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콘텐츠 영역

성폭력범죄 수치에 대한 인식 전환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前 프로파일러)

2017.11.29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글자크기 설정
인쇄하기 목록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최근 필자는 생면부지의 사람들 몇몇에게서 항의메일을 받았다. 그 이유는 작년에 필자가 출연했던 ‘EBS 대도서관 잡쇼’의 방송 내용 중 일부, 정확히는 한국의 성(폭력)범죄율에 대한 언급 때문이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성(폭력)범죄율이 현재 전쟁과 내전을 겪고 있는 나라들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성(폭력)범죄율이 높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성폭력범죄에 취약한 나라라고 주장했는데, 문제는 이런 필자의 주장이 그들에게는 매우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들은 우리나라가 필자의 주장과는 달리 다른 나라보다 안전하며 성폭력범죄율 또한 다른 나라보다 높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필자가 한국 사회의 성(폭력)범죄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일종의 ‘공포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필자도 필자의 주장 즉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폭력범죄율 5위 안에 든다는 주장에 대해 국가공식통계(경찰청의 ‘경찰백서’와 ‘치안전망’, 법무부의 ‘사법연감’)와 비교할 때 일부 과장된 표현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수치보다는 더 낮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의 성(폭력)범죄가 여성의 안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정도로 높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폭력에 대한 감수성 및 성폭력범죄 감수성이 생활전반에 너무나도 무뎌져 있어서 실제 그 위험성을 현실에서 직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은유적으로 강조하고 싶어서 일종의 충격 요법으로 과장된 주장을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실제 현실은 어떨까? 우선 국가공식통계를 살펴보자. 경찰청 치안정책연구소가 발행한 ‘치안전망 2017’의 내용 중 성폭력범죄 전망(p125~p130) 편을 보면, 우리나라의 성폭력범죄에 대한 정의와 성폭력범죄의 발생 현황 및 추정치가 있다. 이 수치들은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조사하는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실시하는 전국 범죄 피해자 조사를 기초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수치들에는 필자가 (과장해서) 주장했던 국가 사이의 비교가 없다. 오로지 발생 건수(인구 10만 명당 피해율 포함)와 전년 대비 추세 정도가 전부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정치인들이나 고위관료들이 국가에 대한 통계수치를 언급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OECD 국가 중 몇 위라든지, UN회원국 중 몇 위라는 랭킹이 여기에는 없다.  

그렇다. 실토하자면 기실 성폭력범죄에 대한 국가 간 비교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적지 않은 범죄학자들의 주장이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없지는 않지만, 실제 경찰청이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범죄통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한국 최고의 범죄(통계)학자들은 국가 간 비교에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가마다 성폭력범죄를 규정하는 기준이 서로 상당 수준 다르고 또 그런 범죄를 처리하는 수사 및 사법시스템이 서로 상당 수준 다르기 때문에 단지 수치를 가지고 일률적으로 순위를 매겨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범죄통계는 다문화비교가 아닌 해당 국가 안에서의 추세비교를 위한 자료로서 활용될 뿐이다.

