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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꾼의 천국, 섬마을을 어찌할까

[김준의 섬섬옥수] 통영 곤리도

2018.04.03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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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무얼 사셨어요?”. 겨우 엉덩이만 걸칠만한 좁은 여객선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며 말을 붙였다. “시아버지 제사에 쓸려고 참돔 한 마리 샀다 아이가”. 참돔이라. 서해안에서는 제물로 조기가 빠지지 않지만 통영에서는 참돔을 올린다. 여기에 문어, 볼락, 홍합, 전복, 가자미 등 제철생선을 올리기도 한다. 참돔을 사신 어머니는 곤리도에서 참돔 양식을 직접 하신다. 그런데 새벽같이 첫배를 타고 나가 참돔을 샀단다. 제물은 자연산이어야 한다는 ‘원칙’때문이다. 곤리도만 아니라 통영의 제사법이다. 첫손님이기도 했지만 제물은 흥정을 하지 않는다. 8만 5천원을 모두 주었다. 그래도 어른이 좋아할 것이라며 흡족해 하신다. 남편은 다른 제물은 몰라도 꼭 간섭을 하는 것이 참돔이다.

당포성지에서 본 곤리도 모습, 가두리 양식장이 있는 바다는 1592년 이순신이 거북선을 이끌고 나와 왜군을 격파했던 당포해전의 격전지이다. 곤리도는 통영시 산양읍 당포항에서 10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다.
당포성지에서 본 곤리도 모습. 가두리 양식장이 있는 바다는 1592년 이순신이 거북선을 이끌고 나와 왜군을 격파했던 당포해전의 격전지이다. 곤리도는 통영시 산양읍 당포항에서 10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다.

섬주민의 절반은 외지인?

포구의 아침이 설렌다. 욕지도로 섬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낚시가방을 들고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기대에 차있다. 당포항이다. 주차할 곳이 없다. 간신히 차를 넣어두고 선창으로 나왔다. 섬으로 들어가는 ‘협동어촌호’가 첫손님을 태우고 숨차게 나온 탓인지 고요하다. 그 배로 나온 마을주민들은 벌써 생필품을 구한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곤리도는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에 있다. 남쪽 해안은 해식애가 발달했고, 북쪽은 완만한 평지를 이루고 있어 계단식 논밭을 일궈 농사를 지었다. 마을은 섬 동북쪽에 들어앉았다. 동쪽에서 북쪽으로 해안을 따라 산자락에 마을을 이루고 있다. 마을이 커서 주민들은 당산나무가 있는 곳을 동펜, 학교가 있는 곳을 서펜으로 나눈다. 한때 150가구가 훨씬 넘었을 만큼 큰 마을이다. 한 집 건너 한집씩 빈집이 있지만 마을규모는 지금도 만만치 않다. 지금도 약 7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이중 절반은 외지인이란다.

바다를 매립해 너른 물양장을 마련하기 전에는 집 앞이 바다였다. 선착장과 물양장 정도만 차가 다닐 수 있고 골목길은 사람만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좁다. 그 길도 경사가 심해 오르내리기에 여간 힘들지 않다.

곤리도에서 본 미륵도(산양읍)와 당포항.
곤리도에서 본 미륵도(산양읍)와 당포항.

낚시꾼의 천국?

낚시꾼 몇 명이 뭍에 오른다. 낚시가방이 묵직하다. 가방을 열고 몇 마리를 아는 분에게 나누어 준다. 살짝 보니 전갱이, 고등어가 가득하다. 곤리도 선창에 낚은 것이라고 했다. 섬으로 들어가려던 낚시객들이 입맛을 다신다. 배에 오르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마음은 벌써 낚싯대를 쥐고 있다. 배에 탄 사람은 20여 명, 그 중 반은 주민이고 반은 낚시꾼이다. 첫배로 들어간 낚시객이 30여명이니 벌써 50여 명에 이른다.

낚시객들에게 보물같은 섬이다. 꾼들에게 알려진 포인트는 ‘치끝’에서 등대까지 모두 너댓 곳. 사료 맛을 본 탓인지. 그늘이 좋아서인지. 모두 가두리 시설과 바지선이 있는 근처다. 뭍에서 불과 10분이면 닿는 섬이지만 수심이 30~40m에 조류가 좋아 씨알은 좀 작지만 조황이 먼 바다 못지않다. 선착장만 아니라 가두리 낚시, 배낚시, 갯바위 낚시 등 비용만 지불하면 어디라도 가능하다.

