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자정부 누리집 로고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2024 정부 업무보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2024 정부 업무보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콘텐츠 영역

[강상기가 만난 사람④] 축구인 최재모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게 축구 정신"

2004.06.29
인쇄 목록
한때 국가대표 축구선수로서 국가대표팀의 수비 포지션을 맡아 지금의 홍명보 선수와 같은 명성을 얻었던 최재모 선수. 68년부터 75년까지 국가대표선수로서 해외원정경기도 수차례 했다. 그가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기 전에 북한은 66년 런던 세계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8강까지 뛰어올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에 자극 받아 박정희 정권은 양지팀(중앙정보부팀)을 창단하였다. 북한의 거센 축구바람에 대한 맞바람으로 축구를 강력하게 육성하기 시작했다. 물론 국위선양과 홍보목적도 있었다.

박정희씨는 그의 처조카 사위인 장덕진씨를 축구협회 회장으로 내세워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그 결과 1970년 한해에 메르테카배 우승(말레이시아), 킹스컵 우승(태국), 아시안게임 우승(방콕)을 휩쓸었다. 이시기에 국가대표 축구선수로서 최재모는 맹활약을 해서 그 명성을 날렸다.

국가대표선수에서 물러난 최재모는 포항제철(지금의 포스코)실업팀에 입단했다. 약 2년 동안 활동하다가 77년 12월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는 고향에 내려가 78년도에 군산 제일 중고등학교 축구부를 창단하였다. 창단 2년 후부터 수년 동안 계속 전국 우승을 휩쓸어 군산 제일중·고를 축구 명문으로 키웠다.

내가 최재모를 알게 된 것은 81년도에 군산 제일고등학교에 근무할 때부터이다. 나는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지도에 여념이 없는 최 감독을 유심히 지켜봤다. 건성으로 지도하는 것 같은데 선수들은 최 감독의 지도에 성실히 따랐다. 크게 꾸짖는 일도 없는 듯했다. 나는 최 감독이 축구를 지도하는 모습 뿐 아니라, 수업이 끝난 오후에 학교 운동장 관중석 계단에 앉아 학생들의 축구하는 모습도 즐겨 보았다. 그들은 목표는 오직 하나, 골문에 공을 집어넣는 일이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줄기차게 팀워크를 이루어 공을 차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최재모 축구교실 어린이들이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모습.
항상 축구만 생각하면서 살아온 최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70년대 초 최재모의 축구 팬이었던 나는 최재모 감독에게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술을 좋아했던 나는 최 재모 감독에게 "언제 시간 있으면 술이나 한잔합시다. 시간과 장소는 최 감독이 알아서 정했으면 좋겠어"라고 만남을 제의했다. 그러다가 어느 주말저녁 무렵에 전주 객사 근방의 극장식 맥주 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축구인 이라는 것은 머릿속에 든 것은 없고 그저 공만 잘 차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운동만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머리가 비어있어 무언가 부족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최 감독과 대화를 하면서 이러한 고정관념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라, 내가 뭔가 굉장히 부족하고 잘못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대화를 신중히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약간 긴장까지 되었다.

"축구는 말입니다. 내가 혼자 잘 차자고 하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잘 차도록 늘 배려해야 합니다. 내가 불편한 자리에 있어도 내 동료가 편하게 플레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니, 다음 상황이 좋아지게 하는 기민하고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합니다. 좋은 판단을 하려면 속도조절, 타이밍이 아주 중요합니다."

"나는 축구인이 그런 기본철학을 가지고 뛰는지 몰랐습니다. 축구야말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운동이군요."
"그렇지요, 권투나, 유도, 태권도, 검도 등 개인기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상대를 꺾지 못하면 내가 죽는 그러한 운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나를 위한 것보다 팀 전체를 생각하면서 뜁니다. 물론 축구도 자기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뛰지 않으면 본인이나 팀 전체가 망가집니다."
"축구의 기본을 알면 인성이 좋은 인격을 형성하겠군요?"
"물론입니다. 축구의 정신을 실생활에 응용하면, 이타심을 가지고 사회봉사를 할 뿐 아니라, 나라 사람 정신에까지 확대시킬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정신으로 처신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재모 주부축구교실 회원들이 운동하는 모습.

과연 나는 어떤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자문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 전북 도지사가 몇 사람을 대동하고 술집에 들어왔다. 자리에 앉으려던 도지사가 "어, 최 감독, 오래간만이오"하면서 최 감독 앞으로 왔다.

"예, 안녕하세요"
"이리 와서 한잔합시다."
"아, 여기서 하겠습니다. 오신 분들과 함께 드십시오."

도지사일행은 자리를 잡은 뒤에 술을 마시다가 "최 감독 이리 와서 한잔 받아요" 하면서 도지사의 술 받기를 간청했다. 내가 옆에서 민망해서 "가서 잔 받아요, 다녀와요"라고 말했다. "아닙니다. 선약이 있는 자리에서 나는 절대 다른 자리로 왔다갔다하지 않습니다. 나는 술 먹으면서는 전화도 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래도, 도지사가 오라고 하는데…."
"도지사가 별 겁니까? 도지사가 경우 없는 짓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강형도 참…."
정말 내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급히 전화할 곳이 있었는데 최 감독이 한말도 있고 해서 눈앞에 빤히 바라다 보이는 공중전화를 사용하지 못했다. 나는 축구인으로서 최 감독의 놀라운 품격에 감탄했다.

나는 그 뒤로 가끔 그를 만났으나, 그의 말과 행동은 그의 축구처럼 항상 정확했다. 그는 94년 <유소년 축구교실>을 풍남초등학교에 열었다. 축구 꿈나무를 키우자는 의도였다. 그는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인성을 아주 중요시한다. 만약 거짓말을 하면 출석을 정지시킨다. 이렇게 해서 전국 각지 14개 시·군에 <유소년 축구교실>을 열고 있다.

현재 <유소년 축구교실> 전국회장을 맡고 있으며, 2003년에는 엄마들로 구성된 여성축구단을 창단하여 지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생활축구 저변확대를 꾀할 뿐 아니라, 생활축구 붐을 통하여 인성교육과 국민건강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의 축구철학을 실생활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살고 있는 영원히 아름다운 축구인이 아닐까?

국정넷포터 강상기potica@hanmail.net
* 이 글은 인터넷신문 '참말로'(www.chammalo.com)에도 실렸습니다.

<강상기님은> 서울 석관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66년 <세대>지 제1회 시부문 신인문학상수상. 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편력)시 당선. [저서] 산문집 <빗속에는 햇빛이 숨어 있다> 시집 <철새들도 집을 짓는다> 교육에세이 <자신을 흔들어라>(2004년 2월).

이전다음기사 영역

하단 배너 영역

지금 이 뉴스

추천 뉴스