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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온 과보를 받아들이고 현실에서 계획을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새해 결심

2017.12.22 김창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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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도저히 담배는 못 끊겠더군요. 생명이 단축된다고 해도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같이 사는 부모님이나 아이들 건강에 해가 안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집안에서 피우는 건 자제하고 있어요. “

2017년 1월 당시 새해를 맞아 대전에 사는 50대 후반의 C씨는 금연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의 각오는 2주를 채 넘기지 못하고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여느 해와는 달리 정말 굳게 마음먹었는데도 결국 금연이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좌절감 등의 후유증으로 고생도 적지 않았다”고 그는 털어놨다.

아쉽지만 2017년은 보내야 한다. 12달을 어떻게 보냈는지 반성하며 그 과보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진제공=김현호)
아쉽지만 2017년은 보내야 한다. 12달을 어떻게 보냈는지 반성하며 그 과보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진제공=김현호)

“어떤 일이 있어도 올해는 한 달쯤 남미여행을 하고야 말겠다, 이런 식의 결심을 벌써 네댓 해 가량 해온 듯 하네요. 그러나 여전히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돈이 좀 모일 듯 하면, 이상하게 바쁜 일이 연달아 생기고, 시간이 날 듯 하면 여비 마련이 쉽지 않고….”

자영업을 한다는 한 40대 여성은 똑 같은 ‘새해 결심’을 수년 째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도 그에게는 해외 여행이 희망 사항 1순위이다. 그럼에도 실제 실천에 옮길 수 있을지를 자신할 수 없다. 스스로를 ‘속인 듯한’ 상황이 한두 해 생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새해 다짐이나 결심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다. 나이의 고하, 직업, 성별에 관계 없이 공통된 현상이다. 한국에만 특유한 게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면 현상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 듯’,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원, 바램, 각오, 결심 등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 

까미노 드 산띠아고 트레일. 스페인에 위치하는 이 트레일 걷기를 새해 희망사항으로 정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가브리엘 머크)
까미노 드 산띠아고 트레일. 스페인에 위치하는 이 트레일 걷기를 새해 희망사항으로 정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가브리엘 머크)

인간이 본시 ‘목적적’ 존재라는 점을 고려하면, 새해 목표를 세우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새해가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혼인을 한다든지, 아이를 갖게 된다든지, 새로 직장을 구하게 된다든지 하면 무언가 목표를 세우기 마련이다. 면밀히 관찰해 보면, 사실 결심이나 목표 설정은 일상 속에서도 존재한다. “오늘 안으로는 무슨 일을 끝내겠다”는 등의 구상이 그런 예이다.

각오 결심 희망 등은 인간 고유의 습성이자 두뇌 활동이다. 헌데 새해 각오가 유달리 눈길을 끄는 건, 기간으로 볼 때 한 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전제하고, 또 한 해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일상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새해 각오는 또 당대의 문화와 세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도 그 위상이 독특하다. 예컨대, 최근 십 수년 사이 ‘흔한’ 새해 각오 가운데 하나는 살 빼기 혹은 체중관리이다. 한국인들만 그런 게 아니라 아시아 권이나 구미에서도 비슷하다. 새해 결심은 50년 전, 100년 전에도 존재했지만, 다이어트가 당시에는 주된 새해 결심 리스트에 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해 결심의 유형별 분류가 가능한 건, 무엇보다 새해 결심이 문화 현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새해 결심은 대체로 건강, 여가, 돈 등의 문제로 집약되는 경향이 있다. 금연이나 금주, 체중 관리 등 건강 문제는 결심 리스트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 또 여행이나 친지 등과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든지 하는 여가 확충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이다.

돈처럼 보다 현실적인 사안들도 종종 새해 결심의 테마가 된다.  은행 대출 등 빚을 좀 줄이겠다든지, 아니면 얼마쯤 돈을 모아보겠다든지 하는 유형이 이에 속한다. 집을 장만하겠다거나 좀 더 쾌적한 곳으로 이사를 계획한다든지 하는 새해 결심도 크게 보면 돈 관련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 여가, 돈 관련 새해 결심은 한국인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대동소이하다. 건강이나 여가 돈은 사실 삶의 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이는 인간들의 원초적 욕구와도 맞닿아 있다. 새해 성취하고 싶은 소망의 대상이 되는 게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새해 결심 가운데 가장 흔한 게 건강 증진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천 계획 없이는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언스트 비크네)
새해 결심 가운데 가장 흔한 게 건강 증진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천 계획 없이는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언스트 비크네)

건강 여가 돈 관련 새해 결심은 외부에 드러내놓는 예가 적지 않다.  금연이나 금주 등을 가족이나 직장 동료에게 ‘공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남에게 알리지 않는 새해 결심 유형도 존재한다. 직장에서 승진을 목표로 한다든지, 학생들이 성적을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등의 결심은 보통 ‘비공개’ 유형에 속한다.

