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36조(벌칙)
-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개정 2011. 12. 2.>
1. 저작재산권,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재산적 권리(제93조에 따른 권리는 제외한다)를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대여, 2차적저작물 작성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
2. 제129조의3제1항에 따른 법원의 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위반한 자 -
②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개정 2009. 4. 22., 2011. 6. 30., 2011. 12. 2.>
1.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
2. 제53조 및 제54조(제90조 및 제98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에 따른 등록을 거짓으로 한 자
3. 제93조에 따라 보호되는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를 복제ㆍ배포ㆍ방송 또는 전송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
3의2. 제103조의3제4항을 위반한 자
3의3. 업으로 또는 영리를 목적으로 제104조의2제1항 또는 제2항을 위반한 자
3의4. 업으로 또는 영리를 목적으로 제104조의3제1항을 위반한 자. 다만, 과실로 저작권 또는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 침해를 유발 또는 은닉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자는 제외한다.
3의5. 제104조의4제1호 또는 제2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자
3의6. 제104조의5를 위반한 자
3의7. 제104조의7을 위반한 자
4. 제124조제1항에 따른 침해행위로 보는 행위를 한 자
5. 삭제 <2011. 6. 30.>
6. 삭제 <201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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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봉 “영화는 내 삶의 전부…인생의 스승”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가고파’ 등 120편 출연한 한국영화 산증인
1957년 한국 첫 홍콩 합작 영화 출연…“지금도 영화 생각하면 가슴 뛰어”
각고의 노력으로 한국 대중문화를 빛내며 오늘의 한류 열풍이 있게 한 영광의 얼굴들을 기리는 ‘2012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이 지난 19일 개최됐다. 대중문화예술인들에게 최고의 영광된 자리인 이날 시상식에서 1950~70년대를 풍미하며 한국 영화계 간판배우로 활약한 원로배우 윤일봉 씨가 영화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큰 획을 그은 한국영화계 거장이 말하는 인생과 예술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편집자)
강한 카리스마와 이국적인 마스크로 1950∼70년대를 풍미하며 한국 남성상을 대변했던 영화배우 윤일봉 씨(78). 1948년부터 현재까지 총 120여편에 출연하며 오랜 시간 대중들에게 변함없는 ‘스크린의 신사’로 남아있는 그가 지난 19일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 시상식에서 은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 배우 윤일봉 씨는 지난 19일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 시상식에서 은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
1984년에는 영화 ‘가고파’로 대종상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에 이름을 남겼고 2008년엔 제16회 이천 춘사대상영화제에서 ‘아름다운 영화인상’을 받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1950~7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배우 윤일봉 씨를 지난 22일 충무로의 한국영화배우협회에서 만났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윤일봉 씨의 큰 풍채에서 뿜어져나오는 살아있는 눈빛과 표정은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그는 한국영화사(史)를 대변하는 거장답게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영화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털어놓았다.
“당시 먹고 살기 참 힘들었어요. 영화를 제작하는 게 사치라고 여겨지던 시절이죠. 부모형제 마저도 영화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때였어요. 우리나라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지금까지 영화인생을 살아오는 데 큰 힘이 됐죠.”
그가 영화계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1948년 철도 다큐영화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윤 씨는 어느 날 학교로 찾아온 안철영 감독과 이용민 감독 등에게 캐스팅돼 영화에 출연했으며 같은 해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제작된 ‘푸른 언덕’에 출연, 스크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그 이후 윤일봉 씨는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기 위해 방송과 영화를 넘나들며 바쁘게 지냈다.
“지금은 어딜가서든 연기를 배울 수 있지만 그 당시 연기학원이나 연영과 자체가 없었잖아요. 연기의 폭을 넓히기 위해 방송생활도 했었죠. 당시에는 라디오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던 시기였어요. 라디오 드라마에서 배역을 맡아 목소리로 연기하며 배우생활을 차근차근 시작했죠.”
