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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당했다 ‘보이스 피싱’

정책기자 박은영 2020.07.17

7월 어느 날 오후 2시경. 돈가스와 계란말이, 콩나물국 등을 차려 아이들과 점심을 먹기 시작한 순간이다. 낯선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구로경찰서 수사과 누구라고 했다. “박은영 씨는 중고사이트 금융 사기에 연루돼, 17명의 피해자가 당신을 신고했다”고 했다. 한 마디로 넌 이제 진짜 큰일났다는 얘기였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남자는 “일주일 전에 전화했지만 내가 받지 않았다”며 차단 앱을 사용하냐고 물었고, 난 그렇다고 했다. 

남자는 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통장 동결을 위해 거래 은행별 잔액을 일일이 물어봤다. 전과도, 범인들과 연락을 한 사실도 없으니, 나 역시 피해자임을 검사에게 증명하라고 했다. 전화 조사가 이뤄질 거고, 녹음이 될 것이니 조용한 곳으로 옮기고, 가능하면 이어폰을 사용하라고 했다.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이스 피싱범이 보낸 고소접수증과 대포통장 거래내역,(이런 서류를 본 적이 없으니…)
보이스 피싱범이 보낸 고소 접수증과 대포통장 거래내역.(이런 서류를 본 적이 없으니…)


중앙검찰청 13층에 사건 인계를 위해 방문 중이라는 형사는 사건 담당 1418호실 검사를 바꿔줬다. 검사는 형사보다 조금 더 강압적인 톤으로 내가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조사자의 신분이라고 했다. 

“제 3자에게 유포하지 말아야 한다. 사건 경위에 대해서 이를 어길 시 유포자로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나온다. 입증의 기회를 놓치게 되면 3개월 간 9번의 재판에 출석해야 하고, 진술 내용과 차후 조사 내용이 다를 경우 사기방조죄와 공무집행방해죄로 경범죄 처벌법상 벌금 1000만원이 부과될 수 있다.”

검사를 사칭한 범인이 권위적인 톤으로 내게 전한 말들이다. 그는 또 ‘내가 범죄 사실을 몰랐다는 게 문제’라고 다그쳤다. 그럼 내가 어떻게 했었어야 했느냐 묻자 급하게 자기 말만 이어갔다. 

밥을 먹던 난, 금융사기 피해자들에게 고소된 가해자가 됐다. 내 명의를 도용한 통장은 약 2개월 동안 사용됐다. 거래 금액은 1억4000여만원이었고, 날 고소한 피해자들은 6400만원의 피해를 봤다며 나를 신고했다. 다른 통장이 도용됐을 수 있으니, 거래 은행과 각 계좌의 종류, 잔액을 일일이 말하라고 했다. 난 그들을 거의 믿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봤던 바로 그 수법으로 피해자들이 생겼다 믿었다. 나 역시 통장 명의를 도용당한 또 다른 피해자가 됐다고 생각했다. 

위조된 검찰의 증거 사진과 피의자 신문조서
위조된 검찰의 증거 사진과 피의자 심문조서.(그들의 준비는 꼼꼼하고 철저했다)


결정적으로 그들을 의심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를 끊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멘붕’에 빠진 내가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순간이다. 난 당신이 검사가 맞는지 확인해봐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검찰청에 전화했고, 사건번호와 검사를 확인했다. 단번에 ‘보이스 피싱’이라 했다. 톡과 메일로 서류나 사진을 받았다고 하니 금융감독원에 신고하고 거래 은행에 지급 정지를 신청하라고 했다. 

통장 비밀번호을 묻지도 주민번호를 불러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보이스 피싱이라 쉽게 단정하지 않은 이유다. 바보 같았다. “어떤 검사가 전화를 붙들고 있느냐”.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면 그건 그냥 바로 끊어야 하는 거다” 등 주위 사람들의 온갖 잔소리를 들었다. 바보였다. 인정한다. 며칠이 지났지만, 난 아직 통장의 잔액을 확인한다.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위로다.

