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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박물관…그리고 낙서

윤태건의 ‘공공예술 즐기기’ ⑦

2010.11.08 윤태건 The To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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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정상회의 첫날인 11일 20개국 정상을 맞이하는 리셉션 만찬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정상의 배우자들은 가까운 리움미술관에서 만찬을 갖는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부언할 필요 없는 우리나라 대표 박물관이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 문화예술의 진가를 보여주는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 약 25만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에서 정상을 맞이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와 혼, 역사를 알리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오는 11일 G20정상들을 처음 맞게 되는 국립중앙박물관 환영리셉션장의 모습
오는 11일 G20정상들을 처음 맞게 되는 국립중앙박물관 환영리셉션장의 모습
 
리움미술관은 비록 사립미술관이지만 고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 근현대미술품과 해외미술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버금가는 수준 높은 컬렉션을 자랑한다. 게다가 리움미술관에서 스위스의 마리오 보타, 네덜란드의 램 쿨하스, 프랑스의 장 누벨 등 세계적인 건축가의 설계로 만들어진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건축물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또 하나의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기업이 운영하는 사립미술관이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행사가 열렸으면 모양새가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이 아닌 저 멀리 과천에 있다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 더구나 지금 짓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규모면에서 G20 같은 대형 행사를 치르기에는 좀 부족한 감이 들어 아쉬움이 안타까움으로 길게 남게 된다.

어쨌든 2% 부족하지만 박물관에서는 정상들을, 미술관에서는 배우자들을 모신 것 자체는 ‘탁’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박물관에서 전통과 역사를, 미술관에서 동시대의 예술을 짧은 시간내에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가끔 이럴 때는 미술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에 어깨가 으쓱대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개국 정상들에게 선 보일 대표 작품 20점은 대표적인 고고학자와 역사학자, 그리고 박물관 큐레이터들이 “한국 문화의 독창성과 대표성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작품”으로 엄선했다고 한다. 20점의 작품과 20개국 정상들을 매치시킨 스토리가 가히 걸작이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83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83호)
가령 일본 정상을 맞이할 작품으로는 <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83호)>이다. 기품 있게 고개 숙인 얼굴의 빰에 오른쪽 손가락이 닿을 듯 말 듯 살짝 대고 명상에 잠겨 있는 이 반가사유상은 일본의 국보인 교토의 <목조반가사유상>과 쌍둥이처럼 닮아서 고대 한국 문화의 일본 전파를 입증하는 결정적 사례로 꼽힌다. 중국과 매치시킨 작품은 조선시대 산수화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다. 대륙의 스케일에 필적하는 폭 8미터의 대작으로 산과 물이 만나 장관을 이루는 이 작품은 중국의 거대한 땅덩이를 염두에 둔 것이 역력하다.

역사가 짧은 미국을 환영할 작품은 기원전 8천년 경,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전에 만들어진 <빗살무늬토기>다. 여왕의 나라인 영국은 선덕여왕을 낳은 신라의 <황남대총 금관(국보 191호)>이, 예술의 나라 프랑스는 백제예술의 걸작으로 연꽃 봉우리와 아름다운 산수가 조각되어 멋진 자태를 보여주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가 각각 매치되었다. 그밖에도 고려의 <금속활자>, <물가풍경 무늬 정병>, <청자 연꽃 넝쿨무늬 매병>, <백자끈무늬 병>, <백자 매화대나무무늬 항아리> 등이 20개국 정상을 맞이하게 된다.

백제금동대향로(국보287호)
백제금동대향로(국보287호)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예술을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곳의 아우라가 품격을 내뿜고 있다는 점에서 G20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치르는 데 안성맞춤인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G20을 치르는 동안 격조와 우아함이 주를 이루면서도 그것이 권위적으로 비추지 않고, 해학과 풍자, 위트가 함께하는 편안함이었으면 좋겠다. 원래 박물관, 미술관이 우아한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일반 시민들이 쉽게 문턱을 넘기 힘든 살짝 권위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공미술은 박물관, 미술관의 담을 넘어 도시의 공원과 광장으로 나들이를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격조와 우아함·해학과 풍자 함께 어우러졌으면

박물관, 미술관의 권위에 일침을 가한 여러 예술가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영국의 뱅크시(Bansky)라는 일화는 특이하다. 뱅크시는 대영박물관에 <원시인 마켓에 가다>는 석기시대 암각화의 파편처럼 보이는 돌조각을 박물관 몰래 벽에 걸어놓은 적이 있었다. “구석기시대로 추정되는 이 유물”은 수렵기 동굴벽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한쪽에는 사냥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특이한 점은 아래쪽에 대형 마트에서나 봄직한 카트와 비슷한 형태가 새겨져 있었다.