그는 20세가 되던 해인 1953년, 전쟁의 참화를 딛고 만들어진 정창화 감독의 데뷔작 ‘최후의 유혹’에 출연했다. 그는 “전쟁통에 영화를 만드는 일이 무척 힘든 일이었으나 스텝들 모두 힘을 모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최후의 유혹’ 조감독으로는 리얼리즘 영화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발탄’(1961)의 유현목 감독이 참여했다. 단편영화 ‘해풍’으로 유현목 감독과 인연을 맺었던 윤일봉 씨는 정창화 감독에게 유현목을 소개해줬다. 이로 인해 유현목 감독에게 ‘최후의 유혹’은 영화계 입문작이 됐다.
이후 1955년 윤일봉 씨는 민경식 감독의 ‘구원의 애정’이라는 영화를 통해 극영화 첫 주연을 맡게 됐다. 그는 “6.25 전쟁으로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우리 민족의 이야기”라며 “현재를 살아가는 후배들이 시대의 아픔을 그려낸 영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1957년 우리나라 최초로 홍콩과 합작 영화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한류’ 진출을 시도했다.
“당시 아시아 굴지의 영화사인 홍콩 쇼브라더스와 합작영화인 ‘이국정원’에 참여했어요. 그 때 배우 김진규, 최무룡 등과 함께 열연했지요. 겨울연가 등 한국 드라마로 지금의 한류 열풍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사실상 한류진출 노력은 이때부터 시작됐어요. 한국영화에 대해 아무도 관심없던 시절, 배우들과 스텝들이 나서서 해외에 우리나라 영화를 알렸죠.”
1950~70년대를 풍미했던 한국영화계의 거장, 배우 윤일봉 씨. |
1967년 윤일봉 씨는 이형표 감독의 ‘애하’로 제 6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을, 1972년에는 정진우 감독의 ‘석화촌’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1974년 한국영화 미국 첫 로케작품인 강범구 감독의 ‘황혼의 맨하탄’, 1975년 정소영 감독의 ‘애수의 샌프란시스코’에 출연한 그는 같은 해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에 출연했다. 멜로,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던 그는 1977년 ‘내가 버린 여자’, 1979년 ‘내가 버린 남자’로 흥행몰이를 한다.
한 평생 살아온 한국영화사의 숱한 기억들을 회상하며 그는 40년 전 이야기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윤일봉 씨는 군더더기 없는 노련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당시의 30만~40만은 지금의 700만~800만 관객 동원수와 맞먹거든요. 1977년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내가 버린 여자’는 40여만 관객이 봤지요. 79년 ‘내가 버린 남자’도 28만 가까이 들었고요. 1980년 변장호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 80’으로 또 한번 크게 흥행몰이를 했어요. 당시 꽤 많은 인기를 얻었지요.”
80년대를 넘어가며 그는 1984년 곽정환 감독의 영화 ‘가고파’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제23회 대종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배우로 연기력을 크게 인정받은 그는 영화제작에도 참여해 1986년 ‘먼 여행, 긴 터널’과 1988년 ‘그 마지막 겨울’ 등 영화 두 편을 제작했다.
한국영화계의 산증인인 배우 윤일봉 씨가 꼽은 우리 영화사의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는 1990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남북한영화제’라고 대답했다. 강대선 한국영화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비롯해 배우 윤일봉, 태현실, 장미희 등이 남측 영화계를 대표하며 뉴욕에서 북한 영화 관계자들을 만났다. 윤일봉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념을 초월해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로 마련된 자리에 초청된 것이라 의미가 깊어 이후로도 남북한 교류를 추진하려 했으나 지속되지 못했다”면서 아쉬움을 전했다.
60년간 연기생활을 하면서 애착이 가는 영화를 꼽아달라고 하자, 1984년 제23회 대종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가고파’라는 작품을 꼽았다.
“당시에는 영화 제작편수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내 입맛에 맞는 작품을 고를 처지가 못됐어요. 서로 돕는 의미로 영화에 출연했었죠. 힘든 시절 다함께 동고동락하며 참여한 작품이라 한편 한편 애착이 가요. 굳이 한편을 꼽으라면 힘든 우리 시대상을 잘 반영한 ‘가고파’라는 영화를 꼽고 싶네요. 상을 받아서 기억에 남는다기 보다 영화에 담긴 메시지가 큰 울림을 주거든요. 힘들었던 우리 민족의 아픔을 작품에 잘 담았어요. 정영숙, 박근형, 황정순 등 함께 열연한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고요.”