원론적으로 범죄통계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원표’라는 실체를 알아야 한다. 범죄통계의 가장 기초가 되는 수치는 경찰(지구대, 파출소, 112신고, 인지사건 등)에서 신고를 받거나 인지한 사건을 입력한 것, 이른바 ‘원표’에서 시작한다. 이 ‘원표’는 말 그대로 일종의 장부다. 당연히 항목이 있고 그것을 누적하는 엑셀 프로그램의 표 같은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원표’를 구성하는 범죄분류 항목이라는 것이 나라마다 관습적으로 형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간통’이라는 범죄가 있는 나라가 있고 없는 나라가 있으며, 몇몇 사람이 모여서 제3의 여성에 대한 평가(이른바 ‘몸평’)를 하는 경우에도 어느 나라에서는 단순한 음담패설로 치부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매우 심각한 성범죄로 다루는 나라가 있다. 또한 강간 피해자의 청바지 착의여부에 따라 강간을 판단하는 나라도 있고 명시적인 저항여부에 따라 강간과 화간을 나누는 나라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자살을 타살이 아닌 변사에 부여하는 나라도 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범죄라는 것이 모든 문화에서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는 게 아니고, 해당 국가에서 특정한 어떤 (공동체의 윤리)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서로 다르게 정의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서 범죄자 프로파일러(Criminal Profiler)들이 주로 이용하는 범죄분류메뉴얼(Crime Classification Manual, CCM)은 미국 FBI에서 미국의 관습적인 상황에 맞게 오랜 시간 동안 만든 것이다. 따라서 이 CCM을 한국의 범죄항목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리다. 특히 사기, 성폭력, 가정폭력 등의 경우 혼동될 정도로 다르다. 물론 그러한 기초 자료를 1차 혹은 2차 가공해 억지로 끼워 넣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고 비교를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특히 성폭력범죄의 경우 다른 범죄항목과 달리 유독 암수범죄가 많은데, 황지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연구논문 ‘범죄피해율과 공식범죄발생률간의 비교분석(형사정책연구 83, 2010)’을 보면 성폭력범죄의 암수범죄율이 87.5%로서 신고 대비 실제 범죄의 숫자는 6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 같은 이유로 국가 간의 비교는 무의미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우리나라의 성폭력범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의 성폭력범죄발생률을 의도적으로 낮게 만드는 사회적 기제가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다. 즉 우리나라에서 성폭력범죄가 실제로는 높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이를 직감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기저에는 우리 국민들 내면에 성폭력에 대한 행위 기준이 너무 느슨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 중에서도 세 가지가 큰 문제인데, 첫 번째로는 스토킹과 데이트폭력 등과 관련된 사안이고, 두 번째로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된 사안이며 마지막 세 번째로는 강간과 화간 그리고 무고죄와 관련된 문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들어본 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에서 보듯이 남성이 여성을 집요하게 공략해서 자신에게 호감을 갖도록 만드는 것을 일종의 성취감이자 자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행동은 본질적으로 타인에 대한 (성)폭력이다. 이는 성적 대상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발로에 다름이 아니다.

또한 스토킹을 당하거나 추행을 당한 여성에게 우리나라의 수사 및 사법기관은 성폭력범죄가 아닌 단순 폭행사건으로 처리하도록 합의를 종용하는 것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아울러 얼마 전 유명 의료법인 산하 대형병원의 간호사들이 사내 장기자랑을 빌미로 성적 폭력을 당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직장 내 성폭력의 부끄러운 민낯일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직장 내 성폭력문제는 심각하고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지만 겉으로 사건화 되지 않아 수치화하기 어렵다. 여기에 우리나라 사회의 성 격차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하층 서열화 상황에서 단지 결과로서의 성적 접촉만을 강조하는 성범죄 기준 때문에 실제와는 달리 성폭력범죄의 발생률은 낮게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성폭력범죄에서 강간과 화간을 둘러싼 성별 인식차이와 이를 이용한 무고죄 적용문제는 우리나라의 높은 성폭력범죄율을 효과적으로 은폐하는 최적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작년에 유명 탤런트 혹은 아이돌 스타에 의해 강간으로 고소했으나 역으로 (피해자의 직업적 위치로 인해) 피해자가 무고죄로 피소된 사건들과, 올해 한 가구업체 사건에서 피해여성이 순식간에 꽃뱀으로 매도되는 사건 등은 이러한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한국사회는 성폭력범죄에 있어서 안전한가? 안타깝게도 이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은 ‘성별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나라가 지금 직면하고 극복해야할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은폐된 성폭력범죄 현실을 제대로 아는 것이 우리나라 성폭력범죄 발생을 조금이나마 낮추고 양성 모두 안전한 나라로 나아가는데 밑거름이 되리라고 믿는다.

하단 배너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