카트?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밀고 다니는 그 카트. 박물관의 유물이 아닌 것이 분명하고, 전시되어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다. 뱅크시는 시멘트 조각에 ‘카트를 밀고 있는 선사시대 인류’의 모습을 그렸다. 뱅크시는 고대 동굴 벽화에서 떨어져 나온 부분 같은 이 작품을 들고 대영박물관에 몰래 잠입했다. 그리고는 석기시대와 고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진품들 사이에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걸어 놓았다. 친절하게 유물에 대한 설명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당장 들켰을 것 같지만 거의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관람객들은 물론이고 대영박물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와 직원들까지도 ‘카트를 밀고 있는 원시인’이 그려진 벽화조각을 알아채지 못했다. 진짜 유물과 누가 봐도 짝퉁이 확실한 유물이 대영박물관에서 함께 전시된 것. 나중에 작가가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세상에 공개하기 전까지 이 짝퉁 유물을 박물관 쪽에서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뱅크시의 작품이 나중에 박물관에 컬렉션되어, 지금은 진짜 유물들 틈에서 영구적으로 전시되고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대영박물관 입장에서 뱅크시에게 여러 가지 혐의, 가령 침입죄, 유물훼손죄 등등을 걸어 문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역발상으로 그의 작품을 구입했다는 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뱅크시는 자신의 길거리 작품을 이용해 다양한 동시대 문제들을 들춰내고 현대미술이 안고 온 미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뱅크시는 게릴라적 예술 활동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바스키아처럼 그래피티 작업을 하며 거리를 헤맸던 그가 엽기발랄한 게릴라성 전시 방법으로 기존 미술관의 철옹성 같은 담장을 넘었다. 규범화되고, 제도화된 미술관, 미술권력을 비웃은 것이다.

<원시인 마켓에 가다>처럼 박물관, 미술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비단 영국 뿐만은 아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방독면을 쓰고 있는 여인의 초상화를, 브룩클린 미술관에서는 스프레이 통을 들고 있는 남자의 그림을 걸어 놓았고, 자연사박물관에서는 미사일과 폭탄으로 중무장한 <딱정벌레>를 걸어 놓았다. 뱅크시는 이처럼 기존 미술관에 대한 조롱에 그치지 않고 반전, 평화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스프레이를 이용, 낙서 형식의 벽화를 만든다.

뱅크시는 반전, 평화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스프레이를 이용, 낙서 형식의 벽화를 만든다.
뱅크시는 반전, 평화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스프레이를 이용, 낙서 형식의 벽화를 만든다.
 
초기에는 영국의 공무원들과 건물 주인들이 뱅크시의 낙서를 지우느라 바빴을 것이다. 게다가 영국은 특히 낙서가 불법이어서 뱅크시는 그야말로 게릴라처럼 몰래 작업하고 도망치는 일을 반복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워낙 유명해져서 뉴욕타임즈, 가디언을 비롯 유수의 언론에서 앞다퉈 그를 조명했고, 심지어 KBS에서조차 몇 달 전 뱅크시를 특집으로 다뤘다. 런던 곳곳에 설치된 그의 낙서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오고, 안내팜플렛이 제작되었다.

이제는 뱅크시의 작품 부분만을 잘 남겨두고 나머지를 깨끗하게 만드느라 바쁘다. 격세지감도 이정도면 상전벽해다. 안젤리나 졸리, 아길레라 등 유명 연예인과 컬렉터가 그의 작품을 수집한다. 브래드 피트는 그의 작품을 자그마치 200만불에 구입했다고 한다. 심지어 뱅크시조차 자신의 전시에서 “정말 믿을 수가 없군. 이렇게 쓰레기 같은 것을 사는 너 같은 바보들이 있다니”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작품을 사러 온 컬렉터들을 조롱했다고 한다. 뱅크시다운 면모다.

※ 윤태건은?

윤태건(42)은 공공미술 분야에서 대표적인 젊은 기획자다. 신문로의 ‘망치질 하는 사람’ 등 많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삼성문화재단 환경미술팀 연구원과 카이스갤러리 디렉터를 거쳐 지금은 공공미술 컨설팅회사인 ‘THE TON’을 운영하고 있다. 공공미술이 필요 없는 도시, 삶 자체가 예술인 도시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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