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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경북 영천

경북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일원-한혜경 여행작가

2012.04.26 한혜경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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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아주 어릴 적, 엄마에게서 배운 <고향의 봄> 노래는 나에게 ‘고향의 이상적인 모습’을 심어주었다. 복숭아꽃, 살구꽃을 보기 힘든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 그런 고향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복숭아꽃 피는 봄날의 시골은 왠지 모두 내 고향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정작 이원수 선생이 작사한 <고향의 봄>의 무대는 경상남도 창원이라지만 말이다.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일대도 <고향의 봄>을 떠올리는 곳이다. 이 곳에 처음 간 것은 지난해 늦은 봄. 영천역에서 내려 택시로 갈아타고 20분 정도 더 들어가는 이 마을은 팔공산 자락의 ‘산골마을’이다. 관광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름난 국보나 명승을 보유하지도 않은 이 마을이 마치 내 고향인양 정겹게 느껴진 것은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난 후였다.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냇물 옆으로 마늘 농사가 한창이고, 마늘 수확이 끝나면 그 땅에 벼를 심는 이곳 전형적인 농촌마을. 여름이면 복숭아, 자두, 포도가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리는 넉넉한 마을이다.

모산제 골짜기의 복숭아꽃이 만개했다. 분홍빛에 취한 봄날이 꿀처럼 달다. 건너편에 보이는 한옥은 안동권씨 문중의 모산제 제실이다.
모산제 골짜기의 복숭아꽃이 만개했다. 분홍빛에 취한 봄날이 꿀처럼 달다. 건너편에 보이는 한옥은 안동권씨 문중의 모산제 제실이다.

안동 권씨, 영천 이씨, 창녕 조씨, 평산 이씨, 청주 양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인데다가, 조선시대에 지어진 정자와 제실이 많아 일반적인 농촌과는 첫인상이 조금 달라 보였다. 강우량이 적다고는 하지만 마을 곳곳에 저수지가 있어 늘 물이 모자라지 않았고, 동네를 감싸 안은 야트막한 산 위에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토성도 자리해 있을 만큼 역사적인 곳이다. 지난 해 늦봄에 찾아간 그곳에서 소나무 울창한 산길을 따라 토성까지 오르는 동안 들었던 후투티의 노랫소리와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는 태어나 처음 들었던 소리. 좋은 기억을 만들어준 신호탄이었다.

땀 흘려 오른 토성 옆 덩굴에서 따먹은 으름 열매의 달콤함이란! 봄이 한창인 시기에 피는 분홍빛 진달래 꽃잎도 별미다. 산길에서 발견한 개미귀신굴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낙엽을 헤집어 장수하늘소 유충을 찾아내는 재미까지… 도시 출신이기에 누리지 못했던 ‘고향의 봄’의 참맛을 듬뿍 맛본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보면 볼수록 볼 것이 많고, 알면 알수록 알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재미난 동네를 알게 된 것이 행운처럼 느껴질 정도다.

‘복숭아 꽃이 필 계절’이라는 소리에 마을 아는 분께 개화 여부를 여쭈었더니 “복숭 꽃 폈심더. 놀러 오이소!” 하신다. ‘복숭’이라는 사투리가 정겹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도착한 시간은 캄캄한 밤. 인적 없는 시골길을 달려 가상리 모산제 골짜기 입구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복숭아나무 앞에 섰다. 절정을 넘어선 벚꽃의 화려함을 이어받은 분홍빛 꽃들이 고향에 돌아온 듯 푸근하고 반갑다. 마을에 별도의 숙박업소가 없어 지인의 시골냄새 진하게 밴 옛 농가에 묵었다. 후텁지근한 아파트 공기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좀 낯선 서늘함이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지는 방에서 아주 달고 깊은 잠을 잤다.

앞산 노루가 꽥~하고 짖는 소리, 부엉이 우는 소리도 간간히 들려오던 나른한 봄밤이었다. 유난히 일찍 시작되는 농촌의 아침. 이슬 내린 산골짜기엔 분홍빛 복숭아꽃이 장관이다. 미백, 천도, 황도, 백도, 백향, 뉴골드… 다양한 품종의 복숭아 나무들이 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품종에 따라 꽃의 개화시기와 색깔 또한 조금씩 다르다지만, 가지마다 금방 터질 듯 물오른 봉오리와 만개한 꽃들이 가득하다. 모산제 골짜기뿐 아니다. 마을 곳곳이 꽃 잔치다. 흰 꽃을 피운 자두나무들이 복숭아나무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모산제 골짜기 안쪽에 자리한 저수지. 영천의 상징인 별을 모티브로 한 박용석 작가의 예술작품 ‘별의 별’이 저수지 수면에 떠 있다. (사진제공=박수진)
모산제 골짜기 안쪽에 자리한 저수지. 영천의 상징인 별을 모티브로 한 박용석 작가의 예술작품 ‘별의 별’이 저수지 수면에 떠 있다. (사진제공=박수진)

건강한 생태환경을 보유하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지만, 이 마을에도 여느 농촌처럼 노령화와 공동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폐교를 개조해 운영 중인 시안미술관이 마을 앞에 자리해 대구, 영천 사람들이 찾아들곤 했지만, 그 뒤편에 자리한 마을에는 크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가을 마을의 폐가, 쓸모 없던 옛 마을회관, 심심하던 담장들, 자투리 땅에 예술가들의 손길이 더해지며, 이 마을은 생태와 문화유산, 그리고 예술이 어우러진 마을로 탈바꿈했다. 가끔 수달이 목격된다는 개울 곁엔 수달 관측소 기능을 겸한 조형물이 세워졌고, 방치되어 있던 폐가는 무인카페가 되었다.

그저 평범한 시골마을이 흥미롭고 즐거운 시골마을로 변신한 것이다. 옛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동네 정미소, 옛 마을회관에 문을 연 마을 박물관, 마을 골목길 곳곳에 설치된 탁본벽화들, 자연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 예술조형물들이 마을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걸어서 마을 중심부만 한바퀴 돌아도 좋고,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고 마을 외곽의 저수지들과 귀애정, 덕강서원 등 마을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조선시대 의병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산 허리를 잘랐다는 ‘혈등과 스무골 유적지’로 좀 먼 트래킹 여행을 떠나도 좋다.

왜 관광지도 아닌 농촌마을을 생태여행지로 소개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농촌 뭐 볼게 있나’라는 선입견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태여행은 자연과 닮아가는 여행이라 생각한다. 싱그러운 바람, 눈부신 초록의 생태계 속에서 자연에 동화되는 것, 더 없이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 포근한 고향의 정취 속에 어슬렁거려보는 것만큼 좋은 생태여행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일손이 바쁜 계절에는 잠시 농사일도 거들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즐기는 여행. 그것이 착한 생태여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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