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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 영화에서의 서로 다른 두 가지 ‘M’

[영화 A to Z, 시네마를 관통하는 26개 키워드] ⓜ M(엠)

2020.06.19 이지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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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있어 ‘표현주의’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온 사조다.

1919년에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 소개된 이후, 영화학자들은 늘 ‘표현주의 영화’를 고민했다. 이 논쟁이 지난 90년간 지속되었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기원의 순수성을 철저히 밀어붙일 때, 모두가 동의하는 표현주의 영화는 오직 한 편뿐이다. 바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다.

‘영화적 표현주의’가 ‘칼리가리즘(caligarism)’이란 다소 집약적안 용어로 불리는 것은 이 고민의 결과라 말할 수 있다.

불협화음의 거슬리는 세계관, 빛과 그림자의 대립, 흑과 백의 차이, 사선의 기울어진 형태, 파괴된 원근법이 주는 인상은 오직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만 구현되는 물리적인 양상이다.

◈ 현대적 표현주의

그럼에도 영화적 표현주의의 영향은 크다. 이를테면 <블레이드 러너>(1982년작)나 <조커>(2019년작) 같은 현대적인 영화들을 논할 때, ‘표현주의적이다’라는 설명은 쉽게 사용된다.

이때의 표현주의는 확장된 개념이다. MTV 뮤직비디오나 미셸 공드리 감독의 몽유적 화면들이 향유하는, 내면적 표현의 방식을 우리는 ‘표현주의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잡지 <슈투름 데어>의 편집자 헤르바르트 발덴은 일찍이 표현주의를 일컬어 “스스로의 깊숙한 곳에 살았던 ‘경험’에 모양을 부여하는 예술”이라 말했다.

그가 소개하는 표현주의는 한 마디로 동적 구성이나 스타일이 아닌, 세계에 대한 ‘인식’을 겨냥한다. 표면적인 패턴 공유 방식은 사라지고, 이제 표현주의는 일종의 ‘정신’이 된다.

<M>이라는 제목의 영화 두 편을 보면서 드넓은 ‘표현주의 레이블’에 대해 생각했다. 두 작품의 실질적인 공통점은 ‘제목’ 뿐이다.

하지만 포괄적으로 이들은 내면적이고 현실적인 아이디어로 연결된다. 초기의 칼리가리즘을 벗어나서, 현대의 표현주의는 ‘창조적 아이디어’를 향해 활짝 열려 있는 듯 보인다.

이명세 감독의 <M>(왼쪽)과 프리츠 랑의 <M>. (포스터 출처=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
이명세 감독의 <M>(왼쪽)과 프리츠 랑의 <M>. (포스터 출처=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

◈ 이명세의 <M>

이명세를 일컬어 ‘이미지의 장인’이라 수식을 붙인 것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년작) 이후부터다.

그리고 후속작 <형사>(2005년작)와 <M>(2007년작)이 소개되면서 그는 비주얼리스트로서 자리 잡는다. 특히 <M>은 ‘내면적 스토리’를 위해 디자인된 영화이다.

잘생긴 베스트셀러작가 민우(강동원 분)는 현재 집필하는 소설의 전개가 막히자 히스테릭한 심정이 된다. 그의 곁에는 약혼자 은혜(공효진 분)가 머물지만, 민우는 그녀를 의식적으로 외면한다.

대신 첫사랑 미미(이연희 분)를 강박적으로 떠올린다. 그녀를 생각하는 일은 곧 민우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영화 <M>의 스토리는 모호하다. 미스테리한 연애 감정을 이 작품은 ‘사건’이 아닌 창의적 ‘이미지’를 통해 드러낸다. 주인공이 숨기는 불안의 감정이 대사가 아닌 모노크롬 이미지로 설명된다. 구멍 뚫린 환상의 표현주의가 인물을 위로한다.

◈ 프리츠 랑의 <M>

이명세의 추상적인 화면에 비해, 프리츠 랑의 <M>(1931년작)은 비교적 단단한 외양을 보인다.

그럼에도 설명 방식이 내향적이고 감각적이며, 사건 연결고리가 느슨한 것은 마찬가지다. 포스터 속 휘갈긴 ‘M' 글씨가 대변하듯, 매우 완곡하게 주제에 다가간다.

베를린의 어느 거리, 한 남자가 소녀를 납치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미 7명의 소녀가 사라진 상황이라 사회적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이지만 범인의 실마리는 드러나지 않는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 즈음, 지하세계의 보스들이 모인다. 그들은 자신들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불쾌감을 느낀다. 그렇게 경찰과 지하 조직의 투트랙 범인 찾기가 시작된다.

이 영화가 프리츠 랑 최초의 유성영화(talkie)란 점은 어느 정도 미학적인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어떠한 인물도 ‘대사’로 상황을 설명하지 않으며, 사건 해결 역시 상반된 조직의 ‘대립’을 통해 패러독스하게 진행된다.

주인공 한스(피터 로레 분)가 영화 한가운데에 드러나지 않는 것도 특이하다. 그는 핵심적인 주동자이지만, 주제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부수적이다. 전체 맥락이 아닌, 불안과 공허함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장치처럼 느껴진다.

역사학자 마크 페로는 ‘영화의 형식’이 완전히 ‘역사적’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의 접근법에 따르면 올바른 ‘영화 역사’는 어느 정도 표현주의적이다.

그가 꼽은 역사 영화의 예시가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1925년작)과 프리츠 랑의 <M>이란 사실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프리츠 랑의 <M>을 리얼리즘 영화라고 소개하기는 어렵다. ‘아동살해’라는 구체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지만, 다소 실험적 방식으로 영화는 현실 표면을 건드린다.

그럼에도 당대의 내면적 진실을 마주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1930년대 나치즘의 혼란’이란 정서를 영화는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 점은 이명세의 <M>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 첫사랑의 이미지는 버추얼하고 포괄적이다. ‘21세기 디지털소통’이 가져온 전이적인 심상에 관해, 이처럼 분명하게 소개한 한국영화는 없었다.

시대적 간극을 두고 완성된 두 편의 <M>을 보며 공허한 시간의 흐름과 역동적인 내면의 소리를 감지한다. 어쩌면 현재에 이르러 표현주의는, 리얼리즘보다 더 가깝게 관객들에게 관측되는 비주얼의 요소이다.

다소 환각적이고도 강박적으로, 비가시적 지속이 관객들과 함께 숨 쉰다.

이지현

◆ 이지현 영화평론가

200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으로 등단했다. 씨네21, 한국영상자료원, 네이버 영화사전, 한겨레신문 등에 영화 관련 글을 썼고, 대학에서 영화학 강사로 일했다. 2014년에 다큐멘터리 <프랑스인 김명실>을 감독했으며, 현재 독립영화 <세상의 아침>을 작업 중이다. 13inoch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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