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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다로 들어갈 듯이 갯벌을 가로질러 바다로 질주한다. 인간의 모태가 바다였으니, 갯벌로 들어가는 것은 본능일지 모른다. 그 본능에 가장 충실한 인간이 어부들이다. 그렝이와 호미 하나 들고 갯벌로 들어가는 어부들이다.
그 옆으로 검은 연미복을 차려 입은 ‘검은머리물떼새’가 놀라지도 않고 내려앉았다. 서로 너무 잘 아는 탓이다. 피해를 주지 않으며, 어부들이 그렝이질을 하다 내버려 둔 조개나 갯지렁이를 얻을 수 있다는 어부지리 관계다.
갯벌은 인간보다 먼저 갯벌생물의 서식처였고 물새들이 먹이활동을 하는 터전이었다. 가장 늦게 갯벌에 나타나 주인행세를 하는 것은 공멸의 길이다. 공존의 질서를 찾아야 한다. |
유부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염전을 조성하면서다. 1960년대 초반 예닐곱 가구에 10여 명이 살고 있었다. 염전을 조성하면서 섬 거주자는 몇 백 명으로 늘었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20여명에 이르렀다.
이때 섬에 들어온 사람들이 임시거처로 지은 ‘떼집’이 40여 채나 되었다. 주변에 떼를 벽돌처럼 쌓아 초가지붕을 얹어 방과 부엌을 만든 임시 거처였다. 이후 김 양식이 시작되고, 인권문제로 폐쇄된 ‘수심원’이 운영되면서 인구가 늘기도 했다. 지금은 30여 세대 50여명이 오롯이 갯벌에 의지해 살고 있다.
유부도 집들은 임시거처를 겨우 면한 곳들이 많다. 염전을 조성할 때 들어와 ‘떼집’을 집어 초가를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제 땅이 아닌 곳에 지은 집도 많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
백합아, 고마워!
유부도에 염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당시 주민은 7, 8명에 불과했다. 지게와 소달구지를 이용해 돌을 지고 흙을 날라 제방을 막아 염전을 만들었다. 한참 소금밭을 만들 때는 300명의 일꾼들이 머물렀다. 그렇게 8판 약 40정보의 염전을 조성했다.
하지만 잦은 제방의 유실로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제방관리를 개인이 해야 하는 탓에 보수비용이 소금을 생산해 얻는 소득보다 많았다. 섬에서 염전을 운영하는 인건비도 문제였고 물류비용도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결국 1990년대 후반 소금생산은 멈추었다.
염전 이후 주민들은 김 양식을 시작했다. 일찍부터 지주식 김 양식이 발달한 서천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지금과 달리 어촌계에 가입하지 않고도 양식을 할 수 있었다. 소금도 그랬지만 김도 역시 쉽지 않았다.
뭍에서는 대량양식이 시작되었고 가공공장까지 옮기는 것도 문제였다. 김 양식이 쇠퇴하면서 거짓말처럼 찾아온 곳이 동죽과 바지락이었다. 주민들에게 새로운 생계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백합아 고마워. 네가 있어 정말 행복하구나. |
김 양식이 멈춰지면서 적잖은 사람들이 섬을 떠났다. 60여 가구에서 지금은 30여 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남은 주민들 생계수단은 백합 뿐이다. 다행인지 백합이 많이 채취되고 있다. 옛날 김 양식을 했던 곳에도 백합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젠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어민들도 이젠 기댈 것은 백합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종패도 뿌리고 어린 백합은 채취하지 않는다. 한두 집을 제외하고 30여 가구가 모두 백합을 채취하며 생활하고 있다. 옛날에는 친척들이 와서 채취를 했지만 지금은 직계가족과 미혼 자녀만 가능하다.
백합을 채취하는 도구는 아주 단순하다. ‘그렝이’와 ‘구럭’이 전부다. 그렝이는 갯벌을 긁어 백합을 채취하는, 구럭은 백합을 담는 도구다. 가장 원시적이며 바다와 갯벌에 피해를 적게 주는 전통어법이다. 백합이 서식하는 갯벌은 단단한 모래갯벌이라 주민들은 경운기를 타고 갯벌로 나간다. 바닷물이 들어와 가득 찬 후 물이 빠지기 시작한 세 시간 후부터 작업을 시작해 너 댓 시간을 일한다.