원로배우 윤일봉 씨는 지난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2012 대한민국 대중문화 예술상 시상식에서 은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
윤일봉 씨는 지난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2012 대한민국 대중문화 예술상 시상식에서 대중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소감을 묻자 그는 영화계 선배들이 고생한 공을 대신해 받는 것이라며 겸손함을 잊지 않았다.
“이번에 은관 문화훈장이란 큰 상을 주셔서 받게 됐는데, 어려운 시절 함께 고생했던 선배들을 대신해 받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영화계 선배들이 다같이 고생하면서 일궈낸 한국영화를 앞으로도 후배들이 잘 이끌어줬음 하는 바람이죠.”
지금까지 한국영화계의 거물이자 큰 어른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윤일봉 씨는 영화는 여전히 꿈이자 삶의 원동력이라며 화답했다. 하고 싶은 일을 물어보니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들이 무궁무진하다”고 답했다.
“지금도 영화 현장에서 들려오는 ‘레디 고’ 듣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변함 없어요. 영화현장의 소리는 언제나 두근거리죠. 카메라 앞에 서서 표현한다는 일이 얼마나 멋져요.(웃음) 영화는 제 삶의 전부이며 인생의 스승과 같은 존재예요. 영화를 통해 인생의 희노애락을 느끼며 살아왔고 배우로서 살아온 세월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살고 있어요.”
한국영화계의 거대한 산처럼 든든하게 우리나라 영화의 중심을 지켰던 윤일봉 씨.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 영화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후배들을 향한 애정어린 조언을 잊지 않았다.
“최근엔 코디와 매니저도 있고 영화스텝들도 많아져 제작환경이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어요. 1950~60년 당시 누가 배우 스케줄을 관리해 줬겠어요. 현장에서 더위와 추위, 배고픔과 싸우던 시기였죠. 지금과 같은 환경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예요. 선배들이 땀흘려 고생한 노력이 초석이 됐다고 봐야겠죠. 영화인으로 긍지와 책임감을 갖고 말 한마디에도 조심할 줄 아는 후배들이 많아져 한국영화의 미래를 밝게 빛내줬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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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뉴스 6·25전쟁 참전 고 티탈렙타 네덜란드 용사 유해 봉환 6·25전쟁 당시 네덜란드군으로 참전해 대한민국을 지킨 유엔 참전용사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다. 국가보훈부는 26일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네덜란드 참전용사의 유해 봉환식을 오는 29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A)에서 거행한다고 밝혔다.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참전용사는 1953년 4월 3일 네덜란드군 반호이츠 부대 소속 이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1954년 4월 23일까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고인은 21살의 나이에 자원해 6·25전쟁 참전을 결심했고 참전 일주일만에 오른쪽 엉덩이와 허벅지에 부상을 입었으나 다시 전장으로 복귀했다. 정전 하루 전날인 1953년 7월 26일 전개된 묵곡리 전투(340고지 전투)에서 여러 명의 전우를 잃은 아픔도 겪었다. 그는 6·25전쟁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1984년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정부 훈장을 받았고, 은퇴 후에는 반호이츠 부대 역사박물관에서 20년간 봉사하며 네덜란드군의 6·25전쟁 참전의 역사를 알리는 데 기여했다.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참전용사의 배우자 마리아나 티탈렙타(74세)씨는 남편이 생전에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기를 희망했고 남편의 유언대로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하게 되어 기쁘다고 유해 봉환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유해 봉환식은 29일 오후 4시 40분경 유해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면 5시 30분부터 여기서부터 대한민국이 모시겠습니다라는 주제로 거행한다. 