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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 A to Z, 시네마를 관통하는 26개 키워드] ⓒ Cinema-Verite(시네마베리떼)
시네마베리떼(Cinema-Verite)라는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조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1920년대에 등장한 초기 다큐멘터리의 거장들에 대해 살필 필요가 있다. 영화의 탄생 이후 지속된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첨예한 대립은 시네마베리떼 탄생의 직접적인 이유였기 때문이다.
영국인 ‘존 그리어슨’과 소련 감독 ‘지가 베르도프’는 서로 다른 방식의 다큐멘터리 연출법을 선호했다. 그들 모두 사회적이고 참여적인 기능이 영화의 핵심이라 믿었지만, 둘의 촬영방식은 달랐다.
먼저 <북극의 나누크>(1922년)에 영향을 받아 픽션영화의 ‘캐릭터 기능’을 사용했던 그리어슨의 다큐멘터리는 주인공의 고난을 설명하기 위해 ‘스토리’를 이용했다.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드러내기 위해 ‘연속적 편집’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한편 베르도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년)를 관람한 관객들은 ‘실험적 이미지’ 탓에 내러티브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베르도프는 자신의 촬영법을 ‘키노아이’라 말했는데, 그는 인간 시선이 아닌 카메라의 새로운 관점이 영화에 드러나길 원했다.
◆ 진실의 영화 <어느 여름의 연대기>
시간이 흘러 1960년대, 프랑스의 영화학자 조르주 사둘은 베르도프의 카메라 이론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렇게 베르도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게 된다.
당대 영화계는 기술적으로 크게 변하는 중이었다. 카메라의 크기가 작아졌고, 동시녹음이 가능해졌다. 혁신적 발전이었다.
바뀐 환경에서 전문가가 아니라도 영화를 찍는 것이 가능해지자, 인류학자 장 루슈와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그들의 첫 영화 <어느 여름의 연대기>(1960년)를 제작하게 된다.
그들은 이 영화를 배급하는 과정에서 ‘시네마베리떼’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다. 그렇게 최초의 시네마베리떼 영화가 등장한다. 한 마디로 시네마베리떼는 ‘진실의 영화’다.
지가 베르도프가 자신의 영화를 ‘키노 프라우다’라 소개했던 것을 본 따, 장 루슈는 그 말을 프랑스어로 옮겼다. 그는 자신들의 영화가 기존의 픽션영화와 차별화되길 바랐다.
앞서 언급한 <어느 여름의 연대기>에서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직접 시민들과 만나 “당신은 행복하세요?”라고 묻는다. 가끔 인터뷰어가 카메라에 잡히기도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마이크가 화면에 드러나도 그냥 보여준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마치 베르도프 영화처럼 실험적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그리어슨의 편집방식을 사용해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로 이미지를 정돈했다. 그 결과 <어느 여름의 연대기>는 ‘진짜 현실’을 보여주는 느낌의 영화가 된다.
◆ 시네마베리떼 이후의 변화들
하지만 시네마베리떼의 유행은 매우 짧게 막을 내린다. 시네마베리떼의 ‘진실성’ 논의는 모호했고, 지속적인 논쟁을 불러 왔다. 그렇게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의 시기가 온다.
다이렉트 시네마의 방식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활용되고 있다. 쉽게 말해 다이렉트 시네마는 시네마베리떼보다 더 엄격하고 명확하다. 그래서 ‘금기 사항’이 많다. 대표적으로 프레더릭 와이즈먼의 영화들을 살필 수 있다.
다이렉트 시네마에서 내레이션 목소리는 사용되지 않는다. 카메라는 마치 CCTV처럼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며, 심지어 인터뷰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오랜 관찰 끝에 ‘우연한 구조’가 생성될 뿐이다. 그렇게 다이렉트 시네마 계열의 영화들을 보면서 관객은 ‘객관적인 시선’을 느낀다.
그밖에 시네마베리떼는 극영화의 촬영 방식에도 영향을 줬다. 특히 프랑스에서 몇몇 거장들이 고집스럽게 진실감의 탐구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자크 리베트나 모리스 피알라 등의 감독을 예로 들 수 있다.
실제로 피알라 영화에서 후시녹음은 사용되지 않는다. 그의 영화 속 대사는 전부 현장에서 동시녹음된다. 배우들은 길게 연기하고, 인공적으로 서로 부딪히는 일을 피한다.
그런 이유로 피알라의 영화들은 기존 영화보다 더 긴 상영시간을 갖는다. 또한 화면도 거칠게 보인다. 이처럼 몇몇 1990년대 예술영화들이 시네마베리떼의 자장 아래 완성된다.
어떤 영화가 ‘진짜인지’, 혹은 어떤 이미지가 ‘객관적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모호하다. 어쩌면 시네마베리떼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사진적 이미지’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 그 자체에 있는지 모른다.
영화미학은 규칙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창조 작업에 열광하는 자의 판단으로 가끔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이 점을 시네마베리떼 영화는 증명해 보인다.
◆ 이지현 영화평론가
200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으로 등단했다. 씨네21, 한국영상자료원, 네이버 영화사전, 한겨레신문 등에 영화 관련 글을 썼고, 대학에서 영화학 강사로 일했다. 2014년에 다큐멘터리 <프랑스인 김명실>을 감독했으며, 현재 독립영화 <세상의 아침>을 작업 중이다. 13inoch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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