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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몽타주 방식 너머, 거대한 화면들
[영화 A to Z, 시네마를 관통하는 26개 키워드] ⓔ Extreme Long Shot(익스트림 롱 쇼트)
한 가지 프레이밍으로 완성되는 영화는 없다. 하나의 영화는 수많은 쇼트들로 구성되며, 한 쇼트에 여러 가지 프레이밍이 사용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카메라가 프레이밍을 결정할 때 쇼트 구성의 기준은 ‘어떤 이미지를 담을지’보다는 ‘무엇을 탈락시킬지’ 여부에 달려있단 점이다. 즉, 프레이밍은 시각적인 영역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미학적이거나 윤리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대다수 영화에서 설정 쇼트(establishing shot)로 사용되는 ‘익스트림 롱 쇼트(extreme long shot)’의 사례를 통해 쇼트의 사용 가치에 관해 생각하려 한다.
우선 기술적인 면에서 익스트림 롱 쇼트는 단초점 렌즈를 사용해서 찍은 ‘익스트림 와이드 앵글 쇼트(extremely wide angle shot)’를 가리킨다. 화각의 범위가 넓고, 찍히는 상의 크기가 매우 작은 것이 특징이다. 한 마디로 전경(vista)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앵글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익스트림 롱 쇼트를 풍경이나 파노라마(panorama)를 위한 쇼트 정도로 인식한다. 인물을 둘러싼 배경이나 공간의 분위기, 상황 등을 설명할 때 유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쇼트는 ‘설정 쇼트’로 종종 이용된다. 인물 키 정도의 ‘롱 쇼트(long shot)’와 달리, 익스트림 롱 쇼트는 ‘배경의 가치나 상황’과 결부되어 설명할 때 존재 이유가 더욱 명확해진다.
◆ 와이드 앵글의 영화 <나폴레옹>
익스트림 롱 쇼트가 사용된 예시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그리피스의 영화 <인톨러런스>(1916)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고대 바빌론 시대’ 에피소드는 익스트림 롱 쇼트를 적극 활용했다. 많은 비용이 든 거대한 세트가 넓은 화각에 잡히는 순간, 배경이 지닌 역사적 상황은 단숨에 이해된다.
그리피스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감독들 중 아벨 강스는 <나폴레옹>(1927년)을 촬영하며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폴리비전(polyvision)이다.
3개의 카메라로 촬영된 3개의 이미지가 스크린에 나란히 상영되는 이 기법은 후반부 ‘이탈리아 출격’ 장면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된다. 화면 속 군사들이 마치 팔이 묶인 듯 갑갑하게 느껴졌다는 강스는 폴리비전을 통해 감정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거대한 들판을 찍을 때, 사람들은 더 멀리 떨어져야 했다. 그 결과 영화는 숫자를 통해 내가 얻고자 한 느낌과 최종적으로 더 멀어졌다. 만일 내 시야의 오른쪽과 왼쪽에 또 다른 스크린이 있다면, 하나의 이미지로 얻을 수 있는 파워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병사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벨 강스는 1940년 최초의 ‘와이드 앵글’ 기법이라 할 수 있는 폴리비전 기술에 대한 특허를 신청한다. 이후, 폭스사가 1953년에 개발한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 기술이 현대의 와이드 앵글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킨다.
물론 존재하는 모든 파노라마 화면을 익스트림 롱 쇼트와 연관 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일부에 불가할 뿐이다. 그럼에도 프레임을 무한히 확장하려던 초기 영화인들의 꿈이 이 거대한 쇼트를 통해 발전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 아주 먼 거리에서 촬영하는 이유
초기영화의 쇼트 기준은 일정한 초점 거리를 중심으로 변동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촬영 기술이 발전하면서 프레이밍 모델은 통일된다. 이를 영화학에서는 ‘고전 몽타주 모델’이라 부른다.
고전 몽타주 방식에서 쇼트의 법칙은 과학적이라기보다 경험적 데이터 축적으로 완성된다. 따라서 유형학적이다. 나라마다 다르고, 감독들마다 다르다. 그렇지만 일반론은 다음과 같다.
먼저 어떤 장면을 찍을 때, 촬영 순서는 무엇보다 프레이밍의 ‘크기’로 결정된다. 즉, 배우와 배경을 함께 담는 ‘롱 쇼트’ 위주의 촬영이 진행된 뒤 ‘미디움 사이즈’ 화면을 찍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사물의 ‘클로즈업’을 담는다.
고전 서사를 지닌 극영화일 경우, 이 법칙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몽타주 모델은 임의적이다. 어떤 것은 삭제될 수 있고, 감독에 따라 개별적 스타일을 활용하기도 한다. ‘익스트림 롱 쇼트’나 ‘익스트림 클로즈업’에 눈길이 가는 이유일 것이다. 이 기법들은 사용 자체만으로도 일정한 연출 의도를 숨겼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영화들 중 그 사례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최동훈 감독의 다양한 영화들 중 왜 <전우치>(2009년)만이 익스트림 롱 쇼트를 사용하는지, 혹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년)는 왜 그토록 느리고 정교한 익스트림 롱 쇼트에 매달리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앞서 살핀 <인톨러런스>나 <나폴레옹>에도 공통점은 있다. 모두 일상에서 벗어난, SF나 역사극에 가까운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익스트림 롱 쇼트는 서사적으로 특이하거나 가상적인 상황을 수월하게 설명하는 데 용이하다. 스타일적인 면이 아니라, 서사를 시각적으로 보충해준다.
글이나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비주얼적 양상을 이 쇼트는 단번에 끌어안는다. 채플린의 유명한 언급 “클로즈업으로 보았을 때 인생은 비극이지만, 롱 쇼트로 보면 희극이다”가 떠오른다.
대본이 아니라 스토리보드에서 완성되는 영화적 커뮤니케이션의 방식, 영화적 공간이 제공하는 무한대의 잠재력을 익스트림 롱 쇼트는 제시해 보인다.
◆ 이지현 영화평론가
200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으로 등단했다. 씨네21, 한국영상자료원, 네이버 영화사전, 한겨레신문 등에 영화 관련 글을 썼고, 대학에서 영화학 강사로 일했다. 2014년에 다큐멘터리 <프랑스인 김명실>을 감독했으며, 현재 독립영화 <세상의 아침>을 작업 중이다. 13inoch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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