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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상실의 시대, 문화적 채비 준비하셨나요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터울이 귀한 세상

김창엽 자유기고가 2018.03.13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05명을 기록했다. 외자녀 시대 즉, 터울이 귀한 세상 다각도의 문화적 대비가 필요할 때다. 사진은 지난해 수능을 앞둔 서울 마포구 서울여고 교정.  국화꽃 화분으로 만든 수험생 응원메시지가 눈길을 끌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05명을 기록했다. 외자녀 시대 즉, 터울이 귀한 세상 다각도의 문화적 대비가 필요할 때다. 사진은 지난해 수능을 앞둔 서울 마포구 서울여고 교정. 국화꽃 화분으로 만든 수험생 응원메시지가 눈길을 끌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언니나 동생은 몇 이신가요?” “혹시 맏이세요?” 앞으로 20~30년쯤 지나면 이런 류의 질문은 좀처럼 접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른바 ‘출산 절벽’ 시대, 둘 이상의 자녀를 가진 가정이 계속 줄어드는 탓이다. 

통계청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 한해 합계출산율은 1.05명을 기록했다. 한 사람의 여성이 평생 낳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숫자가 사실상 1명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가족,  그리고 이성간 사랑이다. 부모 자식간 혹은 부부 사이,  아니면 연인들의 사랑이 바로 그런 예다.

형제 혹은 자매간의 우애 역시 독특하며 큰 사랑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금세기 말쯤이면 형제자매 간의 사랑을 아예 평생 한번도 느껴보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일 듯 하다.

2000년만 해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47명으로 1.5명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거칠게 단순화하면 당시만 해도 두 자녀 가정이 절반, 한 자녀 가정이 절반 정도로 엇비슷했다는 뜻이다.

한국의 ‘외 자녀’  시대는 사실상 지난해 시작됐다고 해도 통계적 관점에서는 크게 허튼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2017년의 합계출산율 1.05는 일종의 평균치이므로, 무자녀 가정을 감안하면 여전히 ‘두 자녀’  가정이 그리 적지는 않다.

실제로 지난 해 출생아동들 가운데 첫째의 비율은 52.6%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이는 바꿔 얘기하면, 둘 이상 낳은 산모가 아직은 극히 드문 편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출산 아동 가운데 첫째의 비율이 점진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합계출산율이 해를 거듭할수록 뚝뚝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외 자녀’ 시대의 도래를 명백하게 예고하고 있다. 형제자매의 출생 간격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사용되는 ‘터울’이라는 단어를 사전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풍속, 나아가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터울의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터울이 있는, 즉 식구들이라고 하면 으레 형제자매를 연상할 수 있는 가족 구조를 가진 나라였다.

특히 베이비 붐이 절정을 이뤘던 1960년 전후 합계출산율은 6명 안팎으로 형제자매 숫자가 그만큼 많았다. 이후 출산율은 계속 떨어졌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체로 2명 수준은 유지했다. 물론 형제자매 숫자에서 6명과 2명의 차이가 적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형제자매 숫자 6명과 2명의 차이보다 더 큰 게, 2명과 1명의 차이이다. 6명과 2명은 양적 차이가 돋보이지만, 2명과 1명은 질적으로 다른 까닭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6명이든 2명이든 터울은 존재하지만, 1명에 이르면 더 이상 터울은 없다.

터울이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은 똑같지 않다. 언니나 형이 입던 옷을 물려 받느냐 마느냐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세태와 개개인의 의식구조가 달라지는 커다란 변화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가족 구조의 조용한 혁명이 지금 진행중임에도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 수준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터울의 부재는 형제자매가 더 이상 없다는데 머무르지 않는다. 이모나 고모 삼촌, 나아가 시누이나 올케 등도 이 세상에는 없는 인물들이 된다. 가족 혹은 가까운 친인척들을 중심으로 한 ‘원초적 관계’의 상당 부분이 거의 모조리 소멸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관계의 입체적 변화가 동반된다.

‘터울’ 없는 세상은 어쩌면 인류, 아니 최소한 한국인들이 지금까지 경험한 변화 가운데 가장 큰 것일 수도 있다. 수십 억 명에 달하는 현재의 지구 인구가 입증하듯, 호모 사피엔스로 대표되는 현생인류는 지난 수만 년 혹은 십 수만 년 동안 터울이 있는 가족 구조,  나아가 사회 구조를 유지해 왔다.