문화권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성인을 기준으로 한다면 새해 결심은 보통 과반 이상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의 관심은 그러나 새해 결심이 어떤 유형의 속하느냐가 아니다. 새해 각오나 목표가 얼마나 성취되고, 결심 실천에 실패하는 경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심리과학자 등에 의해 제법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간의 조사나 연구결과에 따르면, 새해 결심의 성취도는 10%를 넘지 않는다. 개개인으로 따져도 그렇고, 총 결심 숫자를 기준으로 분석해도 결과는 큰 차이가 없다. 새해 목표나 각오를 한두 개쯤 세우는 사람도 있지만, 많게는 10여 가지를 기록해 두고 실천하려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반적으로 ‘성공 확률’이 1할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새해 결심은 인류에게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동시에 ‘새해 결심=구두선’이라는 인식 또한 널리 퍼져 있다. 다시 말해, 새해 결심은 대개는 말만 번지르르할 뿐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성격의 것이라는 얘기이다. ‘누구나 하는 듯 하지만, 실천의 별개’라는 새해 결심의 이 같은 2가지 특징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적지 않은 학자들이 새해 결심의 심리를 분석하고, 관련 책들까지도 나와 있는데 전문가들의 지적 가운데는 고개를 끄덕일만한 대목들이 적지 않다. 몇몇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특히 매해 새해 각오를 다지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거나 실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라면 참고해야 할 만한 부분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물거품이 되기 쉬운 새해 결심’으로 공통적으로 꼽는 유형은 ‘너무 크고 두루뭉수리 한’ 목표를 설정한 경우이다. 예를 들면 ‘올 한해는 운동에 주력해 체중을 빼겠다’는 식이다. 점심 때마다 사무실 근처에서 2km씩 걷고,  상반기까지 2kg 체중 감량 등과 같은 구체적인 부대 계획 없이 큰 틀에서 새해 각오를 하게 되면 십중팔구 실패한다는 말이다.

비현실적 목표 설정도 흔히 성취되지 못하는 새해 결심에 속한다.  예컨대 경제적 여건이나 업무 환경 등이 한달 혹은 두 달의 해외여행을 실천에 옮기기에는 쉽지 않은데,  막연히 기대만으로 희망 리스트에 올리는 것이다. 또 얼핏 현실적으로 보여도, 예를 들자면 대여섯 차례 앞선 시도에도 불구하고 금연에 실패하는 등 그간 달성하지 못한 각오라면 아예 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새해 결심 사항이 다수일수록 실패 확률이 높은 건 불문가지이다.  이는 야구 타자로 치면 높은 볼 낮은 볼 혹은 바깥쪽 하나만 노려 치기도 쉽지 않은데, 모든 구종과 코스의 볼을 다 때려내겠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아무리 많아도 서너 개 가능하다면 한두 개 이내로 결심의 가짓수를 좁혀야 실천에 옮길 가능성이 커진다.

다시 밝아오는 새해에는 현실에서 구체적인 결심을 세워야 한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다시 밝아오는 새해에 다시 세우는 결심은 현실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세워야 한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마디로 새해 결심을 성취하려면,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호주 등지에서 이뤄진 일부 조사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진지하게 새해 결심을 세우는지를 의심케 한다. 즉 미국인의 경우 새해 결심을 세운지 28%가 일주일 만에 포기하고, 호주인들 중에서 3개월이 넘어서 즉 4월 초에도 새해 결심을 실천하는 사람은 20%를 밑돈다는 것이다.

심리과학자들은 ‘습관은 바꾸기 쉽지 않지만, 본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속성을 가진다’고 입을 모은다. 새해 결심이 원천적으로 달성 불가능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 습관에 관한 것이라면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게 새해 각오를 다지기 전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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