안 그래도 힘든 코로나 시대에 보이스 피싱이 전국의 서민을 노리고 있다. 이에 경찰청은 지난달 30일 ‘민생침해범죄근절 추진단’을 구성했다. 피싱과 직거래, 쇼핑몰 등에서 벌어진 사기 행위 등 관련 범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범인들에게 메일로 받은 피의사건 처분결과 통지서와 법원 구속영장 허가서, 진짜 검사는 이런 서류를 메일로 보내지 않는다
범인들에게 메일로 받은 피의사건 처분결과 통지서와 법원 구속영장 허가서.(진짜 검사는 이런 서류를 메일로 보내지 않는다)


검찰청 직원은 범행 방법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보도에 따르면, 보이스 피싱 조직은 끊임없이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었다. 해외 총책 아래 콜센터와 국내 현금은 물론, 대포통장 담당 회사와 해킹 어플팀까지 많게는 100여명이 넘는 인원이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수십명의 조직원이 기술, 행정, 법, 심리 등을 연구하며 철저한 협업으로 팀을 이뤘다. 단 한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작정하고 속이려 드는 범죄 조직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당한 뒤 알아봤다. 보이스 피싱에는 공식이 있었다. ‘자신을 경찰 혹은 검찰이라며 대포통장을 언급하고’, ‘전화를 끊지 않고’, ‘추궁하는 말투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조용한 곳에서 받도록 유도하거나 이어폰을 사용하라’면 바로 전화를 끊어라. 100% 보이스 피싱이다.

또한, 늘고 있는 수법은 이랬다. ‘나 ○○인데 잘 지내지?’라며 톡으로 접근해 돈을 빌려달라거나, ‘통장 빌려주면 수수료 줄게’, 혹은 ‘상품권 사서 보내 주면 수수료 준다’, ‘송금을 엉뚱한 곳에 했다’며 재이체 및 현금 인출을 요구하며 범행을 이어간다. 

조사명령서와 증거보전신청서 (이제 보니 서류를 많이도 받았다)
조사명령서와 증거보전신청서.(이제 보니 서류를 많이도 받았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보이스 피싱 예방을 위해 최근 금감원은 ‘온라인 코리아 핀테크 위크 2020’의 체험 프로그램으로 ‘사이버 보이스 피싱 체험관’을 개설했다. 보이스 피싱 간접 체험과 대처법 및 보이스 피싱 금융사기문자 방지 앱과 기술을 소개하는 체험관은 지난 5월 28일부터 홈페이지(http://www.fintechweek.or.kr/)를 통해 누구나 관람 가능하다.

보이스 피싱은 더 이상 낯선 범죄가 아니다. 아는 사람 셋 중 둘은 보이스 피싱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모두가 아는 범죄니 나는 당하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없다. 지난 3년 동안 급증한 피해자가 이를 증명한다. 보이스 피싱으로 피해를 당한 경우엔, ‘30분 안에 사기이용계좌 지급 정지 신청을 하고, 경찰서에서 피해신고확인서를 발급받고, 지급 정지를 요청한 은행에 피해신고확인서와 신분증 사본, 피해구제신청서를 3일 이내에 제출’하는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

그들은 이미 당신의 전화번호와 이름, 생년월일을 알고 있다. 또한, 당신의 가족이나 수사기관, 금융감독원, 은행을 사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 주소 클릭’, ‘앱 설치’, ‘현금 전달’만 안 해도 승률이 있다. 보이스 피싱은 더 이상 연변 사투리로 어설프게 접근하지 않는다. 당해봐서 안다. 이상하다 싶으면 좌우지간 전화를 끊어라. 그게 바로 보이스 피싱 예방이다.



박은영
정책기자단|박은영eypark1942@naver.com
때로는 가벼움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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