갑자기 낚시꾼들이 술렁인다. 선착장 안쪽에서 감성돔을 낚은 것이다. 이곳에서 감성돔이 올라오다니, 탄성을 질렀다. 다른 사람들도 이미 전갱이, 고등어 몇 수는 올렸다. 벌써 낚은 고등어로 회를 뜨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낚시하는 사람들에게야 이보다 좋을 수 없겠지만 너무한다 싶다. 선착장 안에 끊임없이 수십 명이 밑밥을 뿌리고, 심지어 숙박까지 해댄다면 낚시를 한다면 바다가 온전하고 섬이 편안할까 싶다. 낚시면허제가 당장 어렵다면 마을어장 그리고 방조제 위 낚시행위는 더욱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가두리 양식을 하는 섬주민들에게 태풍보다 무서워하는 적조도 바다오염과 무관치 않다. 단번에 수 천 수 만 마리 물고기를 죽게 하는 적조가 연중행사로 일어나는 곳이 이곳바다다. 적조도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노인들만 사는 섬마을이 주말이면 활기에 넘친다. 밀려오는 낚시객들 덕분이다. 많을 때는 100여 명에 이른다. 방파제, 갯바위 그리고 가두리 위, 배낚시까지 섬과 바다는 낚시객들이 점령했다. 물고기를 유인하기 위해 뿌려지는 밑밥이 포구 주변에 마구 뿌려진다. 어찌할까.

벨신굿 대단했다 아이가

곤리도에 우물이 일곱 개나 있었다. 큰 마을이라지만 샘이 많은 편이다. 그 만큼 물이 소중했다는 의미다. 골목을 걸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만 하다. 앞집 지붕이 뒷집 마당에 닿는 모양새로 층층이 지어져 있다. 그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마을을 가로질러 동펜에서 서펜으로 가는 것이 쉽지 않다. 선창으로 내려가서 다시 올라가야 한다. 가파른 경사를 빈 몸도 숨이 찬데 물동이를 이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골목 모둠마다 샘을 팠다. 그 샘 중 으뜸이 ‘마당새미’다. 동네마당에 해당된 곳이라 마당새미라 했을까. 지금은 매립과 간척으로 너른 물양장이 마을 마당이지만 옛날에는 마당새미 앞이 가장 너른 동네마당이었다. 그곳 마당새미 좌측에 천여대장군과 솟대가, 우측에 천하여장군이 세워져 있다. 새미는 샘을 말한다. 샘도 중요하고 광장이자 더 소중한 장소다.

곤리도 벅수는 당포나 월항처럼 오래된 벅수는 아닌 듯싶다. 솟대도 시멘트 만든 전봇대마냥 세우고 머리에 기러기 모양이 올려져있다. 기둥에 ‘鱉神將軍’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정월이면 벅수 앞에 집집마다 밥을 차려 두고 제를 지냈다. 예전에는 벅수와 솟대 모두 나무로 만들어서 세웠다. 지금은 솟대는 시멘트로, 벅수는 돌벅수다. 새마을사업을 하던 시절에 나무 벅수와 솟대를 미신이라며 뽑기도 했다고 한다. 마을에 좋지 않는 일이 생기자 마을회의를 통해 다시 세운 것이다. 이를 별신굿, 벨신굿이라 한다. 굿판이 벌어지기 전날 당집에서 산제를 지낸다. 동펜 산 능선에 있다. 당집은 세월이 흘러 지붕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넝쿨식물로 덮여있다. 그 옆에 작은 돌담으로 경계를 지은 제당이 하나 더 있다. 가운데 소나무에는 색이 선명한 오색천이 걸렸다. 당집 안에는 한복 치마와 저고리가 있고, 자연석으로 만든 제단 아래 배, 밀감, 감, 북어가 놓여져 있다. 금년에도 당제를 지낸 듯하다. 이곳에서 산제를 지낸 후 마을로 내려와 동네마당에서 별신굿을 했다. 벅수와 솟대 앞에는 100여 호가 집집마다 상을 차려 놓았단다. 굿판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3, 4백년 되었다는 솟대다. 별신장군이라 새겨진 솟대는 원래는 나무로 만들었다. 마을에서 가장 큰 샘 앞에 벅수 두 개와 함께 세워져 있다. 옛날에는 음력 삼월 초에 집집마다 상을 가져와 차려놓고 비손을 했다.
3, 4백년 되었다는 솟대다. 별신장군이라 새겨진 솟대는 원래는 나무로 만들었다. 마을에서 가장 큰 샘 앞에 벅수 두 개와 함께 세워져 있다. 옛날에는 음력 삼월 초에 집집마다 상을 가져와 차려놓고 비손을 했다.