유해 봉환식에는 강정애 보훈부 장관, 페이터 반 더 플리트 주한네덜란드 대사, 고인의 배우자, 손녀 등이 참석해 국방부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고인의 유골함을 향해 예를 표하고 추모사 후 봉송 차량까지 모시는 간결한 의식으로 진행한다. 추모사는 강정애 장관과 페이터 반 더 플리트 대사, 고인의 배우자가 차례로 낭독할 예정이다. 봉환식을 마치면 유해는 5월 1일까지 국립서울현충원에 임시 안치되며, 안장식은 유족과의 협의에 따라 2일 오후 2시부터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주한네덜란드대사관 주관으로 거행된다. 가평전투 73주년을 맞아 방한한 영연방 4개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참전용사와 유가족이 23일 오후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전우의 넋을 기리며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국가보훈부 제공)2024.4.23.(ⓒ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편,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참전용사와 생전에 인연이 깊은 페트뤼스 호르메스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협회장과 반호이츠 부대원들도 방한해 일정을 함께한다. 유족을 포함한 방한단은 29일 입국한 뒤 유해 봉환식과 횡성전투기념식, 안장식 등에 참석한 후 다음 달 3일 출국할 예정이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참전용사님의 유언에 따라 대한민국 부산에서 영예롭게 잠드실 수 있도록 예우를 다해 모시겠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 유엔기념공원에는 2015년 5월 레몽 베르나르 프랑스 참전용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26명이 사후 안장돼 있으며, 그중 네덜란드 참전용사는 5명이다. 문의: 국가보훈부 국제협력과(044-202-5912)
- 카드뉴스 사업장 이전으로 퇴사하게 되면 실업급여는 못 받나요? 자발적 퇴사임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통근이 곤란한 경우에 대해서 준비해왔습니다! 우리 모두 사례를 통해 고드래곤과 함께 알아볼까요? Ⅴ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기본 조건 실업급여를 수급하기 위해서는 다음 4가지 조건에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기여기간(180일 이상) 비자발적 퇴사 실업상태 적극적 구직활동 ※ 실업급여란?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가 실직한 경우 소정의 급여를 지급해 생계 안정 및 재취업의 기회를 지원해주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자발적 퇴사인 경우에도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사유들이 있는데요!(예외사유) 통근이 곤란한 경우, 2개월 이상 임금체불 직장내 괴롭힘 등 이번엔 그중 통근이 곤란한 경우에 대해 사례로 알아볼까요? [사례1] 회사 이전으로 출퇴근이 멀어져서 퇴사하게 됐는데요? 이런 경우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나요? - 네! 받을 수 있습니다! 사업장의 이전 또는 지역을 달리하는 사업장으로의 전근 등에 의한 사유로 퇴사 시 통상의 교통수단으로 통근 왕복 시간이 3시간 이상 소요된다면 실업급여 대상에 해당됩니다! [사례 2] 결혼으로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를 할 예정인데, 이런 경우에도 실업급여 대상에 해당되나요? - 네! 해당됩니다! 배우자 또는 부양할 친족과의 동거를 위한 이사로 퇴사를 하게 되는 경우, 실업급여 대상에 해당됩니다. 다만, 위 경우를 제외한 사유로 이사하게 되어 퇴사하는 경우에는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돼요! 마지막으로 통근이 곤란한 사유로 인정되는 사례를 정리해볼까요? Ⅴ 사업장의 이전 Ⅴ 다른 지역 사업장으로의 전근 Ⅴ 배우자 또는 부양 가족과의 동거를 위한 이전 Ⅴ 기타 불가피한 사유로 통근이 곤란한 경우 위의 사유 중 한 가지에 해당되며, 통상 교통수단으로 왕복 3시간 이상 소요된다면 실업급여 수급 가능! 당연히 기여 기간, 실업상태, 구직활동 등의 요건도 모두 충족되어야 합니다!