숙련된 어민은 많게는 20㎏을, 못하는 사람은 4㎏남짓 캐기도 한다. 봄과 가을에 백합 값이 좋아 1만원 대에, 여름철에도 8000여원에 이른다. 낮이 긴 여름철에는 낮 물때와 밤 물때 두 번 채취를 하는 날도 있다. 70대 이상 고령의 주민들도 물이 빠지면 백합을 캐러 나간다.
백합을 캐는데 필요한 것은 오직 ‘그렝이’뿐이다. 갯벌을 지키며 오롯이 큰 백합만 캐내는 것이 기술이다. 유부도 갯벌을 지키는 길이다. |
공장 대신 ‘갯벌’
이런 유부도 갯벌도 사라질 위기가 있었다. 군산처럼 갯벌을 매립해 공장을 만들자는 여론이었다. 1989년 충남 서천 장항갯벌과 전북 군산갯벌을 매립하여 ‘군장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군산지역은 곧바로 공단이 조성되었지만 장항갯벌은 공사를 시작하지 않아 갯벌로 남아 있었다.
장항과 군산은 금강을 마주한 이웃이자 경쟁관계였다. 군산의 공장굴뚝에서 연기가 오르고 인구가 늘어가는 것이 부러웠다. 새만금 물막이공사가 마무리되자 곧바로 장항갯벌을 매립해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팔순의 노인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갯벌이 가져다 준 평생직장 때문이다. 호미 하나면 정년퇴직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건강한 갯벌 덕분이다. |
이미 군산 쪽 공장부지도 비어 있는 상황이었고 새만금 간척지도 용도가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주민들도 찬반으로 나뉘었다. 찬성측은 새만금개발로 유부도 갯벌도 무너지고 더 이상 조개도 나오지 않으니 막아서 공장을 유치하자는 논리였다.
다행히 서천에는 국립생태원과 해양생물자원관이 들어서고 서천갯벌은 습지보호지역,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다. 갯벌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반대로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천지개벽을 운운했던 새만금사업의 결과를 보자. 부안 계화도나 김제 심포나 군산의 하제 갯벌 주민들은 공사장이나 공공근로를 기웃거리고 있다. 언제 끝날지 무슨 용도 사용할지도 아직 알 수 없다. 갯벌을 지킬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섬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하루 물때에 백합을 잘 캐는 사람은 20㎏을 캔다. 15만원에서 20만원에 이르는 벌이이다. 어디 가서 이런 일당을 받을 수 있겠는가. 공장대신 갯벌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 |
공존의 질서를 유산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인간만 아니다. 도요물떼새에게도 천만 다행이다. 2016년 봄과 가을에 20여만 마리의 도요물떼새가 찾았다. 이들 중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검은머리물떼새, 국제 멸종위기 종인 넓적부리도요 그리고 붉은어깨도요, 알락꼬리마도요 등 종류도 20여 종에 이른다.
유부도는 가장 많은 검은머리물떼새가 월동하는 곳이다. 겨울철에 수천 마리가 관찰되며 많은 개체가 번식도 한다. 작은 유부도를 국내는 물론 세계 탐조인들이 주목하는 이유다. 인근 새만금갯벌에는 간척사업 이전 봄철이면 30만여 마리가 찾아왔지만 지금은 5000여 마리가 찾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시베리아로 오가는 새들에게 절대 필요한 곳이 우리나라 서해갯벌이다. 그 중 새만금갯벌이 중심이었다. 유부도 갯벌마저 사라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경운기의 질주에도 물새들은 놀라지 않는다. 주민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오히려 그들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선다. 어부지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
변화의 조짐을 인간보다 더 먼저 눈치 챈 녀석들이 있다. 검은머리물떼새와 도요새들이다. 새만금갯벌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삶터를 찾은 것도 이유였다. 김 양식을 할 때는 백합, 동죽, 바지락 등이 많지 않았다. 어쩌면 김 양식이 자라는 갯벌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김 양식이 멈추면서 조개류가 늘어났다. 덩달아 물새들도 많이 찾고 있다.
검은머리물떼새는 서천군을 상징하는 새이다. 육지와 떨어져 있어 인간의 간섭이 적고, 조개류 등 좋아하는 먹이들이 풍부한 탓이다. 새만금 탓으로 유부도 갯벌도 영향을 받고 있다. 펄이 늘고 모래가 줄어들고 있다. 백합서식지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다행스럽게 폐염전 방조제를 걷어내고 갯벌 복원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갯벌유산은 인간과 물새 선택이 아니다. 공존이다. 공존의 질서를 물려줘야 한다.
하늘에서 본 유부도의 전경. |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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