마을 동쪽 숲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당집이 있다. 돌담이 둘러싸인 당집과 옆에 소나무를 감싼 나지막한 돌담 제장이다. 얼마 전에 제를 지냈는지 소나무에는 오색천이 걸려 있고 당집에는 과일과 명태 등 제물이 있다.
마을 동쪽 숲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당집이 있다. 돌담이 둘러싸인 당집과 옆에 소나무를 감싼 나지막한 돌담 제장이다. 얼마 전에 제를 지냈는지 소나무에는 오색천이 걸려 있고 당집에는 과일과 명태 등 제물이 있다.

배를 타고 나와 빨래를 했다

식수 못지않게 어머니들에게 머리 무거운 일이 ‘빨래’였다. 집집마다 10여 명이 벗어던지는 그 많은 빨래를 집에서 주무를 수 없었다. 날 좋은 날, 이고 지고 ‘강’으로 건너가 빨래를 했다. 그 강을 찾아 가는 길이다. 배에서 만난 어머니들이 시집살이 중 가장 힘든 것이 빨래였다고 했다. 심지어 강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배에 실고 나와 뭍에서 빨래를 해서 가지고 들어가기도 했단다. 먹을 물을 길러갔다는 말은 들었지만 빨래까지 밖에서 해가지고 들어갔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섬에 도착해 아무리 둘러봐도 강은 커녕 실개천도 보이질 않는다. 골목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빨래했던 강을 물으니, 그걸 왜 물어보냐는 듯 고개 너머 ‘몽돌밭’으로 가라고 알려줬다.

섬에서 꼭 필요한 것 세가지를 꼽으라면 물, 불, 발이다. 식수, 전기, 배란 이야기다. 배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도선이 있고, 전기는 1976년 10월 들어왔다. 문제는 식수였다. 2004년 당포에서 곤리도까지 해저로 물길이 이어지면서 식수와 빨래에 필요한 물이 해결되었다. 그러니 강은 그 흔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마을입구에 전기가 들어온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뭍에서 당연한 것도 섬에서는 소중하다.

몽돌밭에 빨래를 해서 널었을까.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빨래를 했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폐허가 된 육상가두리가 자리를 차지했고, 계곡물이 모았던 시멘트로 만든 둠벙만 남아 있다.
몽돌밭에 빨래를 해서 널었을까.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빨래를 했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폐허가 된 육상가두리가 자리를 차지했고, 계곡물이 모았던 시멘트로 만든 둠벙만 남아 있다.

자식이 온다는 전화를 받아서 일까. 한 시간이 넘도록 하염없이 뱃길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어머니는 배가 도착하자 일어섰다.
자식이 온다는 전화를 받아서 일까. 한 시간이 넘도록 하염없이 뱃길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어머니는 배가 도착하자 일어섰다.

동펜마을을 지나 쑥섬을 바라보면서 언덕을 넘었다. 욕지도로 가는 배가 가두리 양식장을 가로질러 쑥섬 앞을 지난다. 좁은 솔숲을 지나니 폐허가 된 건물이 나타났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몽돌밭이다.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가 눈앞에 펼쳐지고 뾰족한 비진도 선유봉도 들어온다. 그런데 어디에서 빨래를 했다는 말이지. 육상양식장으로 보이는 폐건물이 어지럽다. 그 사이로 시멘트로 만든 조그마한 물통이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이는 곳이다. 빨래를 했다면 이곳 밖에 없다. 이곳에서 빨래를 해서 몽돌밭에 널었을까. 고개를 넘고, 배를 타고 뭍으로 가야 빨래를 해야 했던 섬살이 고충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당집과 숲길을 돌아 서펜에 있는 학교에 이르렀다. 환영이라도 하듯 노란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이들 소리로 가득 해야 할 학교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주말이라서가 아니다. 아이들이 없어서다. 넓은 운동장에 여러 칸 교실만이 마을의 규모를 가늠할 뿐이다. 동펜 당산나무에서 본 마을이나 서펜 학교에서 본 마을은 모두 그림이다. 영화는 물론 드라마 그리고 예능프로그램에도 곧잘 등장한 이유를 알만하다. 크고 작은 짐을 들고 사람들이 골목길을 오른다. 드라마에 나온 예쁜 집 아래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어머니가 일어섰다. 배가 도착한 모양이다. 오래 전에 이 길을 올라 다니며 학교를 다녔지만 젊은이에게도 여전히 이 길이 부담스럽다.

곤리도는 영화, 드라마,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섬마을이다.
곤리도는 영화, 드라마,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섬마을이다.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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