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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착취 피해자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편지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 2020.04.08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 어떤 사람이든, 우리는 당신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유독 피해자에게 가혹한 범죄가 있다. 피해자일 뿐인데 피해자의 잘못은 없는지 의심하고 따져묻고 탓하기까지 한다. 성범죄가 바로 그러하다. 오랫동안 성범죄는 ‘정조’에 관한 죄였고,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유명한 판결을 남겼다.

성욕은 남성에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지만, 여성에게는 감추거나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만약 여성이 ‘정조’를 손상당했을 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성에게 물었고, 협박과 감금, 물리적 폭력 때문에 항거불능의 상태가 아니었다면 여성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남성이 여성에게 성적인 접근을 하는 것은 늑대의 본능이지만 “여자가 유혹하면 안 넘어갈 남자 없다”며 성적 접근의 책임은 또 여성에게 묻는 이상한 논리가 통용됐다. 구석기 시대 이야기 같겠지만 여전히 뿌리 깊게 박힌 고정관념이다.

그래서 성범죄의 피해자들은 유독 피해를 말하기 어려웠다. 범죄의 피해자임에도 우리 사회는 그것을 피해자의 잘못이라고 말했고,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말하기까지 45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사회 각지에서 #미투운동이 터져나왔을 때, 진짜 피해자라면 왜 이제야 말하냐는 비난이 있었다. 그럼에도 피해자가 용기낼 수 있었던 것은 피해자와 함께 하겠다는 #위드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터졌다. 피해자들은 다시금 보이지 않는다.

텔레그램 n번방, 피해자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말, 세계 최대 아동성착취영상물을 유통했던 다크웹 사이트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의 처벌 결과가 고작 1년 6개월의 실형이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는 이달 석방된다고 한다. 그의 죄명은 ‘아동 이용 음란물 제작·유통’이다.

‘음란물’이란 무엇인가? 대법원은 ‘음란’을 ‘사회통념상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정의했다(2013도6345판결). 이에 따르면, 피해 아동은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음란’함을 유발하는 음란한 몸일 뿐이다. 이 법에 피해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2020년 2월 14일,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주도했던 자들 중 한 명인 ‘박사’ 조주빈이 검거되었다. 텔레그램 내에는 ‘박사방’, ‘n번방’, ‘고담방’, ‘여중생방’, ‘여고생방’, ‘여교사방’, ‘지인능욕방’ … 무수한 이름의 방들이 있었다. ‘노예’라고 불리는 것부터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까지. 방 안에서 발생한 가해의 종류와 양을 이루 셀 수 없다. 사건의 규모와 악랄함에 많은 국민들은 분노하였고 국회와 정부는 앞다투어 엄중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3월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 성착취 등 디지털 성범죄에 강력 대응 방침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3월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 성착취 등 디지털 성범죄에 강력 대응 방침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문제는 지금까지 이와 같은 성착취 사건을 단순히 ‘아동 이용 음란물 제작·유통’ 또는 ‘아동 이용 음란물 소지죄’로만 처벌해왔다는 사실이다. ‘음란물’에는 피해자가 없다는 인식 때문에 가해자들은 경미한 처벌만을 받거나 아예 처벌받지 않았다.

그러나 텔레그램 등에서 공유된 영상과 사진은 ‘음란물’이 아니라 ‘성착취물’이며 영상 속 인물은 가상 인물이 아니라 현실의 사람이다. 피해자는 지금 바로 여기에 우리와 함께 존재한다.

폭력의 역사를 끊어내야 한다

1999년 개설되어 100만 회원을 자랑하던 ‘소라넷’은 온갖 성착취 영상물이 범람하고 각종 강간 모의와 강간 실행으로 넘쳐나는 곳이었지만 처벌받은 사람은 운영자 단 1명에 불과했다. 운영자도 고작 4년의 실형만을 받았을 뿐이다.

죄명은 ‘아동 이용 음란물 제작·배포’다. 만 18년 동안 자행한 무수한 범죄 및 수백억원에 달하는 범죄 수익에 대한 처벌이라기엔 너무도 참담했다. 그동안의 성착취 범죄에 가담한 자들 중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 또한 없었다. “처벌받지 않은 소라넷의 후예들이 ‘박사들’이 되어 돌아왔다.” ‘소라넷’의 남성들은 불법촬영물과 성착취물을 ‘음란물’로 소비하면서 폭력, 범죄가 아니라 성욕이라 합리화했다. 심지어 자살한 피해자의 성착취물을 ‘유작’이라고 부르며 피해자의 고통에 눈감았다. 아무도 처벌되지 않으니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었다.

그러나 변화는 시작되었다. 피해자들은 말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의 손을 잡고 있다. 가해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으며 이해해줄 마음도 없다. 평소 평판이 좋았다는 이유로, 앞날이 창창하다는 이유로, 초범이라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감형받거나 약한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자신이 행한 행동에 대한 응당한 처벌만이 유일한 정답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해주어야 한다. 피해자가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게 될지, 어떤 꿈을 꾸어왔는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알아보길 바란다. 폭력은 어떠한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피해는 어떠한 이유로도 피해자의 잘못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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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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