- 건강 심방세동 예방 관리 8대 생활 수칙 심장의 박동이나 리듬이 고르지 않은 것을 부정맥이라고 합니다. 심방세동은 부정맥의 한 종류로 심장 박동이 지속해서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심방세동이 생기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며, 심박이 빨라지므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으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걸을 때 숨이 차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붓거나 어지럽고 피로한 증상이 동반될 수도 있습니다. 전혀 증상 없이 우연히 발견되기도 합니다. 주로 어르신에게서 관찰되지만, 드물게 50세 이전의 중장년층에게서도 발병합니다.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뇌경색(중풍) 예방입니다. 맥박을 만져 보거나 혈압을 측정할 때 이상 상태가 관찰되며 스마트워치로 발견할 수 있지만 심방세동은 심전도 검사를 해야만 확실한 진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방세동 예방 관리 8대 생활 수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두근거림이 있으면 항상 맥박을 재거나 심전도 검사를 합니다. 가슴이 두근거릴 때, 손가락을 가볍게 손목에 올려 맥박이 불규칙하지는 않은지 천천히 확인합니다. 자동 혈압계나 스마트워치를 이용하여 맥박수나 심전도를 측정합니다.두근거림이 지속되면 가까운 병원에 방문하여 심전도를 측정합니다. 2. 과음과 폭음을 삼갑니다. 술자리는 되도록 피합니다. 술은 하루에 3잔 이상 마시지 않습니다. 술을 마실 때 폭탄주와 원샷은 피합니다. - 폭탄주는 체내 알코올 흡수율과 전체 음주량을 높이므로 지양해야 합니다.- 원샷은 혈중알코올농도를 급상승시켜 폭음으로 이어질 확률을 높이므로 지양해야 합니다. 3.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합니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려면 요가나 본인에게 맞는 유산소 운동을 하며 건강한 생활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합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하려면 자기 몸을 스스로 조절하려고 노력하는 행동 제어 요법이 도움이 됩니다. - 과도한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심방세동을 유발하거나 심방세동 재발 빈도를 높입니다.- 생체 자기 제어(바이오피드백) 방법으로 깊이 호흡하거나 인위적으로 근육을 이완한다거나, 자기 체면, 명상 요법이 해당합니다. 4.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과 같은 기저질환을 잘 관리합니다. 혈압을 자주 측정하여 목표 혈압이 유지되는지 확인합니다. - 고혈압 환자는 아침에 일어나서 혈압약을 먹기 전과 자기 전에 측정한 혈압이 중요합니다. 본인의 목표 혈압이 얼마인지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고 확인합니다. 혈압약은 매일 같은 시간에 먹습니다. - 약을 깜박 잊는 경우 생각나는 즉시 먹어야 합니다. 본인의 당화혈색소를 확인합니다. - 심장, 혈관에 가장 좋은 수치는 일반적으로 6.5% 이내입니다.- 본인의 당화혈색소가 잘 조절되고 있는지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고 확인합니다. 5. 수면 무호흡을 잘 관리합니다. 수면 무호흡과 심방세동 발생을 줄이려면 적절한 체중 유지가 중요합니다. - 자신의 적절한 체중[(키(㎝)-100)0.9]을 확인합니다. 잠을 충분히 자도 낮에 계속 피곤하고 나른하다면 수면 검사를 받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 이후 음식물 섭취를 피하고, 가벼운 운동을 합니다. 6. 금연을 합니다. 흡연은 심방세동의 위험 인자이므로 금연합니다. 금연을 위한 건강한 생활 습관을 지니도록 합니다. - 금연, 체중 감량, 금주, 운동 등의 생활 습관은 심방세동 예방과 심혈관 건강을 증진합니다. 금연이 어렵다면 금연 교실, 금연 약물 등과 관련해 담당 의사와 상의합니다. 7. 비만을 관리합니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합니다. - 식습관을 파악하기 위해 식사 일기를 적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짠 음식, 단 음식, 기름진 음식을 줄이고 물을 충분히 마시는 습관을 기릅니다. 매일 20분 이상 걷기 운동을 합니다. - 심한 무릎관절염과 같이 걷기 운동이 무리가 될 때는 담당 의사 판단에 따라 다른 운동으로 대체합니다. 하루 7~8시간의 충분한 수면 시간을 지킵니다. 8. 심방세동으로 진단받으면 반드시 적절한 치료를 받습니다. 심방세동을 치료하지 않으면 뇌졸중, 심혈관질환 등 합병증 발생 위험이 높아집니다. 심방세동을 치료하려고 약물치료를 받을 때 약물 순응도와 지속성이 중요합니다. - 심방세동을 치료하지 않으면 두근거림,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발생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합니다. 자료=질병관리청·대한의학회
- 사진 산림청, 전남 구례 사방사업지 산사태 예방 대응 태세 점검 남성현 산림청장이 전남 구례군 산사태취약지역 사방사업지에서 여름철 산사태 예방을 위해 사업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남성현 산림청장이 전남 구례군 산사태취약지역 사방사업지에서 여름철 산사태 예방을 위해 사업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남성현 산림청장이 전남 구례군 산사태취약지역 사방사업지에서 주민안전을 위해 견실하고 철저한 시공을 당부하고 있다.
