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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5월, 어머니의 기억을 찾아서…

정책기자 조수연 2020.05.18

국가기념일 지정 후 처음으로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5월 광주의 함성이 40년 만에 전남도청으로 되돌아 온 날, 평소 트라우마로 기념식을 끝까지 시청하지 못했던 어머니가 오늘은 용기를 낸 듯 말없이 TV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말했다. “40년 전 오늘, 내가 광주에서 무엇을 했는지 아니?”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포스터.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포스터.


40년 전 당시 중학교 2학년, 열다섯살 소녀의 눈으로 목격한 광주의 열흘. 5.18 격전지 전남도청 옆 남광주역 인근에 거주했던 어머니는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나는 홀린 듯이 어머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1980년 5월 18일, 유난히 더웠던 5월의 광주. 일요일을 맞아 어머니는 친구들과 놀기 위해 전남대를 찾았다. 평소 왁자지껄했던 것과는 달리 학생들과 군인들이 대치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했다. 갑자기 군인들이 학생들을 향해 곤봉으로 머리를 내려치는 모습을 보고 혼비백산해 도망쳤다.

5.18의 시작, 전남대학교.
5.18의 시작, 전남대학교.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다행히 현장을 빠져나온 어머니는 터미널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 터미널에서도, 충장로에서도, 금남로에서도 무자비한 진압이 이어졌다. 왜 곤봉으로 맞아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새도 없었다. 먼저 몸부터 피해야 했다. 

5월 19일. 섬뜩했던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찾아왔다. 어머니도, 어머니 친구들도 학교에 갔다. 하지만 일요일에 느꼈던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사범대학 산하 중학교에 다녔던 어머니는 대학생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어제 일이 떠올랐다. 전남도청이 있던 금남로 방향으로 뛰어가던 대학생들. 대학생들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했다. 이날 학교는 일찍 파했다. 온갖 어수선한 얘기들이 들려왔다.

광주역으로 향했던 시민들. 광주역은 격전의 장소였다.
광주역으로 향했던 시민들. 광주역은 격전의 장소였다.


5월 20일은 임시휴교령이 내려져 학교에 갈 수 없었다. TV와 라디오 방송 어느 곳에서도 광주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소녀의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라디오를 던졌다.

이날 계엄군은 공수부대를 본격적으로 투입했다. 제3공수여단 5개 대대가 전남대학교에 도착해 본격적인 진압 준비를 마쳤다.

시민들의 종착은 전남도청. 사진은 전남도청 앞 분수대.
시민들의 종착지는 전남도청. 사진은 전남도청 앞 분수대.


전남도청에서 불과 2km 남짓한 대인시장에는 1000명이 넘는 군중이 모였다. 대인시장 상인과 노동자, 회사원, 가정주부, 대학생과 고등학생까지 다양했다. 이중에는 어머니의 친구들도  있었다.

목숨이 위협받는 환경 속에서도 광주 시민은 서로를 도왔다. 어머니는 최루탄에 신음하는 오빠, 언니들을 위해 치약을 잔뜩 사놓았고, 수건을 물에 적셔 물티슈로 만들었다. 비록 부모님의 만류에 시위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시위대를 위해 용돈을 털었다.

이날 시위대는 금남로를 가득 채웠다. 택시와 버스가 그 뒤에서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렸다. 금남로를 중심으로 시위대는 광주 전역으로 퍼졌다. 충장로, 하동, 방림동, 산수동 등 남광주, 북광주, 영산강 너머 서광주까지 시위대의 소식이 전해졌다.

전일빌딩에도, 시민들이 가득찼다.
전남도청 인근 전일빌딩245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있다. 전일빌딩245에는 당시 계엄군 총탄의 흔적이 남아있다.


5월 21일은 석가탄신일 휴무라 많은 시민들이 금남로에 모였다. 어머니는 나가지 못했지만, 옆집 대학생 오빠는 금남로로 향했다. 오후 1시. 애국가가 들렸고 시민들은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계엄군의 발포가 시작됐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총이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전남도청 경찰국. 전남도청에서 시작된 집단 발포는, 시민을 분노케했다.
전남도청 경찰국. 전남도청에서 시작된 집단 발포는 시민들을 분노케했다.


발포 소식에 집안의 불빛을 막기 위해 커튼으로 창문을 가렸고, 20도를 넘나드는 날씨임에도 솜이불을 꺼내 덮었다. 언제 총탄이 날아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두꺼운 솜이불을 덮으면 총알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땀띠가 났음에도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22일부터 26일까지 어머니는 5월 광주를 온몸으로 느꼈다. 동생과 함께 봉사에 나선 것이다. 어머니는 전남대병원과 전남도청 옆 상무관에 안치된 관 속 시신을 보자마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폭력에 시달렸던 얼굴을 보고 분노가 차올랐다.

전남도청 상무관. 5.18 당시 병원과 함께 시신을 안치했던 곳이다.
전남도청 상무관. 5.18 당시 시신을 안치했던 곳이다.


어머니는 상무관으로 찾아오는 시민들을 안내해 유가족을 찾아주고, 분향소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남광주시장에선 시민군을 위한 주먹밥과 김밥을 만들었다.

주먹밥과 김밥을 시민군이 올라탄 트럭에 던져줬다. 시장에는 가마솥이 즐비했고, 시민군들에게 줄 밥 짓는 냄새로 가득했다. 어머니가 이따금씩 구해와 던져줬던 딸기는 특식에 가까웠다.

남광주시장. 5.18 당시 남광주시장은 대인시장, 양동시장과 함께 주먹밥, 딸기, 김밥 등을 가장 많이 건넸다.
남광주시장. 5.18 당시 남광주시장은 대인시장, 양동시장과 함께 주먹밥, 딸기, 김밥 등을 가장 많이 건넸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접수했고, 광주의 봄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수백명의 광주 시민이 죽거나 다쳤으며, 일부 광주 시민은 지금도 5월이 다가오면 그 때를 회상하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 

어느덧 당시 소녀는 현재 대학생 아들을 둔 중년 여성이 됐지만, 1980년 5월의 광주를 떠올리면서 남몰래 눈물을 훔친다. 5월 광주를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 ‘화려한 휴가’ 같은 영화는 끝까지 볼 수조차 없다. 40년 전 5월 광주가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아 기념식을 보는 것조차 힘겹다.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리허설 모습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리허설 모습.


40년이 지났다. 전남도청에서 거행된 기념식을 지켜보며 어머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5월 광주를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듯이.



조수연
정책기자단|조수연gd8525g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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