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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완성과 힘의 관계 ‘파이널 컷’
[영화 A to Z, 시네마를 관통하는 26개 키워드] ⓕ Final Cut(파이널 컷)
영화는 고비용 투자 산업이다. 파이널 컷(final cut)은 영화의 산업적 측면과 깊이 연관된 개념으로, 말 그대로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직접적인 ‘힘의 관계’와 이익 배분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는 용어이다.
◆ 영화는 누구의 것인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파이널 컷은 ‘최종 편집’을 의미한다. 흔히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과 혼동하기 쉬운데, 디렉터스 컷은 ‘감독의 편집 버전’이다.
디렉터스 컷이 처음 등장했던 이유는 1980년대 시작된 ‘비디오 붐’ 때문이었다. 비디오 시장의 갑작스런 인기가 감독이 원하는 에디션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와 비교해 파이널 컷은 ‘극장’ 상영을 기준으로 정해진 오리지널 버전을 뜻한다. 파이널 컷의 결정권은 감독이 될 수도, 프로듀서가 될 수도, 혹은 둘 다에게 주어질 수도 있다. 미국은 ‘카피라이트(copyright)’라 불리는 저작권법에 따라 대개 프로듀서들이 이 특권을 가진다.
영화사를 살피면 감독이 직접 편집을 맡지 못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고전영화 중 <탐욕>(1925년)의 사례는 유명하다.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감독은 처음에 8시간 길이의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프로듀서 어빙 탈버그가 영화를 2시간 분량으로 편집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4시간 분량의 버전은 1990년대에 발견한 아카이브 문서를 토대로 감독의 의견을 반영해서 작성된 디렉터스 컷이다.
한편,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년)나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1985년) 같은 영화들은 감독의 의견과 정반대로 편집된 것으로 유명하다. 둘 다 개봉 당시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이고, 훗날 디렉터스 컷 에디션이 출시되었다.
◆ 저작권의 역학 관계
이렇듯 파이널 컷 개념은 예술적 영역과 경제적 문제 사이에 발생하는 미묘한 상호작용의 핵심을 건드린다. 즉, 파이널 컷 권한을 누가 가지느냐는 영화제작에 있어 실질적 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1) 파이널 컷 결정에 있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는 앞서 살핀 ‘상영시간’에 대한 논란이다.
대부분의 상업영화는 계약서에 미리 상영분량이 명시된다. 만일 2시간 이상의 영화일 경우, 극장에서 하루에 상영할 수 있는 횟수는 대략 1회 줄어든다. 그러니 경제적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프로듀서들은 ‘2시간 이내’를 선호한다.
2) 간혹 감독이 파이널 컷을 가지기 위해 ‘공동 프로듀서’ 역할을 자청할 때가 있다. 이 경우 감독들은 금융 지분을 일부 부담해야 한다.
어떤 감독은 금융적인 참여 없이, 촬영에서 테이크나 프레임 수를 스스로 제한해서 찍기도 한다. 자신의 승인 없이 변경될 편집의 범위를 최대한 좁히려는 의도이다.
3) 프로듀서 입장에서 결말을 ‘해피 엔드’가 되도록 이끄는 것 역시 파이널 컷과 연관된다. 감독의 입장에서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더라도, 결말이 ‘잘’ 마무리되면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상업적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암묵적 통계가 있다.
4)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스타’의 존재 역시 일정한 영향을 준다. 다만 유명스타의 경우, 이야기의 결말보다는 ‘분량’이나 ‘배치’ 문제에서 좀 더 특권을 갖는다. 생각해보면 스타가 중요한 것도 원칙적으로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 각국의 관행들
이와 비교해 한국영화계에서 저작권법은 다소 복잡하고 관행적인 양상을 띤다.
대부분의 상업영화에서 저작권은 계약에 따라 ‘제작사’가 그 권리를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영화 제작이 끝난 뒤에는 저작권이 ‘배급사’로 양도된다.
따라서 감독, 프로듀서, 작가가 계약 단계에서 특약을 추가하지 않는 한 개별 창작자들이 공동저작권을 가지기는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 완성에는 상상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며, 한국의 마켓은 미국과 비교할 때 월등히 작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는 1957년에 작성된 저작권법에 따라 “영화 작업은 감독이, 그리고 ‘때로는’ 작가나 프로듀서 등이 상호 합의에 의해 최초 표준 카피가 만들어졌을 때 완료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를테면 ‘계약’보다는 ‘감독’의 지위에 우선권을 부여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좀 특별한 사례이다.
그러니 정확한 파이널 컷의 의미는 미국시장에서만 통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 프로덕션 과정에서 발생하는 ‘권력 관계’의 가시적인 상징을 이 개념은 증명해 보인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독립영화제작사들이 거대 스튜디오로 흡수되는 사례를 발견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작년 8월에 <팬텀 스레드>(2017년)를 제작했던 ‘안나푸르나 픽쳐스’가 파산할 것이란 보도가 나돌았던 것이 대표적 예다.
한편으로는 “더 많은 통제력을 가질수록, 더 많은 장애물도 가지게 된다”는 에단 코엔의 언급이 떠오른다. 코엔 형제는 미국영화계에서 드물게 모든 작품의 파이널 컷을 유지했던 감독들이다.
물론 파이널 컷을 가진다고 권력의 전부를 가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파이널 컷 개념을 통해 ‘창의성’의 문제가 껴안는 영화제작의 ‘경제적 위험’이란 함정을 상기할 수 있다.
◆ 이지현 영화평론가
200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으로 등단했다. 씨네21, 한국영상자료원, 네이버 영화사전, 한겨레신문 등에 영화 관련 글을 썼고, 대학에서 영화학 강사로 일했다. 2014년에 다큐멘터리 <프랑스인 김명실>을 감독했으며, 현재 독립영화 <세상의 아침>을 작업 중이다. 13inoch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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