- 국민이 말하는 정책 보건소 스마트워치로 건강 관리 시작합니다! 스마트워치가 생겼습니다. 팔목에 착 감기는 착용감이 무척 편안합니다. 시계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전화, 문자, 카톡 알림도 신속하게 들어옵니다. 전화 걸기와 받기까지 가능합니다. 이뿐일까요. 심박수와 스트레스 측정 또한 간편하게 체크할 수 있습니다. 이 스마트워치의 최대 기능이라면 개인의 활동 및 운동 데이터가 수집, 전송된다는 것입니다. 유명 브랜드의 스마트워치 못지않은 성능과 디자인으로 제 일상의 건강 관리를 돕고 있습니다. 성능과 디자인이 모두 훌륭한 보건소 스마트워치. 국민의 건강을 위한 워치형 스마트밴드(스마트워치)를 지난 4월 12일 지자체 보건소에서 받아왔습니다.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 사업의 일환인데요. 모바일 헬스케어란 ICT를 활용한 공공형 건강 관리 서비스로 6개월간 진행하는 장기 프로그램입니다.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채움건강 앱과 활동량계(스마트워치)를 통해 기록된 개인별 생활습관을 모니터링해 맞춤형 건강 상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보건소 채움건강 앱. 매년 초 각 지자체 보건소에서는 모바일 헬스케어 참여자를 모집해 6개월간 사업을 진행하는데요. 저는 지난 2월 신청해 4월 12일 초기검진을 실시했습니다. 검진에서는 혈압, 공복혈당, HDL, 중성지방, 허리둘레 등을 체크했습니다. 최근 혈압이 높았던 저는 혈압 대상자에 해당돼 모바일 헬스케어 지원사업에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보건소에서는 1시간 이상 교육 및 상담이 이뤄졌습니다. 일단 진료실에서 의사와 상담을 했습니다.혈압이 높은 이유는 체중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체중을 줄이면 혈압도 자연히 내려간다고 말했습니다. 담당 의사는 지속 가능한 건강 관리를 위해 한 달에 1.2kg 감량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너무 무리해서 빼지도 말고, 절대 굶지 않기를 권유하셨습니다. 3개월 뒤 중간점검이 있을 시 3.6kg 정도를 감량하면 아주 건강한 다이어트가 될 거라말씀하셨습니다. 보건소에서 제공한 계절별 건강 식단표. 다음으로는 식단 관리를 위해 영양사님을 만났습니다. 제 수치를 보고 필요한 식단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하루 섭취 칼로리는 2000kcal로 설정해 주셨습니다. 그림처럼 아침, 점심, 저녁 정확한 식단표도 보여줬습니다. 한 끼마다 채소 두 가지 이상을 꼭 섭취할 것, 잡곡밥 먹기, 먹는 순서까지도 세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동안 모르고도 못했고, 알고도 실천하지 못했던 식단 관리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습니다. 채움건강 앱을 통해 매일 제가 먹는 식사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여러 이벤트를 통해 꾸준히 기록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셨습니다. 보건소에서 나눠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근력운동. 마지막으로 운동관리사를 만났습니다. 일상 속 운동의 중요성을 알려주며 퇴근 후에아파트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기를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7000보 이상 걸을 것을강조했습니다. 개인 운동 역시 운동일기를 적으며 매일매일 꾸준히 실천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모든 활동은 스마트워치와 채움건강 앱을 통해 보건소 분야별 전문가에서 전달될 예정이며, 만약 변화가 없을 경우 개별 상담이 꾸준히 이뤄질 것입니다. 사실 건강 관리라는 것이 의지 만으로 오래 지속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보건소의 도움으로 6개월간 지속 관리를 통해 천천히 변화를 꾀하고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초기검진, 중간검진, 최종검진으로 저는 6kg 이상을 근 손실 없이 체지방만 빼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 초기, 중간, 최종검진 항목. 보건소에서 수령한 스마트워치는 6개월 간 충분히 잘 활용하면 무상으로 증정된다고 했습니다. 6개월 뒤에도 스마트위치를 활용한 건강 관리를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전국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건강 관련 지원사업에 꼭 참여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무엇보다 건강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깐요.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영미 pym11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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