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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기본 숭배와 자기혁신으로 일군 금자탑

[임진모의 즐거운 대중문화 읽기 ④] ‘가왕’ 조용필

2013.04.02 임진모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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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관계자들, 언론 그리고 대중들도 한 결 같이 조용필을 가리켜 ‘가왕’이라고 한다. 어느덧 90년에 달하는 대중가요 역사상 한국의 가수 가운데 1위를 꼽자면 아마도 조용필이 될 것이다. 1이라는 숫자는 어쩌면 조용필을 위해 남겨둬야 할 영구결번일지 모른다. 그의 신화는 또한 역사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를 지닌다.

최근 사례만 해도 2011년 초 소록도 위문공연 때는 다음에 다시 온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또 소록도에 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절대 슈퍼스타의 진면목에 감동했다. 그를 잘 모르는 새로운 세대들도 ‘나는 가수다’를 비롯한 오디션 프로를 통해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와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같은 조용필의 명곡을 알게 되었다.

 조용필이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가수 조용필이 지난 2011년 5월 7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11 조용필&위대한 탄생 전국투어 콘서트-바람의 노래’에서 멋진 무대를 펼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런 조용필의 음악인생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모멘트, 전환점이 있다. 1968년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음악계에 입문한 그는 여러 그룹을 거치며 고통과 시련의 무명시절을 겪다가 자그마치 7년 이상이 흐른 1976년에서야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비상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스타덤이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스타덤도 잠시, 1년 후 대마초사건에 연루되어 활동정지를 당했다. 당시 대마초 사건은 가수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는 하지만 여느 가수처럼 세상을 한탄하거나 비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옥을 나온 뒤 노래 소리를 바꾸는 자기혁신을 단행한다. 가창력을 연마하고 깊은 울림을 얻기 위해 판소리와 민요를 배우는 단련의 고행을 거듭했다. 이전까지 노래 부르기의 단점과 약점을 알고 그것을 바꾸는 작업이었다. 그리하여 3년이 흐른 1980년, 이전과는 딴 판의 굉음이 지배하는 곡 ‘창밖의 여자’로 컴백해 더 큰 존재로 포효했다.

돌아온 조용필의 소리는 귀로 호소하는 게 아니라 가슴을 때렸다.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두성’과 ‘비성’을 섞어 구사하는 매혹의 보컬이었다. 10대 소녀들도 취해 아우성을 지르는 용광로 열기의 ‘조용필 현상’이 야기되었다. 사실 중고교 여학생들에게 오빠라고 불리기에는 쑥스러운 나이 서른이었지만 그는 1980년대를 정복하고 ‘국민가수’, ‘가왕’, ‘모든 장르의 통합자’ 등의 모든 영예로운 타이틀을 독점했다.

그러나 조용필과 결부지어야 할 키워드는 최고가수, 넘버원과 같은 말이 아니라 그 이전에 상기한 ‘자기혁신’의 자세라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음악에 대한 무한 도전, 완벽 추구, 주변의 감탄을 부르는 열정과 같은 조용필의 유전자는 모두가 이 자기혁신과 연결고리를 맺는다. 발표한 앨범마다 성공공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움을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을 가한 것도 자기혁신의 일환이다.

그는 무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수의 기본은 무대에 서는 것이다. 스케줄이 빠듯해지면 음악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다. 가수가 있어야 할 곳은 콘서트 무대다. 무대에 서야 큰 가수로 커나갈 수 있다!!” 가수는 ‘무대에서 계속 노래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말이다. 아주 단순한 말 같지만 한창 잘 나가는 가수와 기획사는 때로 이 말의 가치를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조용필이 돌아온다. 곧 ‘헬로’라는 타이틀의 새 음반을 낸다. 지난 2003년의 ‘오버 더 레인보우’ 이후 딱 10년만이다. 그는 앨범 출시 당일인 4월23일 잠실 올림픽 홀에서 쇼 케이스를 열고, 5월에는 전국순회공연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스스로 말한 것처럼 ‘콘서트’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 64세에 젊은 가수의 홍보 방식인 쇼 케이스를 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파격으로 일컫고 있다. 열린 자세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기본을 지키고 숭배하는 것 그리고 고지를 위해 자기를 혁신하는 것, 이것이 조용필의 양 날개다. 그게 또한 조용필 위대함의 에너지원이다.

ㅇㅇ
◆ 임진모 음악평론가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1992년부터 대중들에게 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세계를 흔든 대중음악의 명반(2003)’,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2004)’ 등 대중음악 관련 저서를 출간했으며 라디오와 TV, 잡지, 신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활동 중이다. 음악 웹진 ‘이즘’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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