예를 들면, 1만년 전 오늘날의 한반도를 활동무대로 살았던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대다수는 십중팔구 수렵채취로 생계를 꾸몄을 것이다. 아울러 생존 본능에 따라, 자녀도 둘 수 있을 만큼 많이 두려 했을 것이다.

2006년 경주를 찾은 어린 학생들. 이 당시만 해도 한 가정 평균 2명 자녀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출산동향에 따르면 여성이 평생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숫자는 1명 안팎에 불과하다. (제공=리넉스)
2006년 경주를 찾은 어린 학생들. 이 당시만 해도 한 가정 평균 2명 자녀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출산동향에 따르면 여성이 평생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숫자는 1명 안팎에 불과하다. (제공=리넉스)

다만 자식들 사이의 터울은 4~5년 정도로 지금보다 훨씬 긴 편이었을 것이라고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은 추정한다. 수렵채취는 끊임 없는 이동이 전제인 탓에, 출생한 아이가 제 발로 이동할 수 있을 무렵 다음 아이를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연년생’이나 이상적인 터울로 여겨졌던 2~3살 차이가 보편화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더구나 6~7명 이상씩 출산이 사회적으로 흔한 현상이 되려면 여성의 평균 수명이 어느 정도 늘어나야 했을 것이고, 그만한 식구를 먹여 살릴 정도의 생산력이 담보돼야 했을 것이다.

주요 국가들에서 베이비 붐 현상이 엇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것은 우연히 아니었던 것이다. 농경과 정주생활을 시작한 이래 근대에 들어서 의료를 포함한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달이 뒷받침 되며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한 것이다. 이를 가족 구조 차원에서 얘기한다면, 수 많은 ‘터울’들이 생겨난 것이다.

터울이라는 측면에서 인류의 인식구조 근간은 농경이 시작된 이후 최소 수천 년 동안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터울이 더 이상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미미하게 명백을 잇는다면 너무도 많은 것들이 변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지금까지 누구나 평생 한번쯤은 논의해야 했던 형제자매간의 상속재산 분할 문제를, 아예 고려조차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또 명절 시부모 집 방문과 속칭 ‘시월드’ 문제도 약화되거나 흔적만 남을 확률이 높다.

자식을 키우는 한편으로 동시에 부모를 부양하는 일도 ‘물리적으로’ 쉽지 않아질 것이다. 부양 의무는 하나뿐인 자녀 정도에만 머무르고, 국가 혹은 사회가 노년의 생존을 떠맡거나 노년층 각자가 알아서 생존해야 할 것이다.

가정 문화나 풍속도의 변화는 불가피하고, 산업구조를 포함한 경제활동의 양상, 심지어는 법의식도 달라질 수 있다. 터울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또 그 세상이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문자 그대로 ‘전방위적’일 수 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것으로부터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터울 있는 삶을 살아온 마당에 터울 없는 세상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터울 없는 세상의 도래는 한두 사람이나 몇몇 정부 정책 입안자들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성질이 것이 아니다. 인류학적, 생물학적, 사회학적 등의 관점에서 이는 자명하다. 문화나 세태의 큰 흐름을 소수가 의도한대로 바꾸는 것은 애초 가능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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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인이든 정부든 현실적으로는 ‘외 자녀’ 시대를 일정부분 ‘상수’로 설정해야 한다. 터울 없는 세상이 변수가 아니고 상수라면, 그에 맞는 대비를 할 수 있을 만큼 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터울 없는 세상의 일차적이고도 직접적인 변화는 출산문화나 양육문화에서 일어날 것이다. 공동육아의 강화나 육아용품의 재활용 혹은 순환 사용 등이 보다 확산될 수도 있다.

‘외 자녀’ 시대를 경제적 관점 위주로 파악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노동력 감소가 불 보듯 뻔하고, 경제 성장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이 보다 귀한 존재로 여겨질 수 있다. 

세상에는 그저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일은 드물다. 터울이 귀한 세상의 도래가 기대할 일은 결코 아니지만, 인본주의 문화가 탄탄히 뿌리내릴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 수많은 관계의 상실이 뒤따를 수 밖에 없는 외 자녀 시대에 대한 다각도의 ‘문화적’ 대비가 긴요한 시점이다.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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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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