10점, 미케네 사람 것이 4점, 남서부 터키 지역 사람 것이 3점, 미케네 시대 이후 크레타 사람 것이 1점, 미노스 시대에 앞선 신석기인 것이 1점이었다.

미노스인들의 집을 복원한 미니어처. (제공=즈데)
미노스인들의 집을 복원한 미니어처. (제공=즈데)

미케네는 그리스 본토 사람들이 일궈낸 문명으로 미노스를 정복한 주역이다.  터키 남서부는 크레타 섬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으로 미노스 사람들과 유전적인 근연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미케네 시대 이후 크레타인과 신석기인의 유전자를 연구팀이 분석한 것은 이들이 각각 시대적으로 미노스 사람들의 후대 사람들이거나 선주민이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분석 결과, 미노스 사람들은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사람들, 터키 남서부 사람들과 75% 안팎 유전적으로 동질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유럽 대륙의 다른 지역에 살던 사람들과는 크게 다른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미노스를 정복한 미케네인들은 초원지대 유목민들과 부분적으로 유사한 DNA를 갖고 있는 등 미노스인과 차이를 보였다.

미케네인들은 기술이 발달하고 호전적이어서 그리스 본토를 넘어 크레타섬까지 정복 전쟁을 벌였는데, 이는 정복을 일삼던 초원지대 유목민들의 DNA가 막연하지만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또 미케네인들의 DNA는 오늘날의 그리스 지방에서 미케네인들보다 먼저 살았던 신석기인들과도 상당히 달랐다. 이들 신석기인은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하는데 그리스의 북쪽 혹은 동쪽 지역 출신인 미케네인들의 조상에 의해 정복된 것으로 보인다.

전설의 미노스 왕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크노소스 궁전의 기둥. (제공=웰스)
전설의 미노스 왕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크노소스 궁전의 기둥. (제공=웰스)

미케네인들의 크레타와 그리스 본토 정복은 언어 연구에서도 어느 정도 입증된다. 미케네인들이 사용하던 말은 초기 그리스어로 이는 인도 유럽 계통의 언어로 분류된다. 헌데 이와 달리 미노스인들의 언어는 그 계통이 지금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한편 미노스인들이 당시의 터키 남서부지역 사람들과 비슷한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는 점은, 미노스 문명을 꽃피운 이들이 동쪽인 터키에서 이주해 왔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크레타 섬은 터키 등 이른바 소아시아와 그리스 등 유럽의 남동부 말단, 또 이집트 등 아프리카 대륙으로부터도 가깝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가 교차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고 이들 지역 사람들이 미노스인을 형성하는데 기여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미노스인을 중심으로 한 주변 고대인들의 이번 DNA분석은 진화 인류학 관점에서 상당한 성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숙제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예를 들면 미케네인 역시 과거 터키 남서부 사람들과 많은 부분 DNA를 공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는 미케네인이 북쪽의 초원지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쪽의 터키지역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증명한다.

이 경우 초원지대의 영향이 먼저였는지, 혹은 터키지역 사람들의 영향이 앞섰는지, 혹은 거의 비슷한 시기 양쪽에서 동시에 영향을 받았는지 등 다양한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아울러 미노스인 등의 유전자가 한두 차례에 이뤄진 인구 집단의 대이동, 혹은 거대한 정복전쟁의 결과인지, 아니면 수 차례 거듭된 파상적인 침략전쟁이나 이주의 산물인지 등도 향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현대 한국인들의 유전자는 고조선 등 북방계뿐만 아니라 중국남부 등 남방계의 DNA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바꿔 말해, 유전자는 그 나름의 문화를 가진 인구 집단의 이동을 웅변한다. 미노스와 미케네 등 유럽 문화의 뿌리를 이뤘던 고대인들의 연구가 주목을 받는 이유이다. 현대 한국인과 조상들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유전자 연구와 분석을 기대해 본다.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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