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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돌아보는 임정의 길① 상해

사진출처 : 국민소통실 촬영일 : 2019.03.18 촬영장소 : 기타 > 중국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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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해 임시정부청사 외관.
    상해 임시정부청사는 1919년 임시정부가 조직된 후 1926년 7월부터 1932년까지 7년간 사용한 청사다. 상해는 1910년대는 프랑스 조계지였다. 일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조계지의 특징 덕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할 수 있었다.
  • 상해 임시정부청사 외관.
    상해 임시정부청사는 1919년 임시정부가 조직된 후 1926년 7월부터 1932년까지 7년간 사용한 청사다. 상해는 1910년대는 프랑스 조계지였다. 일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조계지의 특징 덕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할 수 있었다.
  • 상해 임시정부청사 외관.
    상해 임시정부청사는 1919년 임시정부가 조직된 후 1926년 7월부터 1932년까지 7년간 사용한 청사다. 상해는 1910년대는 프랑스 조계지였다. 일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조계지의 특징 덕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할 수 있었다.
  • 상해 임시정부청사 외관.
    상해 임시정부청사는 1919년 임시정부가 조직된 후 1926년 7월부터 1932년까지 7년간 사용한 청사다. 상해는 1910년대는 프랑스 조계지였다. 일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조계지의 특징 덕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할 수 있었다.
  • 상해 임시정부청사 외관.
    상해 임시정부청사는 1919년 임시정부가 조직된 후 1926년 7월부터 1932년까지 7년간 사용한 청사다. 상해는 1910년대는 프랑스 조계지였다. 일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조계지의 특징 덕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할 수 있었다.
  •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안내하는 표지판.
  • 영경방 외관.
    영경방은 김구 가족과 임시정부 요인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김구 선생은 1922년부터 1926년까지 이곳에서 거주했다.
  • 영경방 외관.
    영경방은 김구 가족과 임시정부 요인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김구 선생은 1922년부터 1926년까지 이곳에서 거주했다.
  • 영경방 외관.
    영경방은 김구 가족과 임시정부 요인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김구 선생은 1922년부터 1926년까지 이곳에서 거주했다.
  • 팔선교 기독청년회관 외관.
    팔선교 기독청년회관은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홍구공원 의거를 논의하고 거사 전 마지막 만찬을 함께 한 곳이다. 현재 중화기독교 청년회관은 원형이 보존되어 있으며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 팔선교 기독청년회관 외관.
    팔선교 기독청년회관은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홍구공원 의거를 논의하고 거사 전 마지막 만찬을 함께 한 곳이다. 현재 중화기독교 청년회관은 원형이 보존되어 있으며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 팔선교 기독청년회관 외관.
    팔선교 기독청년회관은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홍구공원 의거를 논의하고 거사 전 마지막 만찬을 함께 한 곳이다. 현재 중화기독교 청년회관은 원형이 보존되어 있으며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 노신공원 내 윤봉길 기념관을 안내하는 표지판.
  • 노신공원.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홍구공원은 현재 노신공원으로 불린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과 승전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여한 일제 군부와 정관계 인사에게 수통형 폭탄을 투척했다. 윤봉길 의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로를 개척했으며 나아가 독립운동의 대전환점이 되었다.
  • 노신공원.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홍구공원은 현재 노신공원으로 불린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과 승전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여한 일제 군부와 정관계 인사에게 수통형 폭탄을 투척했다. 윤봉길 의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로를 개척했으며 나아가 독립운동의 대전환점이 되었다.
  • 노신공원 내 정자 매헌.
    1994년 윤봉길 의거를 기념하여 매정(梅亭)이라는 정자가 건립되었고 1998년 이곳에서 40m 떨어진 지점에 '윤봉길 의사 의거 기념비'가 세워졌다. 2009년 정자의 현판이 매정(梅亭)에서 매헌(梅軒)으로 교체되었다.
  • 노신공원 내 정자 매헌.
    매헌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고 1층은 매헌 윤봉길 의사의 일대기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 노신공원.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홍구공원은 현재 노신공원으로 불린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과 승전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여한 일제 군부와 정관계 인사에게 수통형 폭탄을 투척했다. 윤봉길 의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로를 개척했으며 나아가 독립운동의 대전환점이 되었다.
