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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은 여가수의 무한 열정과 혼의 몸부림

[임진모의 즐거운 대중문화 읽기 ③] ‘샹송의 전설’ 에디트 피아프

2013.01.15 임진모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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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샹송의 전설’ 에디트 피아프의 이름은 오늘날에도 새롭고 각별하다. ‘제2의 에디트 피아프’로 통하는 프랑스 가수 파트리샤 카스가 지난해 12월 초 내한공연에서 부른 21곡의 노래는 모두 에디트 피아프의 곡들이었다. 마침 그는 ‘Kaas chante Piaf(파트리샤 카스가 에디프 피아프를 노래하다)’라는 타이틀의 헌정 앨범을 내놓았다. 피아프가 1963년 세상을 떠났으니 타계 50주년을 기념한 행사이기도 했다.

50년이 흘렀어도 에디트 피아프의 음악은 방송은 물론이고 공연, 영화,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근래만 해도 마니아들을 끌어 모은 전기 영화 ‘라비 앙 로스’가 있고, 지난해에는 최정원이 열연한 연극 ‘피아프’가 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 영화 ‘마다가스카 3’에도 그의 후반기 명곡 ‘Non, je ne regrette rien(난 후회하지 않아)’가 흘러나온다.

7년 만에 내한 공연을 하는 프랑스 샹송 가수 파트리샤 카스가 30일 오후 서울 중구 봉래동 프랑스문화원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카스가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프랑스 샹송 가수 파트리샤 카스가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봉래동 프랑스문화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카스의 공연은 그녀가 ‘샹송의 전설’로 불리는 에디트 피아프의 50주기를 기념해 발표한 음반 ‘카스 샹트 피아트(Kaas Chante Piaf, 카스가 피아프를 노래한다는 뜻)’를 테마로 진행 중인 투어 공연의 일환으로 지난해 12월 2~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사진=저작권자 (c)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곡에서 혼으로 울부짖으며 뿌려대는 에디트 피아프의 강직한 보컬은 광기와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 단호함 때문에 사람들은 이 곡을 ‘프랑스의 마이 웨이(My way)’ 혹은 ‘여자 마이 웨이’로 일컫는다. 이 노래를 포함해 ‘La vie en rose(라비 앙 로스, 장밋빛 인생)’, ‘Hymne a l'amour(사랑의 찬가)’ 등 워낙 절절한 노래들이 많다 보니 그가 망각의 늪에 빠질 수가 없다. 최근 이동통신사 서비스 광고 송으로 쓰인 ‘빠름 빠름 빠름’의 멜로디도 에디트 피아프의 ‘Padam padam’이 원곡이다. 

에디트 피아프를 축약하는 화두는 열정이다. 왜소한 체구의 여성에게서 그토록 엄청난 파괴력과 덩치의 가창이 터져 나온 것을 알면 경이를 넘어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생도 요즘 음악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참했다. 태어난 직후 서커스곡예를 하던 아버지는 군대에 소집되었고 홀로 딸을 양육하기 버거웠던 어머니는 아기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기고 멀리 떠나버렸다. 외할머니는 술꾼들 틈에서 손녀를 키웠다.

인기가 치솟으면서 미디어를 정복하고 미국의 프랭크 시내트라와 빙 크로스비 다음으로 돈을 많이 번 월드스타가 됐지만 유명해져서도 생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동료가수 이브 몽탕, 헤비급 복싱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 자크 필 그리고 26살 연하의 청년 테오 사라포 등 잇단 남자들을 만났지만 실연과 파경으로 얼룩졌고 술과 마약에 의존해 살아갔다. 특히 마르셀 세르당과의 가슴 아픈 로맨스는 전설이다. 세르당은 경기를 위해 뉴욕으로 떠나 있었고 피아프는 베르샤이유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세르당은 피아프를 만나고 싶어 오지 말라는 피아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행을 고집했고 비행기는 아조레스 해협 위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에디프 피아프가 이틀사흘 자기 방에 꼭 박혀 있다가 삭발하고 나타나 사망한 세르당을 위해 가사를 쓰고 노래한 곡이 바로 ‘사랑의 찬가’였다.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각별한 것은 이처럼 허구가 아닌 실제 삶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수의 인생과 노랫말이 일치한 곡에 감동을 받는다. 에디트 피아프하면 남자와의 스캔들, 잦은 파경, 교통사고 그리고 알코올과 마약중독과 같은 개인사가 동시에 떠오르고 그러한 역경의 삶, 그 음악 외적인 드라마 때문에도 더더욱 피아프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상승했다.

그는 노래하면서 터뜨릴 때를 알았고 또 속삭일 때를 알았다.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놓는 만큼 가라앉혀줄 줄도 알았다. 폭발과 절제가 절묘하게 동거한다. 에디트 피아프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가수는 목숨을 걸고 노래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무대에 설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다. 감각적 리듬, 요란한 의상과 차림, 섹시한 자태 등 순전 비주얼과 마케팅에 의존하고 있는 음악현실이기에 혼으로 노래하는 가수를 바라는 소박한 소망이 에디트 피아프를 끝없이 호명하고 소환하는 것이다. 그가 묻힌 파리의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는 사후 50년이 된 오늘도 전 세계인들의 추모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이 되새기는 것은 한 작은 여가수의 무한 열정과 혼의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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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모 음악평론가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1992년부터 대중들에게 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세계를 흔든 대중음악의 명반(2003)’,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2004)’ 등 대중음악 관련 저서를 출간했으며 라디오와 TV, 잡지, 신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활동 중이다. 음악 웹진 ‘이즘’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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