  • 노신공원.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홍구공원은 현재 노신공원으로 불린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과 승전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여한 일제 군부와 정관계 인사에게 수통형 폭탄을 투척했다. 윤봉길 의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로를 개척했으며 나아가 독립운동의 대전환점이 되었다.
  • 노신공원.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홍구공원은 현재 노신공원으로 불린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과 승전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여한 일제 군부와 정관계 인사에게 수통형 폭탄을 투척했다. 윤봉길 의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로를 개척했으며 나아가 독립운동의 대전환점이 되었다.
  • 황포탄 의거지.
    황포탄 의거지는 의열단원 김익상과 오성륜이 1922년 3월 2일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귀환 도중 상해에 도착한 일본 육군 대장 다나카를 저격한 의거 현장이다. 현재는 상해의 상징 동방명주 등의 야경이 유명한 관광명소 와이탄으로 변모했다.
  • 황포탄 의거지.
    황포탄 의거지는 의열단원 김익상과 오성륜이 1922년 3월 2일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귀환 도중 상해에 도착한 일본 육군 대장 다나카를 저격한 의거 현장이다. 현재는 상해의 상징 동방명주 등의 야경이 유명한 관광명소 와이탄으로 변모했다.
  • 황포탄 의거지.
    황포탄 의거지는 의열단원 김익상과 오성륜이 1922년 3월 2일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귀환 도중 상해에 도착한 일본 육군 대장 다나카를 저격한 의거 현장이다. 현재는 상해의 상징 동방명주 등의 야경이 유명한 관광명소 와이탄으로 변모했다.
  • 만국공묘.
    상해에서 활동하다가 타계한 한국인들의 묘는 원래 '징안스루'에 있었으나,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과 상해의 도시재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철거된 후 한인독립운동자 등 묘의 일부가 이곳 만국공묘로 이전됐다.
    만국공묘에는 한국인의 묘로 확인 또는 추정되는 14기의 묘가 있는데, 이 가운데 노백린·박은식·신규식·안태국·김인전 등 5기는 1993년 8월 5일에, 윤현진·오영선 2기는 1995년 6월 21일에 봉환됐다.
  • 만국공묘.
    상해에서 활동하다가 타계한 한국인들의 묘는 원래 '징안스루'에 있었으나,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과 상해의 도시재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철거된 후 한인독립운동자 등 묘의 일부가 이곳 만국공묘로 이전됐다.
    만국공묘에는 한국인의 묘로 확인 또는 추정되는 14기의 묘가 있는데, 이 가운데 노백린·박은식·신규식·안태국·김인전 등 5기는 1993년 8월 5일에, 윤현진·오영선 2기는 1995년 6월 21일에 봉환됐다.
  • 만국공묘.
    상해에서 활동하다가 타계한 한국인들의 묘는 원래 '징안스루'에 있었으나,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과 상해의 도시재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철거된 후 한인독립운동자 등 묘의 일부가 이곳 만국공묘로 이전됐다.
    만국공묘에는 한국인의 묘로 확인 또는 추정되는 14기의 묘가 있는데, 이 가운데 노백린·박은식·신규식·안태국·김인전 등 5기는 1993년 8월 5일에, 윤현진·오영선 2기는 1995년 6월 21일에 봉환됐다.
  • 만국공묘.
    상해에서 활동하다가 타계한 한국인들의 묘는 원래 '징안스루'에 있었으나,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과 상해의 도시재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철거된 후 한인독립운동자 등 묘의 일부가 이곳 만국공묘로 이전됐다.
    만국공묘에는 한국인의 묘로 확인 또는 추정되는 14기의 묘가 있는데, 이 가운데 노백린·박은식·신규식·안태국·김인전 등 5기는 1993년 8월 5일에, 윤현진·오영선 2기는 1995년 6월 21일에 봉환됐다.
  • 만국공묘.
    상해에서 활동하다가 타계한 한국인들의 묘는 원래 '징안스루'에 있었으나,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과 상해의 도시재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철거된 후 한인독립운동자 등 묘의 일부가 이곳 만국공묘로 이전됐다.
    만국공묘에는 한국인의 묘로 확인 또는 추정되는 14기의 묘가 있는데, 이 가운데 노백린·박은식·신규식·안태국·김인전 등 5기는 1993년 8월 5일에, 윤현진·오영선 2기는 1995년 6월 21일에 봉환됐다.
문화체육관광부 ·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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